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자리 찾기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그림그리는 사람 하수경

2009-04-21     관리자

얼마 전 참으로 좋은 책 한 권을 읽었다.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곽재구지음. 한양출판사>. 풋풋하면서도 끈끈하게 배어있는 우리의 민족혼과 정서를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한번쯤은 들었음직한 아름다운 꽃이야기와 전설도 이 책엔 담겨 있었다. 들꽃향기처럼 그렇게 일렁이며 우리의 가슴에 스몄다.

그 책에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러면서 필자는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매료하리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에 공감하면서 ‘아름다움의 끝은 어딘가’ 묻고 있다. 아름다움의 끝은 어딘가…. 우리는 가끔씩 아름다운 영혼이 내뿜는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힘을 얻곤 한다. 영혼이 아름다운사람들…그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맑고 빛날 수 있으리라.

그림 그리는 사람 하수경 씨[44세]는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나의 작업에서 표현된 내용이 어떤 구조나 형태나 색채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바라보는 것과 그리는 일의 연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인간과 삶. 자연. 그리고 생활의 참모습과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길러갈 뿐입니다. 순간의 삶에 충실하면 나와 만나는 모든 사소한 것들까지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가끔 우리가 슬프거나 절망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를 지켜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신이 있어 작업하는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고.또 어떤 때는 그림이 저절로 그려지는 것 같기도하다고 한다. 하수경. 그 자신에게는 이러한 일이 신기하고 이상하기도 하지만 예술행위 자체가 자연운동의 일부가 되는 직접적인 체험이고 즐거움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주어진 사각형의 공간에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존재의 궁극적 완전성을 표현해내기에는 너무 작은 몸짓이요 붓질이지만 순간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와 삶의 향기를 The아붓는다. 그것은 주로 자신의 생활속에서 얻어진 감동에서 비롯된다. 그는 자신의 생활속에서 소리와 색깔이 어우러짐을 느끼고 화폭 속에 그 심상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자신의 그림을 ‘살아가는 순간의 흔적이고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순수한 즐거움과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절대의 자유가 있다고…. 그는 자신의 그림에 나타난 표상들을 ‘흔적들’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내면에 그려진 형상을 명확한 윤곽으로 잡지 않는다는 뜻이고, 흘러가는 시간과 선율의 여운을 움직이고, 변화하는 붓 자국으로 남긴다는 의미 때문이라고…. 그의 그림을 잘 알고 있는 미술 평론가 중 한 사람은 그의 그림을 “드러남보다는 가라앉음, 떠들썩함 보다는 조용함. 지리한 산문적 설명보다는 몇 줄의 운문으로서의 함축과 은유에 가깝다” 고 말하고 있다. 하수경 씨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색깔있는 것이 좋아서였다.

어렸을 적대부분의 사람들, 어두운 무채색 옷을 입고 있었을 때 유독 빛깔 있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그 색깔이 보기 좋았다. 어렸을 적 색깔에 대한 그 기억이 그림 그리는 것으로 그를 이끌었다. 서울대학교 미대회화과에 들어간 그는 지도교수가 당신의 개인전시회에 펼쳐놓은 동양화를 보고 그것이 하도 좋아 동양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얼핏 봐서는 동양화인지 서양화인지 그 구분이 가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법이나 재료사용에 있어서 아무리 보아도 전통 동양화는 아니다. 그것은 그 자신이 자신을 어떤 제한 속에 묶어 놓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재료에 있어도 자신의 감정에 맞는 재료를 스스로 만들어 쓴다. 한글세대인 젊은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고 그들을 지도하면서도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 “마음 한 번 돌리면 다 되는 것이다. 자기계발에 힘쓰라. 자신을 어떤 제한속에 가두지 말라.” 그러면서도 그는 매우 엄격한 교육을 한다. 그림그리는 자세와 마음가짐, 호흡, 재질, 기법 등등…. 질서와 조화 그러면서도 다양성을 그는 좋아한다.

알토란처럼 야무지다는 표현이 꼭 맞을 듯싶은 그는 두 자녀의 어머니다. 서울에서 전주를 오가며 한 주를 보낸다. 서울에 반. 전주에서 반을 생활한다. 전주가 본래 고향인지라 친정집에 혼자 머물며 강의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서울에 머무는 동안은 두 아이와 남편. 그리고 친정어머니를 보필하면서도 밤 늦은 시간은 집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작품 구상은 주로 사람을 만나면서 한다.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 다른 점도 발견하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도 발전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커지는 자신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커지면서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신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교수이면서 화가이기가 어려움을 안다. 어떤 사람은 그림 그리는 사람을 현실과 무관한 또다 른 세계의 사람처럼 특별한 예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그림이라는 것이 자신의 정표로서 주고받는 것일 지도 모르는데 특별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닌가. 현실에는 전혀도움을 주지않으면서 나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자주 한다. 그러면서 무언가 최소한 자신이 선택받은 것만큼 보답을 해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한 가지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누가 책표지를 해달라고 하면 책표지를 해주고, 초상하를 그려달라고 하면 초상화를 그려준다. 자신이 기꺼이해준다. 이 일에도 한계가 없다. ‘그림 그리는 것이 자기 마음 찾아가는 길과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많은 사람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대상없이 자기안으로 몰두해 들어가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분명 그림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려야 한다는 생각, 잘 그려야한다는 생각만 깨뜨린다면 누구나 그림을 통해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앞으로는 여러 사람에게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불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불자가 되었다는 하수경 씨. 그의 불교와의 인연은 친정어머니로 비롯된다. 일흔네 살이라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 3~4시간을 주무시며, 오신채를 금하고 채식하시면서 계율을 철저히 지키셨다. 그리고 일년에 두 차례 동안거 하안거{주로 인천 용화사와 곡성 태안사}를 하시는 어머니에 대해 처음부터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그 무슨 허상의 세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미신스럽기도 했고, 비과학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매사가 너무 분명한 것도 좋은 감정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게다가 특히 80년대 초 학생들의 소요와 분신자살 등 암담한 상황 속에서 불교계가 갖는 위상이 불교에 대한 실망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교수불자연합회활동을 하게 되면서 불교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모임에 참석했던 현대물리학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특히 그의 관심을 끌었다. 불교는 ’몹시 과학적인 것이로구나‘하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세상살이를 거듭하면서 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차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늘 당당하고 힘 있어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또 하나 10여 년 전 구산 스님을 송광사에서 뵌 적이 있었다. 불교계의 큰스님이니만큼 만나기 전 기대도 켰다.

그런데 스님께선 ‘왜 여기에 왔는가 .누가 왔는가.’ 하셨다. 큰스님이면 대단한 말씀을 할 줄 알았는데… 스님은 사랑방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래, 모든 것은 sr결국 내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하는 생각과 함께 예술과 종교는 가는 길이 ‘구도’라는 면에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자신이 갖고 있던 무거운 짐은 그 순간 구산 스님께 다 내려놓고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마음자리 찾는 일로 그림을 그려 가면서. 이를 이웃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원을 그는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