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간의 갈등

결혼 가정 행복의 장

2009-04-27     관리자


이 업보 같은
고부간의 갈등은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은
무의식적인 질투 감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들을
빼앗긴 게 아니라 제 몫을 하게끔
자랐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인정한다면 질투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선생님 며느리를 이리 오라고해서 그 말씀을 들려주세요."
   외래에서 며느리 험담을 신명을 내던 한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솔깃한 말이 나오면 놓치지 않고 치료자에게 그런 주문을 한다. 옛날 같지 않게 정신과 외래에 찾아오는 시어머니가 숫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고부간의 세력다툼에서 조금씩 밀려난다는 뜻도 된다.
   "선생님 틀림없이 밖에 시어머니가 와 있을 거예요. 등이 가려운 걸 보면 틀림없어요." 어느 며느리를 외래에서 치료하던 중 들은 호소다. 그 부인의 말로는 시어머니의 시선이 닿으면 그 시선이 닿는 자신의 몸에 두드러기가 난다고 했다. 설마하니…. 하는 의문을 갖고 등을 벗겨 보았더니 넓적한 두드러기가 보란 듯이 퍼져 있었다.

   "틀림없이 밖에 있을 거예요." 간호원을 시켜 확인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밖에 계시단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 영원한 사랑과 증오의 대상인 이들을 요즈음 말로는 고부간 갈등으로 치부된다. 이 갈등이 어떻게 방향지워지느냐에 따라서 시어머니가 병이 나기도 하고 며느리가 병이 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시집살이 때문에 며느리들이 병원을 찾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요즈음은 마음 약한 시어머니가 되레 병이 나서 병원을 찾는 것도 흔히 보게 된 세월로 바뀌었다.
   왜들 그럴까 생각해 보지만 '질투'를 빼놓곤 생각이 잘 안된다.


   자기보다 능력이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고 증오하는 감정을 일반적으로 질투라고 하는데 고부간 갈등은 고부간의 질투 때문에 그렇다. 고부간에 무슨 질투랴 싶지만 질투는 계층이나 성별 나이와 무관하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질투하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지금까지 자기들끼리 자기들의 가족문화 속에서 잘 살아온 상황에 느닷없이 며느리라는 이방인이 다른 가족문화 배경을 안고 뛰어 들어온다. 한사람의 이방인이 나타난다는 것은 기존의 상황이 흔들리게 만들다. 지금까지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킨다. 때로는 기득권자의 이익이 제한되기도하고 새로 들어온 식구에 대한 집안사람들의 관심이 쏠리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시어머니로선 견디기어렵다. 시어머니는 지금처럼 모든 상황이 자기중심적으로 진행되고 결과되어지기를 바라지만 이미 변화의 소용돌이는 시작되었다. 옛날, 모두 나의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여 주던 그런 시절(그런 시절은 아들이 어렸을 때 뿐이다)로 돌아 가고 싶어 하지만 이미 그럴순 없다.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 이 모든 원인이 새로 들어온 며느리 탓이라고 생각하면 며느리의 뒷통수가 이쁠 까닭이 있겠는가. 그래서 말은 누가 들어도 그럴싸하게 하지만 기실 질투가 바탕이다. 시어머니가 투기하여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일화는 우리네 고부간 민담이나 설화로 남아 있는게 많은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며느리쪽에서 보아도 매한가지다. 시집가서 남편이라고 차지하고 싶지만 이미 결속되어 있는 모자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기엔 역부족일 때가 많다. 흔히 시집가는 딸들에게 친정에서 교훈하는 것이 과거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야 살아 남는다고 가르쳤다. 이런 긴 세월의 인내와 억압을 견디지 못한다면 결혼생활은 커녕 자신의 목숨이 살아남기도 어려웠던 세월도 있었다. 지금은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감정적 흐름의 바탕은 서로 내재시켜 두고 있을 뿐이다.

   정신분석학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소위 에디프스 컴플렉스로 해석한 것이 있다. 에디프스 컴플렉스란 유년기에 경험하는 정상적인 공상으로 이성의 부모를 사랑하고 동성의 부모를 증오하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증오의 대가로 성적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직면한다는 가설인데 쉽게 설명하면 아들을 어머니를, 딸은 아버지를, 사랑의 대상으로 공상하는 반면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사랑의 경쟁자로 생각하여 질투하고 미워하고 적개심을 갖는다고 한다.
   이런 감정의 발달은 5세경이면 모두 경험하면서 사춘기 청년기로 이행되는데 이 때 에디프스 컴플렉스는 저 무의식 깊은 곳으로 숨고 의식수준에선 현실성이 있는 배우자 선택으로 바꾼다고 설명한다. 공상 속에서 실속 없는 부모를 사랑의 대상으로 고집하기 보단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성을 선택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처음 세상에 태어나선 아들이건 땅이건 사랑의 대상은 그를 보살피는 '어머니'에게 국한된다. 자신의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어머니에게 처음은 국한되었다가 5세경에 이르면 소위 남근기라는 정신성격발달 단계를 맞는다. 이 단계는 성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로 사랑의 대상을 이성으로 바꾸게 된다. 남성(아들)은 어머니에게 사랑의 대상을 이성으로 바꾸어 보지만 그 상대는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가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이성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성(딸)은 어머니에게 이성으로 바뀌는 과정이 남성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즉 어머니에서 이성으로 바뀌어지니깐 아버지로 사랑의 대상을 대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버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세 가지의 패턴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어머니와의 사랑의 뉴대가 너무탄탄하여 이성인 아버지로 사랑의 대상을 바꾸지 못하는 경우다. 두번째로는 자신을 열등한 여성으로 태어나게 만든 탓이 어머니에게 있다고 공상한 나머지 자신은 남성처럼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이 남성처럼 사니까 이성의 선택이 불필요하거나 선택한데도 동성애의 파트너를 구하게 된다. 세번째로는 자신의 남성적 추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여성적 역할을 수용하는 패턴이다. 


   이 말은 여성이 에디프스 컴플렉스를 극복하는데는 남성에 비해 훨씬 복잡한 과정을 겪는다는 뜻이다. 복잡한 과정은 그만큼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복잡한 감정은 그만큼  갈등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이 정신분석적 가설을 원용해 본다면 고부간 갈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모두에게 있음직 한데 알려진 것으론 동양문화권에서 더 심한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일 뿐 그 가설의 뜻대로라면 단지 가족형태나 결혼제도가 다른데서 연유될 뿐 근본은 다르지 않다.

   여성은 어려서는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치열한 전투의 전쟁을 벌여야 하고(물론 에디프스 컴플렉스란 공상 속에서) 자라서 성년이 되고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을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와 치열한 질투의 전쟁 (이것은 현실적인 에디프스 컴플렉스다)을 벌인다. 이런 가설을 놓고 보면 고부간 갈등은 일생동안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질투다. 사위와 장인 자이에도 같은 논리라면 질투가 있겠지만 여성보단 에디프스 컴플렉스의 극복과 정이 단순하기 때문에 고부간 갈등에 비길 바는 못된다. 서양사람들이 고부간 갈등이 없는 것처럼 비친 것은 우리보단 거리를 일찍 수용하기 때문에 그렇다.

   "질투는 먼저 나를 해치고 그 다음에는 남을 해친다. 질투하는 이는 남을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면서 끝내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출요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다. 이 업보 같은 고부간 갈등은 마음 속 깊숙이 자리잡은 무의식적인 질투 감정을 해결하지 않고선 해결되지 않는다. "질투는 바로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설파한 사람도 있다. 아들을 빼앗긴 게 아니라 제 몫을 하겠끔 자랐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인정한다면 질투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佛光

이근후 '35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경북의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이화의대 신경정신과 주임교수 및 동대학병원 신경정신과 과장으로 있다. 수필집에 「까치야 까치야」「임금님의 귀」「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줘」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