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감과 노이로제

현대인의 정신건강

2009-04-30     관리자

   현대의학이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는 암(癌)과 노이로제 중에서도 특히 노이로제는 그 원인이 다양할 뿐 아니라 시일이 가고 병이 악화되면 인격(人格) 전체를 파괴하는 정신분열증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이로제의 원인은 유전설, 대뇌생화학적 병리설, 유아기의 심리적 갈등의 원형인 콤플렉스설, 대인관계설 등 무수히 많고 문화와 집단 무의식속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 되기도 한다.

   필자는 오랜 임상적 관찰 끝에 한국인의 정신구조는 서양인의 그것과 큰 차이점을 보여 조고 있고, 특히 서양인과 같은 심층심리속의 죄악감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서양인의 사고방식의 밑바탕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지은 존재란 인식이 있는데 반하여 한국인은 그러한 죄악감은 없고 대신 너무나 욕심을 참고 자기를 억압한데서 오는 한(恨)의 심리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서양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앞에 죄지은 '아담과 이브'의 죄를 물려 받고 있음을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서양인은 쉽사리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죄를 짓거나 죄스런 생각만 해도 불안이 나타나기 쉽다. 죄악감을 동반하는 자책감, 불안 때문에 결국 노이로제가 오게 되는데, 한국인은 이러한 죄악감 대신에 '한(恨)의 심리'가 있는 것이다.

   죄를 지었다고 마음속으로 죄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러한 내적으로 쫓기는 마음, 자책하는 행위, 자기자신을 채찍질하는 심리를 낳게 되고 양심의 가책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죄악감은 없고 자신의 한을 풀려는 한국인 일반적인 특징 때문에 그 나타나는 노이로제 증상이 다르기 마련이다.

   한국인 노이로제 증상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로 마음속으로 괴로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외로워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밖으로 내어 뿜고 남들을 비난하며 기회 있을 적마다 상대방에게 신경질을 내고 공격하는 일종의 행동화현상이 많음을 볼 수가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서양서 노이로제를 앓는 사람은 그 사람에 한해서 혼자 괴로워 하는데 반하여, 한국인이 노이로제를 앓는 경우에는 자기 자신이 괴로운 것은 물론이요, 가족 구성원이나 주변 사람 또는 친지들에게 온갖 괴로움을 던져 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한국인의 노이로제 증상의 두번째 특징은 정신적 고뇌를 신체 증상으로 나타내는 경향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분명히 정신적으로 괴롭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 빠지면 '두통이 생긴다'고 말하게 된다.

   아버지나 회사의 사장 직장의 상사에게 적개심이 있는 경우에는 이런 심리적인 괴로움을 갖는 대신 그 증오감이 자신의 심장과 혈관으로 들어가서 '고혈압'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의존욕구가 채워지지 않고 좌절감이 올 때는 곧장 위장이 쑤신다고 하고 위궤양을 호소하게 된다.

   이와같은 노이로제 증상을 신체적인 병처럼 호소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이다.

   한국인 노이로제의 세번째 특징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괴로운 일들을 겪다보면 여기서 이말하고 저기서 정반대의 저말을 하는 일종의 이중인격자의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양심이 있고 인격이 잘 통합·정리되어 있는 사람은 죽는 한이 있어도 자신이 한 말이나 약속은 지키려 하며 일단 자신이 판단, 결심한 일은 이것을 번의 반복하기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원죄의식과 같은 죄악감이 없는 한국인은 그때 그때의 편의에 따라 이말 저말을 적당하게 할 뿐아니라 습관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예사로 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이중인격자의 한 행태(行態)가 된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며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단지 그때 그때의 주변의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눈치껏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전통적 한국인의 노이로제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예시한 바와 같은 노이로제의 행동화 현상, 신체화 경향, 이중성의 형성 등은 비단 노이로제의 특징이 될 뿐 아니라 바로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을 조성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자신이 게으르다는 점은 접어둔 채 무조건 부자들, 기업가, 정치인, 경제체제… 등에게 이유를 찾지는 않는가?

   정치하는 사람은 마땅히 정책대안을 내고 시민의 복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대신 무조건 상대를 비난하려 하지는 않는가?

   종교인들은 진리를 탐구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성찰하는 대신 교만과 자기중심주의와 독선에 빠져서 남들을 멀리 하고 있지는 않는가?

   대학인은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한 정열 대신에 연구비 타령, 학사 행정의 미숙타령, 대학생의 몰지각 등만 내세우면서 응당 자신이 할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젊은이들이나 대학생들도 조국과 인류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밤새워 공부하는 대신 눈을 엉뚱하게 돌린 채, '민주화'다 '독재정권'이다 '매판재벌'이다 하면서 정신에너지를 낭비하지는 않는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일 것이다. 우리 정신문화와 전통속에는 '한(恨)의 심리' 있었지 서양인의 원죄의식에 해당되는 죄악감이 없었던 것인데 지난 이삼십년 동안 갑자기 서양인의 기계 운영, 경제체제, 정치제도등만 모방하려하다보니 온갖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노이로제의 급증현상과 사회전체가 병들어 가는 일종의 사회붕괴현상이 오고 있음을 우리는 묵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한국적 사회윤리, 그리고 개인의 양심의 근원인 '죄악감'을 느낄 줄 아는 새로운 교육과 운동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자신이 한 행동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양심의 회복이 모든 이들에게 확실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