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출판의 성장과 도전

연중특별대담 / ‘변화’의 키워드로 본 우리 불교

2009-04-23     관리자


사회 :  류지호 (월간 「불광」 주간)
대담 :  김시열 (도서출판 운주사 대표) 
           성재영 (도서출판 민족사 기획영업부장)
           이현수 (불서읽기모임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 회원)


김시열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92년 출판계에 들어와 오로지 불교출판의 한 길을 걷고 있다. 2002년부터는 도서출판 운주사의 대표를 맡아, 불교학술서, 불교실용서, 불교인문서, 불교만화 등 다양한 분야의 불서를 펴내고 있다.










성재영 - 우연히 불교를 만나 마음의 평온을 얻게 되었고, 1994년부터 도서출판 민족사에서 불서를 기획하고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기획영업부장으로서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불서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이현수 - 독서가 겸 수필가. 민간기업연구소에서 퇴직한 후 뒤늦게 불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불서읽기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불교포커스에 ‘들돌의 간서삼매기’라는 독후기를 쓰고 있다. 저서로는 독서에세이 『황홀한 책읽기』가 있다.











_______ 최근 불교계 출판 시장이 뜨겁다. 매년 200종 내외로 출판되던 불교 관련 서적이 작년의 경우 350종가량 출판된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판매부수 역시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 유통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겪고 있는 일반 출판계의 불황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불교 출판의 활성화로 인해 불교계 안팎에서 긍정적인 변화들이 감지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불교의 발전과 포교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불교 출판이 무엇에 중점을 두고 지향해 나가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_______


【 2008년 불교 출판계의 특징과 현황 진단 】
류지호 ▷ 최근 출판 통계에 따르면 전체 출판계는 불황이었지만 종교 또는 명상서적의 성장률은 185%에 이른다고 합니다. 불교 출판계도 신간이 어느 때보다 많이 발간되었고, 전년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좋은 변화의 조짐 속에서 그 원인과 내용을 찾아보고, 앞으로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지난 해 불교 출판계의 특징과 현황을 살펴보면서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겠습니다.

김시열 ▷ 지난 해 발행된 불서(佛書) 신간은 약 35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평균적인 출판 종수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불교 전문 출판사들이 의욕적으로 일하며 본연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일반출판사에 뒤처졌던 기획력과 내용, 디자인, 유통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쟁관계를 이룰 수 있을 만큼 그 역량이 커졌다고 보아도 될 듯합니다.

성재영 ▷ 90년대에는 그저 몇몇 출판사가 불교 출판계를 이끌어가는 형국이었는데, 그마저도 IMF를 맞으며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을 전후해서 대표적인 불교계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는 기존의 불광출판사, 민족사, 운주사, 조계종출판사 등이 경쟁적으로 서로 좋은 자극을 주며 신간 종수를 늘려갔고, 상업적으로도 조금씩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 외에 중견 출판사들의 몰락도 있었지만 신규 출판사들의 약진으로, 10개 내외의 출판사들이 불교 전문 출판사라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불교 출판계가 기획력과 자본력의 부재 때문에 그동안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는데, 지금과 같은 추세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좀더 공격적으로 움직인다면 향후에 더욱 큰 성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봅니다.

이현수 ▷ 저는 연간 350종의 불서 출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인터넷 서점의 종교 부문에 들어가면, 10% 정도가 불서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웃종교 서적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제 마음이 불교 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불서를 읽는 양이 크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불교 출판계가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분야의 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350종의 불서 출판이 반가운 현상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만족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시열 ▷ 예,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에 고려원, 시공사, 세계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출판사들이 불교출판에 관심을 가지고 시리즈(총서)를 기획해 출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대 자본과 우수한 기획으로 야심차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 출판 시장이 가지고 있는 냉정한 현실로 인해 현재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볼 때, 열악한 자본력과 작은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전문 출판사들이 계속 이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문서포교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고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지호 ▷ 지난 해 상황을 살펴봤을 때, 발행 종수도 많아지고 매출 면에서 차츰 안정적인 구조를 갖춰가지만 이웃종교에 비하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근 발행되는 불서들의 경향은 어떻습니까?

김시열 ▷ 발행 종수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유효한 흐름이나 통계를 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의 측면은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존의 불서를 떠올리면 비슷비슷한 경전류나 법어집, 약간 쉽게 쓴 입문서, 스님들 에세이 정도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세분화되고 사회 구성원이 요구하는 수준이 다양한 만큼, 불서도 이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제공해야 하는 흐름에 놓여져 있습니다. 수행서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참선과 화두 아니면 나올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수행과 관련된 서적만 해도 10종이 넘습니다. 위빠싸나, 염불 수행법도 마찬가지로 세분화되어 출판되고 있습니다. 대중들이 갈구하는 바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현수 ▷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명상 서적의 유행이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진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양도 크게 증가했고, 그런 가운데 명상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 것은 누가 선도하고 이끈 결과라기보다는 사회적 현상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명상은 불교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불교가 명상서적의 유행을 선도하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출판계뿐만 아니라 불교계 전체가 사회적 이슈를 선도하는 데는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 눈을 떠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불교 출판계의 공격적인 변화의 움직임으로 봐서, 앞으로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성재영 ▷ 예전 불서 출판의 형태가 편한 책을 손쉽게 기획해서 유사한 책들을 냈다면, 이제는 분명 달라지고 있습니다. 참신한 기획을 전제로 하여 새로운 출판 문화를 선도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져 종수와 매출의 증대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출판문화협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좋은 불서를 소개하고 불서 읽기 붐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올해의 불서 10’ 선정이 점차 주목을 받으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작년에는 조계종 문화부와 연계하여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조계사에서 ‘제1회 불교도서전’을 열었고, 연말에는 불교출판문화상을 제정하여 수상했습니다.

【 불서 유통의 변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조화 】
류지호 ▷ 유통 쪽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변화의 움직임이나 특징적인 것이 있습니까?

성재영 ▷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입니다. 서점들은 철저히 상업적이기 때문에, 책이 팔리지 않으면 시장에서 버틸 수가 없습니다. 종교 분야에서 불서 매출은 이웃종교의 1/1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매장에서도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불서에 호의적이던 지역의 중소형 서점들마저 대형서점의 잠식과 온라인의 영향으로 줄줄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한 3년 전부터 온라인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깨닫고, 온라인 시장에 중점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커져가는 온라인 시장에 대처하기 위해 전문 출판사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해 공동마케팅도 해볼 수 있고, 출판사별로 개별적인 파워 게임도 펼치며 불서의 영역을 넓혀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시열 ▷ 온라인 시장에서 새롭게 창출된 구매층이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 중소형 서점들이 붕괴되면서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기존의 구독층은 상실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개선책으로 각 사찰에서 작은 규모라도 서점을 운영하여 기존 독자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종단 차원이나 스님들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온라인이 하나의 대세이긴 하지만, 불자들의 특성상 기존의 오프라인 부분도 여전히 중요하고 내실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이현수 ▷ 출판사나 독자들만의 문제로 푸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고, 종단까지 포함되지 않고서는 개선책이 나오기가 참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전체적으로 불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 폐습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스님들이 적극적으로 앞장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찰에 서점을 열어 불서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불서읽기운동의 진흥 차원에서 도서실을 갖춰서 운영해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김시열 ▷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에서 관심을 가져줘서 도서전시회, 불교출판문화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종단에서 불교출판의 현실과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커다란 진전이고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좀더 확대되어서, 부서 단위를 뛰어넘는 종단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스님들의 의식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신도들이 불서를 가까이 하도록 적극 유도하고 이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전처럼 문자를 무시하는 경향은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도, 신도들을 지적(知的)인 공(空)의 상태로 방치하는 것도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재영 ▷ 예전에 스님들은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해서 ‘책을 읽지 마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불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을 당연시 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불자들에게 스님의 말씀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어느 법회에 참석했는데, 스님이 법문을 하시면서 법문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자 많은 불자들이 그 책을 구입해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님들이 법문하실 때,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이 달의 불서’를 선정해 불자들에게 안내해주신다면 불교 출판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현수 ▷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씀입니다. 저희 불서읽기모임에서도 책을 읽다가 특정한 구절을 짚어서 관련한 책을 소개해 주면, 많은 회원들이 그 책을 사서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 불교 출판의 사회적 역할과 발전 방향】
김시열 ▷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 불교계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그러한 원인은 불교의 테두리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사회 인식 수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자의 다수가 나이든 분들로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적고, 반면 불교계를 움직이고 영향력을 미치는 분들은 사회 참여에 있어 소극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불교 전체에 팽배해 있습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포교와 매출의 양축을 항상 같이 고민하게 되는데, 불교계의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므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평화, 생명, 환경, 인권, 통일, 사회적 소수자 권리 등 사회 전체가 만들어가야 할 가치와 방향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불교계가 적절한 답을 해줘야 하는데, 현재 불교계의 상황으로 보아 이러한 문제들을 다룬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경제적 측면은 포기해야 함을 뜻합니다. 불자들의 사회 인식이 성숙되지 못하다는 점이, 출판사들이 보다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는 데 하나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류지호 ▷ 불교 출판계가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기획력이 부족하고, 시장에서 검증도 해보지 않고 지레 겁먹고 포기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생존의 문제도 고려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좋은 책을 내야 하는 책무도 소홀히 할 수 없지 않을까요?

김시열 ▷ 아무래도 불교 출판을 오래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예단을 하는 폐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는 지식창출에 있어서 매개자 역할을 담당합니다. 학자, 연구자, 스님, 오피니언 리더 등은 지식 창출자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불교계는 다양한 목소리와 진보적 견해를 제기해야 할 지식 창출 그룹이 너무 미약하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종단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죠. 거기에 우리 출판계도 큰 문제의식 없이 동조하고 있다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또한 기획에 있어 모험을 피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기존의 안정구도를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기존의 틀을 확 깨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반성과 고민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류지호 ▷ 지금까지 진단이나 현황을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변화 발전하는 속에서 불교 출판의 긍정성을 찾아내는 이야기들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능 면에서 볼 때 출판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독자의 입장에서 불서를 읽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시열 ▷ 불교 출판이 발전하려면 불서 시장의 활성화와 불자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어야 합니다. 좋은 불서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애정어린 비판이 나올 수 있고, 그래야 스님, 출판사, 필자, 독자들이 서로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의 필진이나 출판사 모두 그 당시의 지식을 가공하고 만들어내는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발전을 했습니다. 남방이나 유럽, 미국 등 세계 각지로 공부하러 떠났던 학자와 수행자들이 돌아와 질적으로 우수한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를 잘 활용하여 독자들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출판사들이 기획과 편집 역량을 키워 좋은 책으로 엮어내야 할 것입니다.

성재영 ▷ 불교 출판의 활성화는 포교와도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포교의 제일선에서 사람들에게 불교의 바른 가르침과 불교적 가치를 심어줌으로써 깨어있는 불자를 양산하고, 이들로 하여금 널리 불교를 알리는 역할을 하게끔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 의도대로 책이 잘 나와서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역시 불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대를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해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보란 듯이 깨졌을 때 심한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과 시행착오가 쌓이면서, 오히려 인내심이 키워지고 더욱 분발하게 되어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현수 ▷ 저의 경우를 보자면 나이가 들어 세상을 알 만할 때 불교가 보였어요. 지나친 낙관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많은 분들도 때가 되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온다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가르침을 담은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 바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몸이 불편한 사람이지만, 세상을 비관하지 않고 젊고 건강한 생각으로 살 수 있게 된 원천은 책과의 친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불교의 시대적 흐름과 불서의 다양성】
류지호 ▷ 예전의 소품종 다량 생산에서 지금은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양성을 유지하며 독자들의 여러 요구를 수용해서 보급하는 게 출판사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빠알리어나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책도 많아졌고, 티벳불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도 좋게 나타나는 것 같은데요.

김시열 ▷ 80, 90년대에 많은 연구자나 수행자들이 해외로 나갔습니다.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갔을 수도 있고, 한국불교의 근현대 모습에서 실망을 느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래의 수행 체계에 어떤 한계를 느껴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렸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역량이 한 20년 정도 되니까, 이제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세상에 드러내놓을 수 있는 때가 된 것이죠. 그 결과물이 하나둘 나오면서 점점 가속이 붙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관심과 근기가 다른 만큼, 각자 원하는 수행법과 신앙생활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제는 누구나가 전 세계의 불교를 체험하며 자기만의 수행법을 찾아가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양화 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러한 바람직한 물꼬들을 우리 출판계가 뚫어줘야 하고, 그 새로운 물꼬를 잘 전달해주어 불교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불교 출판사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류지호 ▷ 문서포교의 측면에서 불교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 불서를 전해주는 것도 출판사의 중요한 책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교용어나 사상이 다소 어렵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선뜻 불서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풀어주기 위해 좀더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시열 ▷ 가령 미국화된 티벳불교는 영어로 쉽게 풀어놓았기 때문에, 우리 말로 번역을 해도 편안하게 이해가 됩니다. 필자들에게도 쉽게 쓸 수 있도록 요구를 해야 하고, 출판사에서도 지속적인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현수 ▷ 표현이나 편집이 좀더 과감하고 젊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셀 수 없이 많은’이라는 뜻을 가진 ‘무량(無量)한’이라는 말을 불교계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쓰잖아요. ‘항하사(恒河沙)’는 또 어떻습니까. 별도의 설명이 없으면 일반인들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를 너무 남용하고 있습니다. 불교를 잘 모르거나 젊은 사람들이 읽어도 통할 수 있는 말로 쉽게 풀어서 쓸 필요가 있습니다. 무서운 표정의 사천왕상보다는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자승 캐릭터를 대중에게 더 자주 노출시키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재영 ▷ 역발상으로 생각하면, 일단 풀어쓰고 괄호 안에 용어를 써놓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 ‘내려놓음’이라고 하는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는 원래 불교용어로 하심(下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쪽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것을 책 제목으로 내놓았을 때, 무릎을 탁 치게 만들더군요.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사용하는 용어들도 쉽게 풀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독자의 요구와 불교 출판의 과제】
류지호 ▷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현수 ▷ 제가 책을 구입한 것에 대해 느꼈던 자괴감이 있습니다. 사전 정보나 자기만의 기준이 없이 인터넷에서 책을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3년 동안 인터넷을 통해 천여 권의 책을 구입했는데, 절반 정도를 읽고 그 중의 반 정도에 대해 독후감을 쓴 것 같아요. 구입한 책에 대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매장에 나가봤어요. 그런데 매장에 나가서 골라도 그 수치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모든 책을 읽어보고 ‘그래, 이 책이야’ 하며 고를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지금도 저는 다른 독자들의 평판이 좋았던 책, 제목에서 필이 꽂히는 책, 디자인이 눈에 띄는 책 순으로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김시열 ▷ 독자들이 갈수록 외형적인 디자인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습니다. 그 요구를 따라가다보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세련된 디자인, 좋은 종이, 칼라 인쇄 등 제작 비용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디자인에 쓸 공력을 교정, 교열 등 편집하는 데 쓰면 내용적인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현수 ▷ 물론 외양보다 실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씀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 좋은 편집을 원한다면 디자인에도 힘을 기울여야죠. 선택이 안 되게 해놓고, ‘내용이 좋은데 왜 안 보느냐’고 할 수는 없잖아요.

류지호 ▷ 책을 많이 읽는 분들도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디자인과 주변의 평 등이 우선 순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 측에선 디자인에 신경을 쓰다보니 전반적으로 제작 비용이 많이 높아졌고, 그로 인해 책값의 상승도 뒤따르고 있습니다. 내용으로 갈 것이냐, 디자인으로 갈 것이냐는 출판사의 몫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담을 마치며 불교 출판에 대해 평소 생각하시는 바를 마무리 발언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시열 ▷ ‘어렵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우선 ‘불교’(종교)와 ‘출판’(직업)이라는 두 저울추를 균형있게 잡아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게다가 불교 자체도 어렵습니다. 불교출판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어렵습니다. 제 자신의 역량이 작아서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람’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진리의 말씀’인 부처님의 법을 전한다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1,600년 우리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불교 출판은 문서포교라는 측면과 상업성이라는 측면이 항상 새의 두 날개처럼 끊임없이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경도되는 순간, 초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이미 불교 출판이라는 명예스러운 간판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성재영 ▷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기획, 편집, 영업의 3박자가 딱 들어맞아야 좋은 책을 만들 수 있고 대중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습니다. 90년대 초반 출판이 호황이었던 때는 책이 지식을 대변하던 시대였고, 지금은 디지털 정보화 시대로서 어떻게 하면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출판산업을 활성화시킬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불교출판문화협회가 큰 역할을 하며, 어느 한 부분에서는 공동의 마케팅과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바로 불교 출판의 위상을 강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말로만 불자 천만, 2천만을 부르짖을 게 아니라, 불서 3,500종이 나와도 유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다함께 매진해야 할 때입니다.

이현수 ▷ 저의 바람은 필자, 장르 등 출판의 형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해지는 것입니다. 불교 전체로 보면 인재를 키우는 데에도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어린 학생들에게 책을 선물해주고 싶어도 딱히 이 책이면 좋겠다 싶은 불서가 많지 않아요. 여건상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서 미래에 불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해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러 번 강조하여 말씀드리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기획의 다양성을 위해 힘을 기울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하나, 교구 본사 정도는 지역민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의 도서관을 설립해서 운영하는 것에 대한 종단 차원의 검토와 후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류지호 ▷ 지난 해 신간 종수도 많아지고 일정한 정도 성장을 한 데는 분명히 출판사의 노력이 많았습니다. 독자들 역시 불서를 찾아 읽어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역시 과제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불교 출판이 어려운 가운데 성장하고 열심히 했던 것들이 올해도 이어져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대담도 불교 출판을 정리하고 계획세우는 데 작으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더 큰 보람이 없겠습니다. 오늘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