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

고사의 향기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2009-05-05     관리자

부산 전체를 잇는 금정산 준령이 동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흘러내려 계명봉과 맞부딪히는 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범어사.

  예부터 산곡(山谷)이 좋은 금정산 줄기의 정기를 타고 많은 인재들이 배출된 곳이기도 한 범어사는. 양산 통도사∙합천 해인사와 함께 남도 삼사(南道三寺)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어사는 문무왕 18년 (678)경 의상(義湘)스님이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건립하였으며, 신라 당시에는 사찰의 위치상 왜적을 진압하는 비보사찰(裨補寺刹)로서도 중요시되었다. 「범어사창건사적」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일찍이 해동 왜인 (倭人)이병선을 거느리고 동쪽에 이르러 신라를 침략하고자 했다. 대왕이 근심으로 즐거움을 잊고 있었는데 문득 꿈속에 神人이 나타나 외쳐 부르는 것이 아닌가! “정성스런 대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태백산 중에 의상이라고 하는 한 화상이 있는데 진실로 금산보개여래(金山宝蓋如來) 제 7화신입니다.… 또 동국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 50여척이나 되는 바위가 우둑 솟아있는데 그 바위위에 우물이 잇고 우물은 항상 금색이며 사시사철 언제나 가득차고 마르지 않고 그 우물에는 범천으로부터 5색 구름을 타고 온 금어(金魚)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의상스님을 맞아 함께 그 산의 금정암 아래로 가셔서 7일 밤 낮 화엄신중을 독송하면 그 정성에 따라……

  왕은 의상과 함께 친히 금정산에 가서 7일 동안 일심으로 독경했다. 이에 땅이 진동하면서 홀연히 제불, 천왕, 신중, 그리고 문수, 동자등이 각각 현신하여 모두 병기를 가지고서 동해에 임하여 적을 토벌하니 혹은 활을 쏘고 혹은 창을 휘두르며 혹은 모래와 돌이 비처럼 휘날렸다. 이에 왜선이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빠져죽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드디어 의상을 봉해서 예공대사(銳公大師)로 삼으니 이것이 곧 꿈이 영험이었다. 이로써 금정산 아래에 범어사를 창건하였다.

 

  신라 당시에도 대웅전∙미륵전∙비로전∙대장전∙천왕문∙유성탑∙종루강전∙승당 등을 중심으로 360여 승방이 있는 대규모의 가람이었다고 전한다. 위치상 왜구의 최전방인 동래부와 인접해 있는 관계로 임난(壬亂)등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나 가람의 배치현황으로 신라화엄종찰의 위용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화엄종찰은 산지에 대부분 배치되어있고 높은 석계를 마련하고 그 높은 대상에 법당을 건립하고 있는데 범어사 또한 구릉을 이용하여 화엄법계를 상징하듯 아래에서부터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배치하고, 6~7m정도의 축대를 쌓아 그 위에 보제루(普濟樓)가 있다. 그 좌우에 심검당(尋劒堂), 원응료, 안심료 등의 강당체와 좌우에 석등과 삼층석탑(보물 250호) 그리고 비로전, 미륵전 청풍당(靑風堂)의 영주선원(瀛洲禪院)이 있다. 높이 7~8m축대위에 대웅전, 관음전, 명부전, 팔상, 독성, 나한의 삼전이 병열하고 그 뒤에 산영각(山靈閣)이 있다.

  이것은 상중하로 화엄법계를 구분하여 상당에는 예배의 대상건물, 중당은 수도처, 하당은 3문과 부속건물을 배치한 형태이다. 현재 천왕문과 일주문 사이에 7층 불사리탑이 위치하나, 84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웅전옆 현재의 관음전 자리에 위치하였다. 원래는 현재 관음전 자리에 청풍당(선원)이 있었으나,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그 자리가 지맥상 인재배출의 원인이라 여겨 선원을 옮기고 불사리탑을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는 범어사에 인재가 끊겼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다시 옮겨 사리탑은 천왕문과 일주문사이로 그리고 그곳에 관음전을 옮겨놓았다. 관음전에는 하루도 목탁 소리가 끊이는 날이 없는데 1000일 기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범어사에 인재가 끊겼다고 하나 경허용성-동산스님을 이은 현재의 종정 성철스님이나 범어사 출신임을 볼 때 그러한 판단은 성급한 듯도 하다.

  범어사가 다른 사찰과 다른 것이 있다면 노스님을 모시는 곳이 따로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과 선원, 강원과 더불어 해제와 결제가 없는 평생선원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지효 노스님께서 이를 맞고 계시며 휴휴정사(休休精舍)가 그곳이다. 또한 경내 곳곳에 놓여 있는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을 새로이 신축한 점도 특기할만하다. 그리고 현재는 기존에 탱화밖에 없던 사천왕상을 새로이 조성하는 등 사찰의 면모를 다듬고 있다.

  범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범어사 3기(三奇)와 금정팔경(金井八景)이 있다.

  3기는 첫째가 원효석대(元曉石대台)로 원효스님이 공부하시던 돌로된 자리로서 범어사 왼편 봉우리에 위치한다. 둘째는 자웅석계(雌雄石雞)로 두 개의 돌 모양이 닭의 형상을 이루어, 일본이 지네모양으로 생겼으므로 닭은 지네를 잡아먹는다 하여 왜적의 침입을 봉쇄한다고 하는 것이다. 셋째는 앙상금정,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는 돌우물로 금정산의 유래를 말해준다.

  금정팔경은 첫째가 어산노송(魚山老松) 어산교에서 일주문까지 뻗쳐있는 소나무의 행렬은 범어사를 찾아드는 사람에게 운치를 준다하고, 계명추월(雞鳴秋月)이라 하여 계명암에서 툭 트인 전망을 바라보면서 가을밤 하얀달을 쳐다보는 그 풍경이야말로 속세를 떠난 천상과 극락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청련야우(靑蓮夜雨)는 청련암에서 밤길을 걷노라면 나뭇잎에 부딪치며 떨어지는 밤비소리가 속정을 씻고 싱그러운 도심(道心)을 더해 주는 듯 하다하며, 대성은수(大聖隱水)는 대성암에서 내려다보면 계곡에 빽빽하게 박혀있는 자연석의 무더기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며 그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맑고 깨끗함을 이른다. 내원모종(內院暮鐘)은 내원암에서 저녁예불을 기다리며 포행하는 동안 큰절에서 치는 종소리를 듣노라면 선사들의 선정이 깊어만 간다 함이며, 금강만풍(金剛晩楓)은 금강암에서 가을날 천지가 붉게 물 들으면 수행자의 신심은 깊어만 간다는 것이다. 의상망해(義湘望海) 의상스님이 앉아 공부하던 석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에 구름 한 자락은 관음의 흰옷자락인양 관음보살의 대자비를 배우고, 고당귀운(高幢歸雲) 금정산 고당에서 산등성이에 걸려 산허리를 감고 도는 구름을 쳐다보노라면 극락이 여기구나 하고 느껴진다고 한다.

  여기에 이른 봄 벚꽃과 등나무의 보랏빛 골짜기 양측으로 전나무의 신록, 맑은 물 계명봉 홍엽은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