관세음보살의 중생구제

특집/불교에서 본 구원의 의미

2009-05-09     관리자
 

참삶의 희망이요 빛으로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이 지닌 뜻과 그 세간 구제의 인연과 헤아릴 수 없는 자비의 공덕과 부사의하고도 신비로운 능력과 부처님의 가르침 위에서 차지하는 위치 등, 관세음보살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여기에서 다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주어진 과제에 따라 관세음보살이 고통 받는 중생에게 있어서 어떠한 존재이며, 어떠한 방법에 의해 구제받으며, 또한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힘으로 중생을 구제하는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하여 극히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경전 [법화경, 보문품]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힘겨운 액난을 당해, 셀 수 없는 괴로움으로 시달림을 받을 때 미묘한 지혜의 힘으로 능히 세상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님(衆生被困厄 無量苦逼身 觀音妙知力 能救世間苦)으로 보이고 있다. 물론 매우 요약된 글귀이기는 하나 관세음보살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중생(被困厄의 衆生)은 특정의 중생이 아니고 우리들 중생 모두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경전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는 모두 괴로운 것이다(一切眥苦)’라고 하여 인간존재의 필연적인 고(苦)를 말씀하셨다.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을 구태여 끌어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근본적인 무명(無明)의 미혹(迷惑)으로부터 이루어졌으므로, 어떤 형태로든 괴로움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필연적인 괴로움이 인간존재의 실상(實相)이라는 진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주신 가르침의 고성제(苦聖諦)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괴로움의 틀 안에서 숙명적인 괴로움을 안고 태어나, 그 괴로움의 울타리 안에서 몸부림치며 살다가 끝내는 괴로움 속에서 일생을 마치고 마는 존재라고 할 수가 있다. 참으로 절망적인 삶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같은 절망적인 삶의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을 향해 부처님은,

  “세상의 많은 중생들이 모든 괴로움을 겪으며 허덕일 때에 관세음보살에 관한 말씀을 듣고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컬으면, 관세음보살은 곧 그 소리를 듣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관세음보살은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여 갖가지 모양으로 여러 세계에 나타나 중생들을 제도하므로 마땅히 일심으로 공양해야 한다. 이 관세음보살마하살은 두려움과 위급한 재난 속에서도 능히 두려움과 재난을 벗어나게 해주므로 ‘사바세계에서 모두 두려움을 없애 주시는 님(施無畏者)’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 하였고 또한

  “관세음보살은 고뇌와 죽음의 액난에서 진실로 의지하여 믿어야할 대상(觀世音淨聖 於苦惱死厄)”

이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그러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 절망적인 필연고(必然苦 )의 인간은 참된 삶에의 희망을 갖게 된다. 괴로움만의 인생(一切眥苦)에서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괴로움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삶이야말로 우리들이 바라는 참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그와같이 관세음보살은 칠흙처럼 캄캄하고 철벽처럼 답답한 우리들의 괴로움뿐인 삶에 큰 희망이 되며, 드디어는 그 모든 절망적인 괴로움을 사라지게하는 눈부신 광명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법화경]중에서 가장 오래된 [정법화경(축법호 역)]에는 관세음보살을 광세음(光世音)보살이라고 하여 빛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화엄경(60권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곳을 광명산(光明山,신역 [화엄경]에서는補恒洛迦山)이라고 하였으며 그래서 그가 성취한 법문을 ‘대비법문 광명의 행(大悲法門光明之行)’이라고 한 것이라 하겠다.

  한마디로 말해서, 관세음보살은 괴로움뿐(一切眥苦)인 우리 중생을 참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이요, 어둠의 속박을 깨뜨려주는 빛(光明)으로서 몸을 나투신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칭념 예경을 통한 구제

  그런데 경전의 말씀대로 관세음보살께서 모든 중생들을 한결같이 구제해 주신다면 현재 고통받는 중생이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의 중생계는 여전히 괴로움뿐이다. 그렇다면 경전에서 거짓말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 된다.

  실은 부처님 말씀에는 추호의 거짓이 없다. 중생은 스스로 무명 미혹(無明 迷惑)에 의해 지은 업장(業障) 때문에 괴로움의 굴레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한다. 너무 지나치게 두터운 업장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시려는 부처님의 자비심을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그러나 끝내 철통같은 중생의 업장을 허물어서 그 속에 스스로 갇혀 신음하는 중생을 건져내고자 하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원력(願力)이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우리들을 감싸서 비추고 있다. 그래도 업장의 막이 너무 두터워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들려주시고 열심히 부르라고 일깨워 권하신 것이다. 즉, ‘관세음보살에 관해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일컬으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한 말씀은 바로 그런 뜻이다.

  그러므로 구제를 받으려면 우선 관세음보살을 바로 알아야 하며, 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냥 입으로 일컫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칭념(稱念)이라 한다. 그리고 또 언제나 마음에 새겨 생각(常應心念)함으로써 관세음보살을 항상 공경(常念恭敬)하게 되며 따라서 예배공양(禮拜供養)하게 된다. 그와 같이 관세음보살을 바르게 알고 그 이름을 칭념하며, 언제나 마음에 지녀 공경 예배공양(皆應受持 觀世音菩薩名號)하면 곧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받아지녀 언제나 간직(心念受持)함으로써 해탈하게 된다는 것은, 바로 내 업장의 두터운 장벽이 허물어지므로 인해 관세음보살의 평등한 자비광명이 내 몸에 와닿아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먹지 않고 주사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관세음보살님의 절대자비(無緣慈悲)도 내가 받아들이지 (受持)않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묘한 지혜의 힘으로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중생을 구제하시는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보문품(普門品)]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미묘한 지혜의 힘으로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구제(觀音妙智力 能救世間苦)하신다고 했다. [화엄경]에서는 대비법문 광명행(大悲法門光明行)으로써 중생의 고통을 벗어나게 한다고 했으며, [청관음경(靑觀世音菩薩經)에서도 관세음보살이 청정한 광명을 두루놓아 어리석음과 모든 괴로움을 없애주신다(普放淨光明 滅除痴暗冥.....)고 하였다.

  우리가 아침저녁 지송하는 [반야심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함으로써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行深般若바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고 하였다.

  반야바라밀다나 미묘한 지혜의 힘(妙智力)을 표현한 말이므로, 뜻으로 본다면 모두가 같은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이 미묘한 지혜(妙智 곧 般若)의 힘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법화경(普門品)에 ‘관세음보살의 힘을 생각(念皮觀音力)하므로써 모든 액난에서 구제된다’고 하는 그관음력(觀音力)도 바로 이 관음묘지력(觀音妙智力)과 같은 뜻이 된다. 따라서 중생을 제도하는 관세음보살의 힘이 곧 미묘한 지혜의 힘인 것이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의 중생구제하는 힘(妙智力)의 근원은 자비심이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본심에 의하여서 비로소 미묘한 지혜의 큰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관세음보살이 중생구제하는 힘의 독특한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능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위로는 부처님과 똑같은 자비의 힘(與佛如來同一慈力)을 지니고, 아래로는 중생과 똑같이 아파하는 마음으로 함께 한다(與諸衆生同一悲仰)는 것이다. 그래서 한없이 자애롭고 한없이 애처로와 하시는(大慈大悲, 또는大悲)보살님으로 불리운다. 그러한 대비의 보살이기 때문에 그 구제에는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모든 중생이 해탈해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만을 염원할 뿐이다.

  또 관세음보살은 중생에게 신벌(神罰)이나 노여움같은 것을 내리지 않는다. 자신을 믿지 않거나 예배 공양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禍)를 주거나 복(福)을 빼앗아가는 일은 없다. 무조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자비심만으로 어버이가 어린 자녀 거두듯 구제하기 때문에, 그 관세음보살의 중생 구하는 작용을 미묘한 지혜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다.

 

김영태

동국대 불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로 있다.

고대 한국 불교에 대한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고, 불교대학 학장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 한국불교사를 강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