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롬(cd-rom)에 담기는 팔만대장경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해인사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종림 스님

2009-04-23     관리자

“절받는데도 쑥스러워하시는 스님이신데... .”
지난 1월 19일, 팔만대장경 전산입력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열린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 멀리서 스님을 바라보는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들이었다. 심각한 표정이라곤 모르시는 스님이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들뜬 인사와 축하,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에 낯설어 하며 예의 그 소박한 웃음이다. 그래도 스님이 다소 긴장하셨는지 그 소탈한 웃음이 크지 않다. 그 모습을 보는 기쁨이 더해진다.

1237년 외세(몽고)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임금과 백성이 한마음으로 이루어낸 대장경 판각, 국난극복의 민족적인 염원에서 나라의 온 힘을 기울여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하여 16년 만에 완성한 8만여 판에 이르는 팔만대장경이 750여 년 만에 시디롬(CD-ROM) 이라는 한뼘 크기의 동그란 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새롭게 탄생되었다. 그 탄생을 이루어낸 이가 바로 그 천진한 웃음을 갖고 있는 종림 스님(해인사 고려대장경 연구소 소장)이시다.

그런데 소탈한 웃음, 격식 차릴 줄 모르는 모습의 종림 스님에게는 과학적이라는 말보다 진보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하다. 아니 다양하게 열려 있다. 그 열려 있음을 통해 이것 저것을 받아들이고 되새김질해 스님의 것으로 만든다. 또 욕심은 금물(?)이기에 애써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나타내지도 않는다.

과학의 합리적인 이미지와 논리가 전부인 양 맹목적으로 과학에 집착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스님은 벌써 오래 전 과학이 갖는 비논리적 측면과 ‘과학=합리적’ 이라는 이미지에 반하는 주장도 들어 두었던 터다. 아니 이런 말도 내비치지 않으신다. 그저 스님이 눈여겨 보는 [방법에의 도전] (폴 페이어아벤트 저] 같은 책을 통해 스님의 생각을 짐작할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해 보면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또다시 스님을 아주 근엄한 표정의 심각한 한 스님 정도로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쪽에 반쯤 읽다 놓은 열 권짜리 박봉성의 만화[지킴이의 후예]를 보면 종림 스님의 또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일면 일면을 통해 스님의 마음 깊은 곳을 만나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스님이 팔만 대장경을 시디롬에 담아보려는 ‘꿈꾸기’를 시작한 것은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D N A 의 분열, 복제와 인간의 지능 발달사를 다룬 [에덴의 용]이라는 자연과학 서적의 한 부분에서 스님은 컴퓨터를 통해 우리 불교의 벽을 깨고 또 그럼으로 해서 자신의 벽을 깨는 자신의 ‘분신’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물어물어 컴퓨터 학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땐 물론 지금처럼 시디롬은 생각지도 못했다. 64비트금 컴퓨터가 도태되고 있는 지금 그땐 8 비트급도 일반인에게는 신기한 기계(?)였던 ‘80년대 초였으니까.

그후 해인사 도서관장으로서 해인사 도서목록을 컴퓨터로 입력하게 되면서 대장경을 컴퓨터로 입력시키면 좋겠다는 보다 구체적인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이 온 백성, 온국력을 다해 이루어졌던 것처럼 한 개인, 스님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년 여 일본 국제선학연구소 생활 중에 스님은 선진화된 일본의 불교 전산화 작업을 만난다. 각 사찰과 교단별로 필요한 부분을 꾸준히 전산화해 온 일본의 불교를 보았고, 또 그 자료의 검색과 이용을 통해 쉽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당시 한자 정보전산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한자 자동인식 프로그램이 실용화됨을 알게 되었고, 함께 유학하고 있던 혜묵 스님등과 고려대장경의 전산화 구상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구체적 계획을 수립, 추진하게 된다.

그렇게 일본과 중국에서 수집한 입력방법 등의 자료를 가지고 스님은 92년 경 고려대장경 경판을 보관해 온 해인사에 돌아왔다.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지금까지 자연상태로 보존이 가능했던 고려대장경을 이제는 과학기술에 의한 새로운 보존 방법으로 보존해야 할 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은 당시 피폐하고 혼란한 종단의 모습을 바꾸는데, 이 작업이 불교의 미래를 볼 때 더 중요하고 더 좋은 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데 진을 다 빼버릴 정도였고 오히려 교계쪽에 우리 인력이 나가는 정도였지요.
‘93년 3월에 이 사업의 추진 기구로 ’해인사 대장경연구소‘를 발족했지만 처음부터 준비가 다 되어서 재정적 지원이나 물적 지원을 받아가면서 한 건 아니에요. 실제로 우리가 작업을 위해 사람도 모아야 하고 돈도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해묵 스님, 진각 스님, 본해 스님 등 몇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거지요."

입력 속도의 난점과 재정적, 인적 재원 확보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울 사무소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서두름이 없이 일을 지켜온 스님 몇몇 기업의 DB구축 작업 프로그램에 대장경의 전산화가능성을 타진하던 중 그 가능성을 인정한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을 얻어 본격적인 입력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40여 명의 전산입력 요원과 5~7명의 입력 관리요원이 편성되고 연인원 10.925명이 투입되었다. 14개월에 걸쳐 재조대장경(1237~1251) 81,258판을 기본원고로 하여 52,801,771자에 달하는 한자 모두 입력하는 대작업을 끝낸 대장경 전산화는 올 1월 1차로 팔만대장경 시디롬을 선보임으로써 가시적인 성과물을 보여 주었다.
이번 팔만대장경 입력은 한자본 대장경에 있어서 세계 최초로 대장경 전체를 입력한 것으로 한자본 대장경의 규모를 파악하게 함으로써 통합대장경 전산화의 구체적인 방향을 마련했으며, 이를 위한 연구역량의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대장경을 비롯한 불교학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대장경 전산화 작업은 표점 작업, 교정작업 검색프로그램 개발, 한글대장 경과의 상호 활용문제, 인터넷 서비스 제공 등의 일이 남아 있다. 표점작업은 본래 마침표나 쉼표가 없는 원본에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문장부호를 제 위치에 부여하는 작업으로 이는 한글 대장경과의 검색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또한 2차 교정작업은 오자 없는 완벽한 대장경을 위해서 각 강원과 전문가를 통해 교정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 작업은 입력작업보다 더 큰 공력을 쏟을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500여 명의 교정요원이 투입되어 2년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이 일은 실제로 누구도 안 해본 일입니다. 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어떤 모습으로 결과가 나타나야 할지 아무도 자신을 못하는 일인 거지요. 직접 해 보아야 아는 일이고 아직 그 작업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고려 대장경이 현대에 맞게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데 아무런 기준이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요.”앞으로 짧게는 2년여 남아 있는 작업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장경연구소는 성금모금작업으로 중앙일보, 불교방송 등 각 언론기관과 협력하여 ‘ 팔만인 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입력화보도 그렇고 재정화보도 쉽지만은 않을텐데 스님은 별 내색을 않는다. 어느 때라도 허허 웃으시는 조급함을 모르는 그런 스님이다.

 이렇게 ‘97년 말쯤 어느 정도라도 대장경의 전산화가 완료되면 우리는 보다 쉽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경전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멀티미디어 시대라는 요즘 컴퓨터 통신을 통해 ’팔만대장경‘ 방으로 들어가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으며 직접 시디롬을 갖고 있다면 어디서든 손쉽게 가지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방대한 그 대장경을 일일이 펼쳐볼 필요없이 찾고 싶은 단어나 내용의 검색을 통해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다.

또한 한글대장경의 전산화가 완료되면 한문과 한글내용을 비교해 볼 수도 있게 된다. 이는 그동안 한자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그 사용이 쉽지 않았던 대장경을 우리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불교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촉진 시킬 것이다. 8만여 장의 경판이 75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어 온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대장경 중 가장 세련되고 완벽한 불교성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될 만큼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문화재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은 결코 연구소 같은 작은 규모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범 종단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해야 할 대작불사인 것이다. 한 스님의 꿈에서 가까운 스님에게로 그리고 또 가까운 이들에 의해서 서두름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일이 오늘 이렇게 새로운 탄생을 맺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직 “제 2의 대장경” 탄생에는 그것이 탄생인 것처럼 보완되어져야 하고 가다듬어져야 할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그것은 분명 고려대장경의 뜻이 그랬던 것처럼 불자들은 물론 온 국민의 국가적인 정성과 몫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원과 원이 합쳐지면, 내가 변하고 우리가 변하고, 꿈이 현실로 변하여 마침내 세상이 변하게 됩니다.”

소탈한 웃음 속에 눌변으로 어루만지는 종림 스님의 말씀이 또 마음에 메아리쳐 들려온다.
한 자 한 자에 3배 하며 8만여 판을 16년 동안 판각하였다는 그 정성이 첨단 과학의 시디롬 한 장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 오랜 세월을 지켜온 부처님의 말씀을 시디롬 한 장에 담아 집안에 모시고 쉽게 찾아보고 가깝게 접해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