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세계] 대반야경의 연기(緣起)와 공(空)

특별기획/대반야경의 세계

2009-04-21     관리자

 연기(緣起)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셨던 진리 바로 그것이며, 공(空)은 연기라는 진리성의 내용을 올바르게 밝혀내고 새로이 인식시키고자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이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만약 싣달(Siddhartha)태자가 이 연기라는 진리성을 깨닫지 않으셨으면 부처님이 되지 못했을 것이며, 또 대승불교가 공사상을 높이 외치지 않았으면 찬란한 대승불교는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연기와 공은 불교사상의 밑바탕에 일관하는 본질적 내용으로서, 이것만 알고 깨달아도 성불(成佛)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2천 5백년 동안 불교 교리가 다양하고 복잡하게 심화되었다 할지라도, 이 연기라는 진리성이나 공사상만 잘 이해하고 깨달아 생활에 실천하면 어느 중생 누구나 괴로움 잊고 기쁨과 안락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시불교의 아함경에서 가르치는 연기의 기본적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어진다.」

「무명에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행에 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생(生)에 연하여 노사(老死)가 있고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생기도다.
그러므로, 무명을 없어짐으로써 행이 없어지고, 행이 없어짐으로써 식이 없어지고,……
노사가 없어지며 우비고뇌도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말씀되는 내용의 요지는, 이것과 저것이 서로 연〔연관관계〕하여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또 무명과 행 등도 마찬가지로 서로 연관하여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관계하거나 연관한다는 것 이것이 「연기」입니다. 이것은 현대적 감각에서 보면 아무런 새로움이 없는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부처님 당시의 사상계에서 보면 가장 합리적이요 과학적인 원리가 매우 잘 응용된 인과관계(因果關係)의 법칙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사실들을 파악함에 있어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서 관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나아가 이것도 직접 간접의 다양한 원인과 조건들이 관계되어 일차적 이차적 무한한 결과를 이루고 있음을 깨우쳐, 인간으로 하여금 무궁무진한 세계에 눈뜨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연기의 원리에 의해 우주 인생의 모습을 설파하시기도 했고 또 노병사(老病死)등 인간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 해주셨던 것입니다. 인생고뇌의 원인이나 까닭을 계속 관련성에 따라 추구하여, 그 근원적인 것으로서 무지무명(無知無明)이라는 인간내면의 모순을 지적하셨고, 이를 없애 으로써 점차 탐욕도 없어지고 고뇌 또한 없어진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연관관계의 법칙으로써 우주를 설명하시기도 하고, 인간 스스로의 문제 해결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 등 세상만물들이 서로 관계하고 연기하여 있음을 파악하는 일은 만물의 존재 의미를 상호 연관관계에서 찾는 것이기도 하므로, 현실적으로 우리들에게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게 하고 자기 중심의 생각이나 행동을 반성케 하며, 사회 속에서 공존 공영하는 진리를 깨우쳐 줍니다. 달리 말해 연기 즉 연관관계성의 인식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협력 협동하는 무사공평(無私公平)한 생활 자세와 무아(無我)의 세계에 들게 하지요. 그러므로 연기와 무아사상이 원시불교의 근본 본질로 되고 있습니다.

 원초적 불교에서 가르친 연기와 무아사상은 대승불교에서 공(空 , 空性)이라는 이름으로 재강조 되었습니다. 부파시대의 실유론(實有論)적 불교를 비판 시정하면서 일어난 대승불교의 모체인 반야계경(般若系經)에서는 번번이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거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 등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반야경의 「일체개공」과 같은 선언은, 만물이 공허하고 허무하며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만물은 어느 것이나 영원불변하는 실체성이 없으며〔無自性〕, 항상 하고 유일 독재〔常一主宰〕적인 존재는 어디에도 없으며〔無我〕, 인과관계의 결과〔因緣和合〕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 만물은 무엇이든 연기화합(緣起和合)하고 있으므로 무아(無我)요 비유(非有)이며 무자성(無自性)이니 일체개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것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일체개공의 세계를 인식하고 관조하는 슬기를 최고의 지혜 즉 반야(般若)라고 이름하고, 이의 완성〔바라밀〕을 반야경들이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물에게도 영원불멸하고 실체적이며 독자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일체개공이라고 주장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이나 언어 행동, 경험 지식, 그리고 우주의 사물이나 사실 상황 등 그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주 인생이니 인연화합(因緣和合)이라는 연관관계의 법칙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밝혀, 개체적이거나 독단적 존재성을 부정한 것이 공이요 공성입니다.

 이러한 반야경들의 공사상은 하나만을 고집하는 편협한 안목에서 벗어나 우주 전체를 연결시켜 파악하는 종합적 지혜를 길러 주기도 할 것입니다. 또 무소수(無所住) 즉, 어디에 머물지 않는 마음자세로 생각함〔而生其心〕이 강조되거나, 무소득(無所得)이나 무소착(無所着), 그리고 무가애(無罣碍)와 같은 표현을 통해 반야 공사상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인간에게 타산적 태도나 집착하는 생각을 떠나 막힘없고 활달한 인간 창의성을 길러 주며, 무엇에 얽매여 전진하지 못하는 자세를 일신하여 무한한 광야에 생명이 약동하는 자유자재의 경지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와 공사상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면, 우리들의 마음 자세는 거리낌 하나 없이 맑아지고 생활은 빛나게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 인간성을 본래청정심(本來淸淨心)이라고 규정하여, 오래적인 결함 즉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소멸하고 그 맑고 빛나는 본바탕의 재현을 강조하는 것도 이 공사상에서 되살아나고 있지요. 불생불멸(不生不滅)등 처럼, 생사(生死)나 피차(彼此) 등의 상대적 대립 세계를 초월하여 불이(不二)의 원만 조화하는 경지도 이 공사상에서 비롯합니다.
공, 무상, 무원의 삼삼매(三三昧)를 비롯한 고도의 선정삼매나, 천태학의 삼제원융설 그리고 화엄의 법계중중 무진연기설 등 대승 발달 불교의 사상 교리 모두가 이것에 근거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 무아, 공사상의 내용과 의의는 자못 큰 것입니다. *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