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조건을 유리하게 받아들여라”

만남, 인터뷰 / 정토회 지도법사•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

2009-04-23     관리자
새해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 “스님께 물었다 ‘바람 피운 남편, 어떻게?’”라는 제목의 불교 관련 기사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클릭해보니, 바람 피운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40대 여성의 질문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이어졌다.
“첫째 ‘안녕히 계세요’ 하고 헤어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파출부나 청소부를 해도 살 수 있는데, 나 싫다는 남자와 같이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남편에게 나보다 더 좋은 여자가 있다는데 그 여자하고 살라고 하세요. 우리나라에만 간통죄가 있지 외국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미워하지 마세요. 미워하면 나만 괴로워요. 남편은 다른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노는데 그런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처음부터 허를 찌르는 답변이었다. 신선한 충격과 함께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스님이 제시해준 고민 해결법은 새로운 인식의 경험이었다. 나와 그다지 상관없는 고민이었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삶의 문제가 한 꺼풀 벗겨지는 듯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인터넷의 엄청난 파급효과로 인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어느 인터넷서점의 불교서적 베스트셀러 15위 안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세트』를 비롯해 스님의 저서가 5권이나 오르기도 했다.
스님은 2000년부터 즉문즉설 법회를 열고 있다. 이때 쏟아져 나오는 질문은 각양각색이다. 질문자들은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실제적인 문제들, 즉 부부관계, 자녀교육, 직장생활, 우울증, 경제 파탄, 실업, 수행의 경계 등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괴로움을 토로한다. 그때마다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통해, 고민 해결은 물론 삶을 바르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희망을 안겨준다.
“어느 바닷물을 가져와도 그 맛은 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어느 문제를 가져와도, 불법(佛法)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반야심경의 핵심 가르침인 ‘색즉시공 공즉시색’만 제대로 알아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것은 상(相)에 집착해 온갖 분별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꿰뚫어보면 상은 마음이 만든 하나의 환영(幻影)일 뿐입니다. 만물 그 자체는 옳고 그른 것도 아니며 좋고 나쁜 것도 아닌 그냥 하나의 존재입니다. 그러한 존재의 공성(空性)을 보게 되면, 괴로움이 일어날 당체(當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님이 말하는 즉문즉설의 핵심이다. 그러나 스님은 즉문즉설 문답에서 ‘상’이나 ‘공’이라는 불교용어를 쓰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준다. 질문자가 실제 겪고 있는 괴로움의 상황으로 직접 들어가, 불법의 공성을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법문은 불법의 이치를 깨치도록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법의 이치를 알아도 현실에서 실천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무지로 인해 이미 오랫동안 습관화[業識] 되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분별심이 일어나고 그대로 행동해버립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참회하는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설령 일어나는 마음을 그 순간 놓쳤더라도 ‘내가 또 상을 짓고 집착을 했구나’ 하며, 놓친 후라도 자각하여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괴로움이나 미움이 일어나더라도 지속되는 시간이 열흘에서 하루, 하루에서 한 시간, 한 시간에서 찰나로 점점 줄어들 수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순간순간 자각하며 깨어있어야, 내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중이고, 그곳이 절이며, 이것이 불교라네”
▲ 평화재단의 활동을 담은 평화연구 자료집과 보고서
법륜 스님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69년 경주 분황사에서 도문 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했다. 스님은 사회개혁과 민주화의 열망이 가득하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 사회운동을 하던 형님들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젊은 시절을 관통하며 민주화운동과 불교개혁운동에 앞장섰으며, 1983년 한국대학생연합회 지도법사로 대학생들을 이끌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스님의 삶에 일대변혁을 가져오는 계기가 일어났다.
“이삼십대에 사회와 불교의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암 큰스님께 기존의 불교에 대해 분노에 가까울 만한 비판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제 말을 다 들어주시더니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곳이 절이며, 이것이 불교라네.’ 그 말씀은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허공의 헛꽃을 꺾으려는 것처럼, 불교 아닌 걸 불교라고 생각하며 개혁시키려 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먼저 불법에 온전히 귀의하고 정진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후 스님은 비판보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방식으로, 불교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잡아나갔다. 바른 불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1988년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했다. 정토회는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바탕으로 이 땅에 정토세상을 실현하고자, 환경운동, 제3세계 구호활동, 대북지원, 평화운동 등을 펼쳐나가며 한국불교와 사회에 새로운 흐름을 선도해나갔다.
“불법에 대한 이해는 필연적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이고 있으면 무게에 눌려 땅만 쳐다보며 걷게 됩니다. 그러나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면 저절로 고개가 들리고 주위를 살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웃의 조그만 짐이라도 들어주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통해 자기 문제가 해소되면 고마운 마음이 들어, 보시도 하게 되고 봉사도 하게 됩니다. 자기와 자식밖에 모르던 사람이 밥 한 톨 안 버리겠다고 빈그릇운동도 하고, 북한 돕기 모금도 나가고, 인도에 봉사활동을 가기도 합니다. 불법에 의지해 행복을 얻으면 이것이 부처님의 가피이고, 가피를 얻으면 저절로 신심이 일어납니다. 수행과 생활이 하나 되어, 일체중생의 은혜를 깨닫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정토화하는 문명 전환 운동
법륜 스님은 2004년 미래에 대한 장기전략을 연구하는 ‘평화재단’을 설립하고, 현재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 곧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보고, 북미 수교, 북핵 폐기, 평화통일 등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해외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 여러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또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이런 갈등 속에서 2천만 북한 주민이 또다시 굶어죽는 일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북한동포들의 아사를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통일문제가 시급하게 다가오고 있으므로 국가적으로 총체적인 대책이 빨리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관군의 힘이 부족하니,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병을 모으는 일이 필요합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의병운동과 같습니다. 이 문제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 등 주변국의 관심과 도움을 이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설득하고, 정책이 바뀔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해나가야 합니다.”
스님은 평화재단 활동을 사회운동의 마지막 영역 개척으로 삼고 있다. 한반도 평화운동의 기틀이 세워지고 시스템이 구축되면, 다시 수행으로 돌아가려 한다. 서양사회에 불법을 전하는 토대를 마련하여, 시대적 과제인 환경, 평화, 공동체, 인간성 회복의 대안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이미 개척된 영역인 환경운동과 제3세계 구호활동을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활용과 생산공동체 설립을 통해 발전적으로 변화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앞으로 인류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적인 모델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문명 전환 운동을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부처님께서 승가라는 모델을 만드셨지만, 열반하시고 2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 확산되었습니다. 이렇듯 제가 하는 활동들이 지금 당장 문명 전환의 꽃을 피울 수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뿌리는 정도는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겠지만,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세상을 정토화하는 일을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불법을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을 깨우쳐 행복으로 이끌고, 인류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새로운 문명을 확산시켜가는 스님의 걸림없는 행보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스님께 마지막으로 경제 침체로 인해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즉문즉설을 부탁드렸다.
“본질을 꿰뚫어보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그동안 우리가 만든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투자의 거품이 빠지는 중이므로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일 뿐입니다. 이것을 알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버텨내야 합니다. 목이 아프면 말을 할 수 없어 불편하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게 되고 묵언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물에 빠진 김에 조개를 줍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유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실직을 했다면 당장의 괴로움은 크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열심히 일한 대가로 인생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운동, 가족간의 대화, 여행, 효도, 불교공부 등을 하며, 여유를 갖고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보십시오. 좀더 지나보면 이 어려운 시기가 내 삶의 가치관을 바꿔주는 고마운 기회로 여겨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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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 _ 정토회 지도법사, 평화재단 이사장. 1969년 경주 분황사에서 도문 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했다. 20•30대의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과 불교개혁운동에 열정을 쏟았고, 1988년 아름다운 자연, 평화로운 사회, 행복한 인생을 가꾸며 정토세계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로 정토회를 설립했다. 이후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평화재단 등을 설립하여 환경운동, 제3세계 구호활동, 한반도 평화운동 등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2000년 만해 포교상, 2002년 막사이사이상, 2007년 민족화해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답답하면 물어라』,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행복하기 행복전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