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3)불효스럽던 아들 이야기

2009-04-21     관리자

1) 부처님의 아들
부처님은 하늘에서 우리의 행동을 심판하고 계신 두려운 하느님의 한 부류로 아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불교인에게는 없겠지만요..불자라면 대개가 부처님을 크게 자비하시다고 압니다. 그래서 자비가 부처님, 자비가 관세음보살, 자비가 불교 신자인 것은 상식입니다. 불자라고 하면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 되겠지요.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 것으로 새 생명을 받은 것이니까, 우리는 부처님의 아들이며 딸이라 해서 조금도 잘못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분이 부모님인 것처럼 우리의 근본 생명인 마음에서 가장 가까운 분은 바로 부처님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부처님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빛과 위력과 대공덕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불성이란느 무한 공덕으로 일체 불보살, 일체 중생과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부처님 공덕세게인 불성에는 병이있을리 만무합니다. 악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불생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불화, 실패 등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건강과 행복과 선과 화와 성공만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부처님 마음이고 우리에게 와있는 부처님 은혜이며 우리의 본래의 면목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 공덕을 누리는 것입니다. 불행은 없어집니다. 병고는 없어지고 평화와 안락이 있는 것입니다.

2) 팔이 부러진 사연
서울 신촌에 사시는 “박이분”씨의 경우는 우리가 불자라는 순박한 믿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벌써 6년전의 일로 기억합니다. 신촌에 모임이 있었는데 그곳에 50여세 되는 한 부인이 팔을 붕대로 감고 목에 비켜 매고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물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 팔이 부러졌어요.’
팔이 부러졌다는 것은 아들과의 상정 갈등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필자는 말했습니다.
‘왜 아들을 그렇게도 미워합니까?’ 그는 ‘어흐!’ 하고 깜짝 놀래더니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집안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래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박여사의 큰아들은 그 당시 고등학교3학년 이었는데 아주 늦도록 철이 안들어 그때까지도 개구쟁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지금은 장성 훌륭한 신사인데 미안합니다) 학교공부보다는 노는데 흥미를 부치고 부모님에게 돈 요구를 하여 안주면 아무 돈이나 들고 달아나 몇일씩이나 나가 있다가 돈이 떨어져야 집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를 수 삼차, 학교를 여러번 퇴학맞는 것을 부모의 애걸과 학교 선생님의 너그러움으로 근근히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래도 조금도 뉘우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날 아침에 또 돈 요구하는 것을 안줬더니 도끼를 들고 마루짱을 찍으면서 불량을 부리고 마침 방에 있는 돈 5만원을 가지고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3) 부처님 아들을 바로 보라
박씨 집안은 이 아들의 장난만 아니면 그런대로 평화한 집안입니다. 영감님은 착하시고 살만하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이런 일로 몹시도 마음이 상하던 때 박씨는 집안마당에서 어쩌다 넘어졌는데 왼팔이 부러졌습니다. 박씨는 팔이 부러져 아프기도 했지만 보다도 아들의 불량한 성질 또 이번에 어딘가를 헤매면서 나쁜짓에 젖어가는 아들로해서 그의 마음에는 걱정이 첩첩이었습니다.
아들의 괘씸한 소행머리도 말할 수 없이 밉고 노여웠던 것입니다. 박씨는 이말을 하고는,
“선생님이 내 팔 부러진 원인을 아시니 이 자식을 어떻게 해야 마음을 바로잡겠습니까? 가르쳐 주시오.”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정말 바다와 같습니다. 자식 잘못이나 미움이나 당신의 팔 부러진거나 생각은 뒷전입니다. 생각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 자식 마음 잡아주는 걱정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필자는 말했습니다.
“그거 어렵지 않습니다. 부처님을 믿습니까?”
“부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마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절에 가서 절이나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누구며 어디 계신지는 아십니까?”
“나는 그런 것 모릅니다. 그저 절에 나다니는 거지요.”
“그러면 잘 들어 두세요. 부처님은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부처님 참성품이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가 부처님의 친아들 딸과 같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을 믿거든 ”내가 부처님 아들 딸이다. 모두가 부처님 아들 딸이다. 모두가 착한 사람이다.하고 믿어야 합니다.“
필자는 여러 말을 했습니다. 그 아들이 나쁜 것이 아니고 부처님 아들이라는 것 나쁜짓을 하고 나쁘게 보이는 것은 ‘나쁜짓 하는 놈’ 이라고 생각하고 그리 보는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아들이 부처님 아들이고 원만한 착한 아들을 ‘몹쓸놈’이라 보면 더욱 나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아들을 부처님 아들로 보고 차라리 감사하라. 그러면 아들이 당신에게 참 아들이 된다고 했습니다.
박씨부인에게는 이 말이 몹시도 깊이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팔 부러진 원인을 말한 외에 무엇보다 아들의 마음이 바로 잡아진다는 것 아들이 저렇게 된 것이 아들 잘못 보다도 자기에게 있다는 것..여러 가지 느꼈을 것입니다. 평소에 절에 가면 법당에 가서 절이나 잘하고 미신에 잘 빠지고 하던 이 양반이 그때부터 염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염불이라 하지만 ‘나무 관세음보살’ 하고 합장 하기보다는 오히려 ‘모두가 부처님 아들’이라는 생각속에 젖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염불하면서 아들에게 대한 것처럼 ‘내 잘못이다. 네가 부처님 아들인데,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우리 三(박씨의 아들 이름)이가 부처님 아들인데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이런 염불이었습니다. 실지 필자도 그렇게 하라고 일러 주었던 것입니다.

4. 효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
그러고나서 한 一주일이 지나 박씨부인을 또 만났습니다. 그는 반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三이가 돌아 왔어요.”
집 나간지 四일만에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돈 다 쓰고 할 수 없이 돌아 왔거나 어디서 잡아온 것이 아니고 제발로 돌아왔고 돈도 얼마 안쓰고 남겨 가지고 돌아와 어머니에게 내놓더라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돌아오자마자
“어머니 저 이제부터 공부를 해야겠어요. 가정교사를 대주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박씨에게는 천지가 뒤집힐 것 같은 아들의 변화입니다.
어머니 박씨로서는 고마울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만의 변화입니까.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아들을 부등켜 잡고, “이 자식아...”
하고는 아무 말을 못이었습니다.
눈물만이 한없이 줄줄 흐르더랍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 것도 짐작이 갑니다. 이때부터 아들은 아무 걱정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공부만 하였습니다. 나쁜 벗과 어울릴 겨를이 없이 그저 공부만을 하더랍니다. 필자도 이 말을 들으니 왠지 눈물이 자꾸 흘러 참 민망했습니다.

5. 불빛이 집안에 차다.
이 일이 있은 후로는 박씨부인도 달라 졌습니다. ‘관세음보살’염불보다도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아들“ 이 말을 염불하듯이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염불소리 싫어하던 영감님이 아침에 독경을 안하면 ’오늘은 염불 안하느냐‘ 고 독촉이고, 또한 영감님은 노이로제 증세를 이긴다고 ’마작‘으로 소일했었는데 마음의 안정을 얻고 ’마작‘ 습관이 어느 틈에 살아졌습니다.
집안은 정말 봄기운이 가득한 듯 했습니다. 그 후 아들은 군복부를 마치고 자부를 보았고 손자를 봤습니다. 자부도 정말 착한 부처님 같은 자부를 만났습니다. 효성이 극진합니다. 집안 걱정이 아주 없어졌고 박씨의 집안 일이 사뭇 가벼워졌습니다.

6. 위력은 나타나다
박씨부인은 평소에도 착하고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의 일이 있은 후로는 이웃에 혹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위로하고 당신 나름대로 열심히 ‘부처님 아들이다. 병이 어디 있느냐, 관세음보살’ 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실지 박씨부인은 열심이었읍니다. 모두가 부처님 공덕이 넘치는 부처님 아들인 것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병자를 만나면 위로하고 또한 찾아갔습니다. 심지어 자기 용돈으로 염불책을 사서 동두천 까지 찾아가 열심히 오로운 이를 위해 염불했으빈다. 극성스러울 만치 열심인 것은 부처님 말씀이 사실인 것을 너무나 믿기 때문이겠지요. 진짜 보살이지요. 이러는 동안 박씨 부인에게는 묘한 호(?)가 붙게 됐습니다. ‘부처님 집힌 할머니’라는 것입니다. 이웃들이 좀 지나치지요. 신들린 사람에 비유해서 부처님 집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박씨는 그런것에 아랑곳 없었답니다. 열심인 만큼 그의 믿음에는 차차 위력이 나타났습니다.
친정에 손자가 있는데 ‘태독’으로 머리가 헐고 진물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아기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부처님 아들인데 이런 진물이 다 뭐냐. 부처님 아들은 깨끗하다. 관세음보살’하고 사흘을 다니면서 염불했더니 어느듯 진물이 걷히고 머리가 깨끗해뎠습니다. 또 이웃집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갓난아기가 있어서 아기가 마냥 울어댔습니다. 어린이 ‘간기’ 였습니다. 그래서 한집에 사는 이웃에게 매우 미안해 했습니다.
박씨가 가서 아기를 안아 들고 ‘부처님 아들인데 이렇게 듣기 싫게 울면 쓰나, 부처님 아들은 울지 않는다. 이웃에게 듣기 싫게 안한다.’ 하고 염불 했더니 그때부터 아기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간기’가 나은 것입니다. 나았기보다 부처님 공덕이 들어난 것이지요. 이러는 동안 이웃에는 부처님 집힌 할머니라는 소문은 점점 퍼져 나갔습니다. 한번은 신촌 시장에서 미곡상을 하는 부인이 찾아와서 삼눈을 잡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씨는
“내가 삼눈를 잡아요? 별소리를 다 하시오.” 하고 그 분도 웃고 헤어졌는데 문밖에 나가는 것을 박씨는 다시 불렀습니다.
“이리좀 와 보시오.”
하고는 싸장수 부인의 눈을 두세번 만지면서
“당신이 부처님 딸인데 무슨 삼눈이요? 삼눈 없어요. 관세음보살” 하고는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도 채 못되어서 싸장수부인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삼눈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실지 눈은 멀정합니다.

7. 참다운 염불인
박씨부인의 신앙은 참으로 건실합니다. 신에 집혔다던가 하는 요사한 말은 당치도 않습니다. 이러는 동안 필자에게 많은 상담을 해왔고 필자에게 인도하여 염불 공부를 하게 한 사람만도 백명이 넘습니다.
필자는 박씨부인의 경우를 통하여 부처님 공덕이 우리의 참자성 공덕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박씨 부인은 염주를 들고 다니며 염불하는 분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절에 자주가서 소리높이 염불하거나 천배 만배 절하는 분도 아닙니다. 학문이 있어 높고 고상한 종교이론을 아는 분도 아닙니다. 다만 부처님만을 믿는 것뿐입니다. 부처님이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빛을 던지고 계시며 그것이 우리의 참 면목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관념속에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고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부처님 은혜 즉 우리의 자성공덕이 나타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염불 공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