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제국의 종교와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외팔묘

열하일기 2

2007-01-16     관리자


▲ 수미복수지묘 내부에 있는 불상. 몸짓이나 얼굴 표정이 해학적이어서 세파에 시달린 중생들의 마음을 씻어준다.
피서산장이 청제국의 권력과 행락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라면, 외팔묘는 그들의 종교와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외팔묘’란 말 그대로 피서산장 외곽에 자리한 8개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8개라고 했지만 사실은 12개라야 정확하다. 그 밖에 아주 작은 규모의 건물도 몇 개 있었다고 하지만, 거론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 12개 가운데 다섯 곳은 완전히 사라졌고, 7개 사원만 현존하고 있다. 청 조정은 8개의 사찰에 특별히 라마를 파견하고 급료까지 지급했는데, 이를 구외팔묘(口外八廟), 줄여서 외팔묘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 12개 사원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창건순)
①부인사(溥仁寺), ②부선사(溥善寺), ③보녕사(普寧寺), ④보우사(普佑寺), ⑤안원묘(安遠廟), ⑥보락사(普樂寺), ⑦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廟), ⑧광안사(廣安寺), ⑨수상사(殊像寺), ⑩나한당(羅漢堂), ⑪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 ⑫광연사(廣緣寺)
이 중 7개 사원이 현존하고 있지만, 나한당과 광안사, 보우사, 광연사, 부선사는 터만 남아 있어, 실제로 참배할 수 있는 곳은 5군데뿐이다. 게다가 수상사와 부선사는 개방되어 있지 않아 외곽만 한 번 훑고 지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5곳도 알뜰하게 입장료를 받아 무상 출입은 꿈도 꿀 수 없다. 출입을 통제한 두 곳은 입장료를 받을 만큼 규모나 시설이 되지 않아 미개방 상태로 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물가가 싼 중국이라지만 입장료는 꽤 비쌌다. 보락사를 제외한 네 곳은 동시 입장이 가능한 할인 티켓을 팔고 있었는데, 적지 않은 액수였다. 물론 그만한 값어치는 한다.
수상사는 개방되어 있지 않아 기대를 품고 갔던 우리를 실망시켰다. 밖에서 노란 기와지붕과 입구, 담장만 카메라에 담고 발길을 돌렸다. 길가에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어 보기 안타까웠다. 최소한의 사격(寺格)은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함과 별천지
보타종승지묘는 6만 평의 드넓은 산록 사이에 지어진,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다. 피서산장 북쪽 성벽에 오르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하얀 회벽칠이 된 수많은 건물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사원 맨 끝에 있는 붉은 색을 칠한 대홍대(7층, 작은 포탈라궁으로도 불린다)는 높이 25m에 너비가 약 58m에 이르러 장엄함이 비교할 게 없다.
피서산장의 건물들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어 개별적으로는 아담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해, 이곳은 건물이 장방형의 경내에 몰려 있는 데다 대홍대가 웅장하게 솟아있어 절로 경탄과 신앙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워낙 전각과 사당이 많아 주마간산식의 유람으로는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없었다. 시간을 탓하면서 발걸음을 쫓아다녔는데도 세 시간이나 걸렸다.
세 개의 문과 다섯 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 오탑문, 그 양편에서 관광객들을 굽어보고 있는 하얀 코끼리상은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전혀 다른 풍취를 보여주었다. 유리 패방은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지은 건물인데, 경내 중간쯤에 있었지만 꼭 일주문인 듯한 인상을 풍겼다. 건물은 대개가 돌이 아니면 벽돌로 지어져 있어 목재가 주소재인 우리 사찰과는 느낌이 달랐다.
건물마다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너나없이 향을 사르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불전 정중앙에 모셔져 있는 길상천모상(吉祥天母像)은 목재로 정교하게 조각이 되어 있었다. 라마교의 호법신 가운데 하나인 길상천모는 중생을 제도하고 사람들에게 지혜와 행복을 준다고 해서 사람들의 남다른 존숭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역시 이곳 관광의 압권은 대홍대다. 여러 건물을 개미굴 지나듯 헤치고 나오면 마지막으로 대홍대가 나타난다. 절 입구에서부터 시선을 압도하지만, 코앞에 두고 보니 정말 장대했다. 라사의 포탈라궁은 또 얼마나 엄청난 규모일지 엉뚱한 궁금증이 일었다. 좌우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그곳은 또 하나의 별천지였다. 20세기 초 군벌시대와 일본군에 의해 무수한 유물들이 약탈당했다지만, 여전히 많은 불상과 유물들로 가득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오늘날의 유람객들의 호기심을 채우기에 부족했는지 가운데 마당에서 흥겨운 민속 공연이 한창이었다.
벽에 걸린 10m가 넘는 불화를 배경으로 20여 명 남짓한 남녀 무용수와 악대로 구성된 공연단이 흥겨운 음악 반주에 맞춰 어지럽게 춤사위를 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간혹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매일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파장 무렵이라 마지막 장면만 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다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건물 뒤에 건물이 숨겨져 있어 도무지 규모를 종잡기 어려웠는데, 이곳에도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 공연이 한창이었다. 아래 마당의 공연이 부드럽고 여성적이었다면 이쪽은 굳세고 남성적이었다. 집단 무용이 끝나자 한 남자가 묵직한 바리톤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혼자서 10여 곡 이상을 줄기차게 뽑아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흥에 겨운 가수는 제 노래에 도취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일정이 빠듯하니 아쉬운 마음만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 보타종승지묘 대홍대. 7층으로 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훨씬 복잡하고 웅장하다. 각종 민속 연희와 불교 행사가 열려 참배객의 눈길을 끈다.
부처님을 향한 간절한 불심

보타종승지묘에서 동쪽으로 500m쯤 걸어오면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수미복수지묘가 나온다. 이 사원은 가장 늦게 낙성되어, 박지원이 열하를 찾아왔던 그 해(1780년)에 완공되었다. 건륭제의 7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온 6세 반선(班禪)이 머물면서 불경을 강의할 수 있도록 세워진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도 라마교 스님들이 거주하고 있어 앞부분만 공개되어 있었다.
이곳 건물은 주로 붉은색 물감으로 칠해져 있어, 엄숙함과 고색창연한 느낌을 함께 자아냈다. 3층으로 된 대홍대가 있고, 그 사이에 묘고장엄전(妙高莊嚴殿)이 육중한 몸매를 과시하며 참배객을 맞았다. 바로 이곳에서 6세 반선이 불법을 강의했는데, 전각 지붕에는 승천할 듯이 고개를 쳐든 청동으로 만든 용 여덟 마리가 꿈틀거렸다. 네 마리는 하늘을 향하고 네 마리는 땅을 굽어보고 있는데, 도금을 해서 햇빛에 비치면 찬연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더구나 한 마리의 무게가 1톤이라니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건물 안에는 층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여러 부처님들의 신상이 즐비했다. 등신대부터 주먹만한 것까지 크기도 형상도 빛깔도 다양했다. 대개 먼지가 자욱하게 앉아 있는 원래 채색을 감상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빈틈없이 불상을 채워 넣은 그들의 정성과 노력이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
행궁 뒤편에 가면 만수유리탑(萬壽琉璃塔)이 있다.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멀찍이서만 바라보고 나왔는데, 영우사 사리탑 못지않게 영롱한 자태가 아름다웠다. 팔각형의 수미좌 받침 위에 7층으로 된 팔각탑으로, 노란 빛깔이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혼탁한 세상을 항해하는 중생을 위한 등대를 만난 느낌이어서 반가웠다.
-----------------------------

사진설명
보타종승지묘 대홍대. 7층으로 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훨씬 복잡하고 웅장하다.
각종 민속 연희와 불교 행사가 열려 참배객의 눈길을 끈다.
수미복수지묘 내부에 있는 불상. 몸짓이나 얼굴 표정이 해학적이어서 세파에 시달린 중생들의 마음을 씻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