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음의 기쁨

선심시심

2009-04-27     관리자

   일고 싶은 서적(대개 불교서적) 한보따리를 싸들고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 들어가 마음껏 독서삼매에 빠져보고 싶은 것이 요즘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교수란 직업이 원래 다른 직업에 비하여 항상 책을 읽어야 하고, 또 다른 직장보다 자기 시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책이란 것이 딱딱한 전공서적인데다 어디까지나 연구의 필요에 의하여 읽어야 하며, 시간 또한 연구와 교육에 쫓기다 보면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유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항상 반복되는 강의 준비, 시험과 채점, 자료수집과 논문작성, 논문지도와 심사 등, 이와 같은 일에 쫓기며 허둥대다 보면 한 학기, 일 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남는 것은 공허함 뿐이다.
   여기서 항상 아쉬는 것이 자유로운 독서와 여유 있는 시간이다. 즉 연구와 교육의 중압감으로부터의 해방, 전공서적에 의무적으로 얽매이는 독서로부터의 자유로움, 그리고 모든 사회관계, 인간관계의 틀로부터의 벗어남을 통하여 나만의, 진정 나 혼자만의 절대 자유의 시간속에 절대 고독과 함께 독서와 사색에 한껏 침작하고 싶은 것이다. 그 고독의 심연에서 참된 '나'와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어가는 것이 인간이다. 쌍둥이라도 동시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도 한날 한시에 죽지는 않는다. 실로 인간의 고독은 숙명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고독을 망각하고 산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애를 쓴다. 그런데 결과 현대인들은 '우리'를 얻는 대신 '나'를 잃게 되었다.
   고독은 젊은이들의 그것처럼 단순한 센치멘탈리즘이 아니다. 실로 사려 깊은 이들에게 있어 고독은 자기를 심화하고 승화하여 좀더 높은 세계로 이끌어주는 정신적인 힘이다. 인류의 위대한 철학이나 사상은 반드시 고독을 통하여 깊이 있게 경작된 마음에서 이루어져 왔다. 불교의 선(禪)도 유교의 무자기(毋自欺)나 신독(愼獨)도 철저한 고독의 체험을 강조한다. 그 외 세상의 모든 도(道) 또한 혼자만의 명상의 시간에 얻어진 깨달음이다.

   고독은 욕되지 않는다.
   견디는 이의 값지 영광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에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고독의 진실성을 말하고 있는 유치환(柳致環)의 이 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된 행복은 고독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체호프는 말했고, "나는 아직 고독만큼 사이 좋은 친구를 찾아낸 적이 없다."고 솔로우는 말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는 쓸쓸하고 외로움을 감내한 그 고독의 심연에서 자기 승화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이 시대에,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사막의 침묵으로 억누른 채 고독 속에 침작하여 참된 자아와의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차(茶)의 대가 초의선사(艸衣禪師)는 그의 동다송(東茶頌)에서 차를 마시는 최상의 경지는 차를 혼자 마실 때라고 했다. 임어당(林語堂)도 차를 대여섯이 마시면 '저속(低俗)', 서넛이 마시면 '유쾌(愉快)', 둘이서 마시면 '한적(閑寂)', 혼자 마시면 '이속(離俗)'이라 하여 혼자 마시는 고독 속의 끽다(喫茶)를 최상으로 치고 있다. 모두 고독의 오묘한 미학을 갈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거니와, 우리는 대중 속에 묻혀 '나'를 잊은 채 지나친 대화의 지출만을 강요받고 있다. 이 지나친 담화의 지출 뒤의 허전함을 우리는 고독을 통한 사막같은 침묵으로 재충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정한 대화는 남과의 대화가 아니라, 고독의 심연에서의 자기와의 대화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