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뜨거운 신심의 소리

우리 얼 우리 문화

2009-04-27     관리자

   경주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그 앞뜰 종각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종이 제일 먼저 눈에 뜨인다. 우리가 보통 에밀레종이나 봉덕사(奉德寺)종이라고 부르는 이 종은 본 이름은 성덕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범종 가운데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갖고 있다.
   신라의 범종은 임진왜란 때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갔고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은 3구 뿐이다. 첫째는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범종으로 725년에 만들어 진 것이고 둘째는 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범종으로 확실한 제작연대를 알 수 없으나 그 만든 기법으로 보아 신라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다.
   에밀레종은 771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종 하나를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28년이었다. 곧 경덕왕(景德王)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해여 동(銅) 12만근을 들여 큰 종을 만들려 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갔고, 다시 그 아들인 혜공왕(惠恭王)이 그 뜻을 이어 왕위에 오른지 5년만에 성공하였다. 경덕왕은 왕우에 23년간 재위하였으므로 결국 2대에 걸친 기간은 28년이 되는 것이다.
   에밀레종은 그 높이가 3.33m, 지름이 2.27m이며 동 12만근을 지금의 무게로 환산하면 약 20톤에 달하는 큰 종이다. 그러나 신라에는 이보다도 훨씬 더 큰 종이 있었다. 바로 황룡사의 종으로 경덕왕 13년(754년_에 완성되었는데 그 무게가 49만7천근이었으니 에밀레종보다 4배가량이 더 큰 종이었다.
   이 황룡사종은 그 후 500년 뒤인 1238년(고려 고종(高宗) 16년) 겨울에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황룡사 구층탑과 함께 불길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원래 황룡사 구층탑은 큰목탑으로 선덕여왕 때인 645년에 처음 완공되어 그 위용을 드러냈었고 그 후 다섯차례나 벼락을 맞았으나 그 때마다 보수하여 600년을 견뎌오더니 결국 몽고병의 방화로 장육존상(丈六尊像), 황룡사종과 함께 잿더미로 화하였다. 그 당시 구층탑의 불길이 사흘 밤낮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니 그 웅장했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에밀레종은 완성된 후 봉덕사에 걸어두었으므로 그 후 봉덕사종이라고 불리웠으나 1460년에는 영묘사(靈妙寺)로 옮겨졌으며 다시 경주 봉황대 옆 남문(南門)밖에 두었던 것을 1915년 경주박물관 옛 건물로 옮겨놓았다. 경주박물관이 지금 위치에 새로 건축되자 에밀레종도 또 이 곳으로 옮겨져 그 앞뜰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땅히 사찰의 종각에서 아침 저녁으로 지옥까지도 깨뜨릴 법음(法音)을 들려주어야 할 이 에밀레종이 갈 곳을 잃고 이 곳 저 곳을 전전하며 관람객의 구경거리나 된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인다.
   에밀레종에는 하늘의 선녀가 종소리를 찬탄하는 듯 연꽃자리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두 무릎을 가지런히 꿇고 두 손으로 향을 공양하는 비천상(飛天像)이 새겨져 있다. 옷자락과 보배로운 영락들은 하늘을 향하여 자연스럽게 나부끼는데 그 아리따운 모습은 전부터 그자리에 앉아있는 선녀의 자태는 아니다. 지금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하늘에서 내려와 앉은 듯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그뿐인가. 선녀의 주위로 어지러히 떨어지는 하늘의 꽃비, 사뿐해 보이기만 하는 연꽃자리, 저 미륵부처님처럼 가벼워 보이기만 하는 나긋한 몸짓은 이 크고도 무거운 종을 허공으로 가볍게 띄울 것만 같다.
   에밀레종의 꼭대기에는 음관(音管)이 있다. 종을 매다는 고리에는 용이 허리를 구부린 모습을 조각하였고 그 옆에 음관이 굴뚝처럼 꽂혀있다. 이 관의 안쪽은 비어 있고 또 그것이 종의 내부까지 관통되어 있어서 종을 칠 때의 잡음은 이 관을 통하여 밖으로 빠져나가고 맑고 곱고 우렁찬 소리만 널리 퍼지게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에밀레종에서 보는 것처럼 비천상과 음관이 있는 것이 신라 범종의 특징이며 이러한 양식은 중국종이나 일본종에는 없다. 그들의 종은 그 표면에 밋밋한 선을 그어놓거나 띠를 둘러놓아서 거기에서 무슨 세련된 아름다움을 찾아 내기는 무척 어렵다.
   신라인들은 어찌도 이렇게 빈 구석이 없는 우수한 종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기술도 기술이려니와 뜨거운 신심이 그 바탕이었을 것이다.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 그 잎도 푸르고 꽃도 아름답듯이 신라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마르지 않는 신심. 그것이 이러한 에밀레종을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에밀레종을 만들 때의 전설을 기억한다. 어느 가난한 부인이 에밀레종을 만드는 범종불사에 동참할 시주금이 없어 자기의 여덟 자녀 중에서 가장 예쁘고 똑똑한 계집아이를 시주하여 번번히 주조에 실패하던 에밀레종을 완성케 하였고, 또 그래서 그 종소리가 어미를 찾는듯이 '에밀레, 에밀레'하고 운다는 이 전설은 그 전설이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간에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신라인들의 무너지지 않는 신심을 읽을 수 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 자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이다. 그 자식은 억만금보다 중하고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귀하다. 그러나 신라의 저 부인은 불법의 소리가 세상에 가득하기를 발원하여 귀엽고 예쁜 아이를 용광로 속에 던져 넣었다. 우리는 가장 귀중한 자식까지도 버릴 수 있는 신라인들의 뜨거운 신심을 기억해야하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 다시 되살려내야만 한다.
   이렇게 이루어진 에밀레종이니 또한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릴 까닭이 없다. 한적한 산사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는 누구에게나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이 범종소리는 사람이 만들었으나 억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속에 그대로 맞아들여 자연의 속삭임처럼 걸림이 없다. 뗑그랑거리는 서양종의 경박함도 거기에는 없으며 사람의 손길이 닿았으되 그 손길의 자취가 없다. 다 완성된 범종을 쳐보고 소리가 거슬리면 미련없이 다시 용괄로 속으로 종을 던져넣었던 신라 장인들의 마음은 바로 자연의 마음, 그것이었다. 하물며 28년의 긴 시련을 겪은 후에 완성된 에밀레종이겠는가?
   한 가지 소리로 이루어진 음악으로 이 종만큼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와 밀려드는 파도처럼 거역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종소리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종소리가 에밀레종의 표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의 뜻과 어우러지면 그곳은 바로 부처님이 계신 청정도량이며 하늘 선녀가 내려와 향을 공양하는 해탈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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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종소리 울리는 곳마다
   악은 사라지고 착함은 일어나서
   이 세상 모든 중생
   바다에 이는 물결처럼
   모두 함게 속박에서 벗어나
   개달음의 길에 오르게 하소서
   덩~~~~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