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출가일에 부쳐] 부처님 출가의 참뜻

부처님 출가일에 부쳐

2009-04-24     이종익

      1. 출가의 의의와 그 유래

   첫째「출가(出家)」곧 집을 떠난다는 말은 프라브라쟈 <범(梵) Pravrajya 파리(巴里) Pabbajja>인데 곧 우리 세속의 재산 ∙ 지위 ∙ 명예와 처자식 ∙ 부모까지 버리고 집을 떠나서 삼림(森林)에 들어가 도를 닦는 것이 출가자 ∙ 출가행자라고 하였다.
중국에도 옛부터 세속을 떠나서 깊숙이 산에 들어가 수도하였다는 것이 장자(莊子)에도 나타나고 그 뒤 전국시대 말에도 귀곡자(鬼谷子)니 황석공(黃石公)이니 하는 선인(仙人)이 있었고 또 한나라 시대에는 적송자(赤松子)니 상산사호(商山四號)니 하는 분들이 산에 들어가 장생의 도를 닦던 일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 불교가 들어온 뒤로는 불교의 출가수도 생활을 본받아 도교계통에서도 남악도사(南岳道士)니 무어니 하는 입산수도자가 많았다.
   그런데 인도에 있어서는 그보다도 오랜 옛적부터 베다(Veda)배대, 곧 지금 4천년 전부터 집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이 세속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끊어버리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가 되는 해탈의 길을 구하는 이른바 삼림행자(森林行者) ∙ 선인 등이 있었다.
   그 뒤에 바라문 교인들도 그 풍속을 따라 산림 한적한 곳에 들어서 수도에 전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출가수도하는 바라문들은 종교와 제사 철학을 맡아 온 국민의 최고 지도자 위치에 있게 되었으므로 국왕을 비롯한 만인의 존경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출가수도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 평민으로서도 50세 전에는 세속에서 장가들어 살림을 하거나 또는 벼슬하여 나랏일에 봉사하다가 50세 이후에는 집을 떠나서 입산수도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므로 인도에 있어서는 출가수도하는 것이 인생으로서 가장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로 인하여 죽은 뒤에 이상세계인 범천에 나서는 그와 동등한 하늘 나라에 나서 무궁한 복을 누린다는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2. 부처님의 출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도풍토에서는 출가한다는 것은 인생으로서 가장 거룩한 도를 닦는 수행인이 되어 현세에서 사회의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고 내세에는 천국에 나게 되어 깊은 복을 누린다는 뜻에서 사람들이 그 일을 중요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도 북부의 한 부족국가인 카비라성(迦毘羅城)주의 아들 싣다르타 왕자가 출가하게 되었다는 것은 좀더 색다른 뜻이 있는 것이다.
   매우 풍부하고 평화로운 카비라성의 왕자로서 장차 왕위를 이어받아 만민을 통치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있고 또한 호화와 향락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그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으로서 어찌하여 행복의 동산을 버리고 가시밭을 더듬게 되었든가.
   그 출가한 동기에 있어서「수행본기경(修行本紀經)」∙「태자서응경(太子瑞應經)」∙「보요경(普曜經)」∙「과거현재인과경」등에서는 대체로 인생이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무상을 깨닫고 그 생 ∙ 노 ∙ 병 ∙ 사에서 벗어나는 도를 위하여 마침내 출가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러 경전과 전기에 나타난 출가의 동기를 자세히 검토하여 보면 그 동기는 단순하지 않다.
   그는 어려서부터 비상한 총명으로 당시의 여러 학파의 학설을 탐구하여 4명(明) 5베다 등 60여 종의 학설과 학예 ∙ 기술 등을 다 통달하였으나 그 학설은 우주 ∙ 인생의 진리를 제각기 나름대로 풀이한 것으로서 정신사상계를 혼란하게 할 뿐이었으며 브라만교에서는 브라만을 우주의 최고신(最高神)으로 신봉하고 당시의 인도국민을「브라만 ∙ 크샤트리아 ∙ 베사 ∙ 수트라」의 네 가지 계급으로 구분하였는데 브라만은 종교와 제사 ∙ 철학을 맡아 보는 그 사회의 최상계급으로서 최초에 브라만신의 머리로부터 출생하였고 다음 크샤트리아 계급은 정치 ∙ 군사를 맡은 국방 ∙ 대신 등의 지배계급인데 최초에 브라만의 입으로부터 출생했으며 베사는 농사와 장사 ∙ 공업을 맡은 평민계급인데 최초에 브라만의 배로부터 출생되었으며 마지막 수트라 계급은 본디 인도의 토족들로서 살빛이 검었다.
   인도아리아족이 쳐들어와서 토족을 정복하여 노예를 만든 것인데 이들은 최초에 브라만신의 발 밑에서 나왔다는 설을 만들어서 그 네 가지 계급의 차별을 규정하여 제왕정치계급에서도 브라만교와 그 계급을 절대로 봉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밖의 잡신들을 신봉하는 일반 민간의 신앙도 매우 다채로웠다.
   그처럼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또는 사회적 계급을 관찰해볼 적에 모두가 불합리함을 깨닫게 되었다. 싣다르타 왕자는 그러한 문제 등에 대하여 큰 의문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브라만교도는 종교와 철학 ∙ 제사 등을 빙자하고 자기네를 떠받들어 달라는 횡포가 심했다.
   카비라성은 지방 천리도 못 되는 적은 나라로서 정치를 잘한다 해도 인도사회 전반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없으며 또는 이웃나라와 싸워가면서 국토를 확장하겠다는 야심은 싣다르타 왕자로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정신적 ∙ 현실적 문제는 싣다르타 왕자의 머리를 매우 복잡하게 하였으며 따라서 왕자가 나면서 그 어머니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왕자의 마음을 허전하고 아프게 하였으며 인생문제에 더욱 깊은 반성과 회의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철학문제 ∙ 종교문제 ∙ 사회문제 ∙ 인생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하여 고민하는 중 마침내 호화로운 왕궁생활과 아리따운 야소다라 부인과 갓난 라후라 아들을 다 떨어버리고 궁성을 벗어나서 인생으로서 가장 서글프고 외롭고 쓰라린 고행의 가시밭길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3. 출가의 연령과 일시

   그리고 싣다르타 왕자가 출가한 연령과 일시에 대하여 잠깐 고찰하여 보자.
   출가한 연세에 대하여 수행본기경 ∙ 과거현재인과경 ∙ 대지도론(大智度論) 3권 등에서는 19세에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장아함경 제4,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13, 증아함 56, 라마경(羅摩經) ∙ 유부비나야잡사(有婦毗奈耶雜事) 제20에는 29세 출가라고 하였다. 이 아함경 계통의 기록은 신빙성이 있다. 그리고 현재 인도지나 계통 태국, 버마, 실론 등 불교국에서는 29세 출가설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대학자들의 연구에서도 29세설을 바른 설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29세설을 믿게 된다.
   다음 출가 월일에 있어서는 수행본기경에는 4월 7일이라 하였고 태자성응경에는 4월 8일이라고 하였으며 장아함경 제4, 인과경 제2 등에는 2월 8일이라 하였다. 이것 또한 아함경설을 중시하여 예로부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2월 8일 설을 신봉하여 왔다.

      4. 석존 출가의 참뜻

   부처님이 출가하신 참뜻은 그냥 세속을 떠나서 산에 들어가 수도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인생 ∙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온갖 세속적인 애욕과 번뇌의 얽매임에서 해방되며 자기의 참모습을 되찾아 전 우주적인 대아를 완성하므로 천상, 천하의 제일도사가 되었다는데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