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잣타 삿투 태자의 참회

생활인의 불교신앙

2009-04-29     관리자

   부처님 당시 마가타국의 아자타삿투 태자는 데바닷타의 사주(使嗾)를 받아 부왕인 빔비사라왕을 가두고 굶겨 죽이려 했다. 먹을 것을 주지 않는데도 부왕이 굶어 죽지않자 그 이유를 캐물은 즉, 어머니인 베데히 부인이 꿀과 밀가루와 우유를 반죽하여 몸에 바르고 영락구슬 속에 포도즙을 담고 왕을 면회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 허공을 날아온 목갈라나와 푸르나 두 스님으로부터 팔재계(八齋戒)를 받은것을 알았다.

   이에 화가 난 아자타삿투 태자는 "역적이요 내 원수인 아버지를 어머니가 내통을 하다니…. 그리고 중들은 남을 홀리는 술법을 써서 나쁜 임금을 오래 살게 하니 악당들이요." 라고 말하고 칼을 빼들고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 이때 총명한 월광대신이 지바카와 함께 만류하기를 "대왕이시여! 신들이 저 베에다 성전의 말씀을 듣건대, 개벽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쁜 왕들이 왕위를 탐하여 그 부왕을 살해한 자는 무려 일만팔천명이나 된다고 하오나, 아직 일찌기 무도하게 자기 어머니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왕께서 어머니를 해치려 하시니 이는 왕족을 더럽히는 일로써, 신하로서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천한 백정만도 못한 것이오니 저희들은 여기에 더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칼을 뽑을 듯한 자세를 취하니 아자타삿투는 크게 놀라 죽이는 것을 그만두고 어머니도 가두었다.

   이렇게 갇힌 베네히 부인은 고통과 번뇌가 없는 곳에 타어나기를 간절히 원해 부처님께서 극락에 이르는 방법으로 16관법(十六觀法)을 설하신 것이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이다.

   예나 이제나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의 권력과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은 그칠 줄을 모른다. 친족간에 왕권을 쟁탈하려고 골육상쟁을 벌인 예가 허다하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를 죽인 이태조의 아들들,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수양대군 등은 이촌, 삼촌간이니 일촌간인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되는 아자타삿투보다는 조금 낫다고 해야 할지?

   이렇게 부왕을 가두고 왕이 된 아자타삿투는 그 세력을 중인도에 크게 떨쳤고 후에 그 악행을 참회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교단을 외호하는 큰 시주가 되었다. 아자타삿투를 사주해 부왕을 몰아내게 한 데바닷타는 부처님의 종제이면서 아난존자의 형이기도 한데 출가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나 부처님을 시샘하여 부처님을 해하고 교단을 차지하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왕국도 부도 세간을 떠나 버리고 모든 번뇌를 여의고 부처를 이루신 석가모니 부처님과 너무도 대조적인 사람들이다.

   아자타삿투는 늙고 병들어, 빔비사라왕의 아우 무외(無畏)의 아들이며 부처님의 시의(侍醫)였던 지바카에게 다음과 같이 참회를 한다.

   "지바카여, 나는 이제 병이 중하다. 바른 법의 왕에게 악업의 해독을 가하였으니 일체의 모든 훌륭한 의원과 묘한 약과 주술이 아무리 병을 잘 고친다 하여도 내 병은 능히 고칠 수 없다. 왜냐하면 부왕은 법대로 나라를 다스려 아무 허물이 없으나 내가 반역해서 해를 가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물고기가 육지에 있는 것 같이 무슨 즐거움이 있으며, 사슴이 그물 속에 있는 것 같이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사람이 스스로 제 목숨을 마쳐 살지 못할 것을 아는 것 같고, 왕이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로 도망한 것 같으며 사람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고, 파계(破戒)한 자가 죄과의 설명을 들은 것 같다.

   나는 일찌기 들은 적이 있다. '만일 사람이 행동, 말, 뜻의 세가지 업이 청정하지 못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그러한 사람이니 어찌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나에게는 이제 법락(法樂)을 설하여 병의 고통을 없애 줄 훌륭한 의사(無上大醫)도 없다."

   이에 지바카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준다. "두 가지 맑고 깨끗한 법이 있어서 능히 중생을 구제하는데 첫째는 참(참)이요, 둘째는 괴(愧)다. 참(참)은 스스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괴(愧)는 남을 시켜 죄를 짓게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참(참)은 안으로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요, 괴(愧)는 남을 대하여 드러내 보이는 것이며, 다시 참(참)은 사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요, 괴(愧)는 하늘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참괴가 없는 사람은 사람이라 하지 않고 축생이라 한다. 참괴가 있음으로 능히 부모와 스승을 존경하고 참괴가 있음으로 다시 부모 형제 자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참괴를 느낀 왕을 위로하고 다시 부처님 말씀을 들려준다. "지혜있는 사람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지은 죄를 곧 참회하는 것이다. 또한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죄를 짓는 것이요, 또 하나는 죄를 덮어 감춰두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지은 악이 있다 할지라도 능히 뒤에 드러내어 뉘우쳐 참괴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니, 마치 탁한 물에 맑은 구슬을 넣으면 맑은 구슬의 힘으로 물이 곧 맑아지는 것과 같고, 연기와 구름이 걷히면 달빛이 곧 청명해지는 것과 같이 악을 짓고 뉘우치는 것도 이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재물이 있는 이나 없는 이나 그 시름이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재물이 있으면 재물때문에 걱정하고, 빼앗기거나 잃어버려서 분해하고, 재물이 없으면 재물을 얻고자 허덕이고 안달하며 괴로워한다고 하셨다. 이것을 가지면 저것이 가지고 싶고, 어쩌다 모두 갖추어져도 오래가지 못하고 어느덧 없어지고 마니 다시 구하려고 근심하고 괴로워한다. 이러한 근심과 괴로움이 지나치면 몸을 상하고 목숨을 잃기도 하니 본말(本末)이 뒤바뀌기가 이것보다 큰 것이 없다.

   무엇을 얻고자 욕심을 낼 때는 눈 앞이 가려 부모형제까지도 해롭게 하지만 일단 그것이 얻어지든지 또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금방 후회를 하고 마음 아파한다. 수양대군이 권력을 획득한 후 말년을 참회로 보냈고, 아자타삿투도 말년을 참회로 보냈다. 그러나 일만팔천의 부왕을 죽이고 왕이 된 패륜아들이 있음을 알고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말년에 가서야 눈이 떠지니 욕심의 뿌리는 너무 깊고 시야를 가림이 너무 크다.

   말년이 되어도 잘못한 지도 모르고 욕심덩어리로 굴러다니다가 목숨을 버린 이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더러는 충실한 신하가 있어서 나라의 법도를 잘 지키고 행위가 바르며, 능히 나라를 다스리는 경륜이 밝더라도, 위에 있는 자가 바르지 못하면 그는 모함을 당하여 필경에는 어진 신하를 잃고 마는 것이니, 이는 천지의 도리를 배반하는 것이니라."

   욕심으로 얻은 권력과 부와 명예는 덧없이 흩어지고 사라지지마는 욕심만은 끝없이 지속되니 부처님 당시에도 권력투쟁과 시새움은 그치지 않고, 그 이전에도 지금에도 팽만한 욕심으로 몸을 그르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한없이 많다. 그러기에 삼독심(三毒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