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도 깬다"

미국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 보스턴 미술관 소장 국보급 불사리 반환을 추진 중인 혜문 스님

2009-04-23     관리자
▲ 해외반출 문화재 반환을 위한 미국방문단이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 소장 중인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의 보관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종교라는 것 자체가 제자리를 찾는 일입니다. 구도와 수행이란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지요. 우리가 문화재 제자리 찾기에 헌신하는 것도 왜곡되어 있는 현실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큰 수행이라고 봅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의 말씀이다. 혜문 스님은 지난 1월 7일 해외반출 문화재 반환을 위한 미국방문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체류하며, 벌써 두 달째 보스턴 박물관 관계자와 접촉을 통하여 일제시대에 이곳으로 건너와 소장된 불사리 및 사리구의 반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혜문 스님이 추진하는 반환 대상은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이다. 이 사리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제작되어 600년 넘게 한국의 사찰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정광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지공 스님 그리고 나옹 스님의 유골을 함께 모셨으며,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식의 제작기법으로 후대에 나오는 사리구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종교사적 미술사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가진 유물이다.
이것이 보스턴 박물관에 소장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일본의 도굴 전문회사에 의해 이곳으로 넘겨진 까닭인데, 그렇다면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성스러운 유골이 벌써 80년째 이역만리 타국에서 알아주는 이 없이 방치되고 있었던 셈이다.
“문화재와 예술품은 인간의 세속적 탐욕과 이기심의 궁극적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재를 소유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 사회 최고의 권력계층이지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국내 문화재의 16%를 특정 재벌이 소유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제국주의 열강시대를 거치면서 제3세계의 엄청난 문화재들이 소위 말하는 선진국의 박물관으로 넘어가 있습니다. 강대국의 탐심과 이기심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해외반출 문화재를 반환받아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일은 강대국의 탐욕과 이기심을 해체하는 힘든 일이지요.”
혜문 스님의 설명이다. 힘든 일이지만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원칙은 너무나 명백하고 강력하다. 문화재의 제자리는 바로 원산국이기 때문이다.

우려와 냉소를 이겨낸 문화재 반환의 성과
이번 유물반환 교섭 대상인 보스턴 박물관은 1870년 개관하여 전 세계에서 수집한 45만 점 이상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 가운데 하나이며, 이곳에서 유물들을 조사, 구입, 보전 및 전시하는 일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는 해당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혜문 스님의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이런 전문가들을 상대로 박물관의 생명과도 같은 소장품을 순순히 내놓도록 하는 일이었다.
해서, 젊은 스님 한 분이 주도하는 방문단이 세계에서 가장 명망 있는 박물관으로부터 한국의 문화재를 반환받기 위하여 도미하였다는 짤막한 현지 신문 보도에 대한 반응은 환희심과 격려 보다는 우려와 냉소였다.
“스님이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아무리 그래도 걔들이 주겠어?” “글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니깐.”
하지만 여기에 오기까지 혜문 스님은 지난 5년간 ‘문화재 제자리 찾기’라는 시민단체를 주도하며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왔다. 2004년 은사이신 봉선사 주지 철암 스님으로부터 소임을 받아 꼬박 1년간 문화재 현황조사의 실무를 진행했던 혜문 스님은 이때부터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후 삼성미술관과 1년 2개월에 걸친 송사를 거쳐 현등사에서 도굴되었던 사리와 사리구를 반환받는 성과를 일궈냈다. 또한 도쿄대학에 소장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11차례의 방문과 교섭 끝에 반환받은 일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특히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회유하고 만류하는 상황들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해냈고, 우린 그 연장선상에서 보스턴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삼성미술관과 긴 송사를 거치는 동안 혜문 스님과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비정상적으로 유출된 사리와 사리구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확고부동한 논리를 정립하게 되었다. 삼성미술관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진 내공을 이번에는 보스턴 미술관을 향하여 정조준하였다. 혜문 스님과 방문단은 보스턴 미술관 관계자들과의 회동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리는 신체의 일부로서, 거래를 통해 소유권이 이전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 따라서 적법한 대가를 치루고 구입했다 하더라도 보스턴 박물관의 소유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예술품이 아닌 종교적 예경의 대상인 만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동안 보스턴 박물관 관계자와 2차례 회동을 가졌고, 15차례에 걸쳐 서신 교환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2월 27일 보스턴 박물관으로부터 팩스를 통하여 서한을 전달받았다. 박물관 부관장 케이티 겟첼 명의의 공식 서한이었다. 그동안 회동을 통하여 해당 유물에 대해 진지한 검토를 한 결과 입수 경위에 있어서 박물관 측의 잘못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반환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곧 열리게 될 이사회만 찬성한다면 반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이사회가 열린 것도 아니고 이사회를 통과한 것도 아니지만 이것이 현직 부관장의 서한이라는 점에서,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의 반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혜문 스님의 확고한 의지와 철저한 준비과정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박물관에서 사리를 내어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지요. 보스턴 미술관이 이런 입장을 갖게 된 배경에는 반환운동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통해 진행한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또한 몇 년간의 준비과정을 통해 보스턴 미술관보다 세밀하고 정제된 자료를 우리가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스턴 미술관의 변명과 대응에 대해 조리 있게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깬 것입니다. 영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도 깨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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