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사에 가면 따뜻함이 기다리고 있다

테마가 있는 사찰 기행/꽃살문이 아름다운 강화 마니산 정수사(淨水寺)

2007-03-28     관리자


입춘을 지나면서, 바람이 아직 차지만 코끝에 살짝 봄내음을 흘리고 스쳐간다. 정수사 꽃살문의 아름다움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라, 봄소식을 앞서 전하고자 벼르고 벼르던 꽃구경을 떠난다.
서울과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연륙교(連陸橋,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자동차로 당도할 수 있는 육지 같은 섬. 바로 한민족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는 강화도다.
강화도 남단에는 한반도에서 지기(地氣)가 가장 센 곳으로 일컬어지는 마니산(摩尼山, 해발 468m)이 자리하고, 그 정상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참성단(塹城壇)이 있다. 마니산은 ‘우두머리산’이라는 뜻으로 마리산(摩利山) 또는 두악(頭岳)이라고도 불렀으며, 동남능선에 정수사가 민족의 성산을 지키고 있다.

▲ 정수사로 오르는 긴 돌계단
정수사(精修寺), 정수사(淨水寺)

정수사로 통하는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면 그윽한 숲이 운치를 더해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정수사 입구에 이르자 돌계단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듯 길다랗게 펼쳐져 있다. 돌계단을 오르다보니 어린 시절 가위바위보 하며 한 칸씩 계단을 오르던 누이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돌계단의 끝은 절 마당으로 이어져 정수사와의 첫 만남을 주선한다. 이토록 소박하고 단아할 줄이야…. 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당우로는 대웅보전, 산신각, 선방, 차실이 전부인 단출한 규모다. 그러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진면목을 보는 순간, 그 누구라도 정수사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정수사는 639년에 세워진 고찰이다. 회정 스님이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한 뒤, 그 동쪽의 지형을 보고 불제자가 가히 삼매정수(三昧精修)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사찰을 짓고 ‘정수사(精修寺)’라 이름하였다. 그 후 1423년(세종 5년)에 함허 스님이 중창하였는데, 이 때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이 샘솟는 것을 발견하고 ‘정수사(淨水寺)’로 한자를 바꿔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 앞면이 긴 짝지붕 구조의 대웅보전
정수사의 정수(精髓), 꽃살문이 있는 대웅보전

정수사 대웅보전 앞에 서면 눈길을 확 잡아끄는 곳이 있다. 법당 전면 중앙의 4분합문에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꽃살문이다. 가운데 2짝에는 연꽃, 좌우 2짝에는 모란이 꽃살을 이루며 빈틈없이 가득하다. 화병 주둥이에서부터 꽃과 줄기들이 솟아나와 단을 이루며 다발처럼 연결되어 있다. 꽃은 봉오리에서부터 만개한 것까지 다양한 생장상태를 묘사하였으며, 잎도 여러 각도로 배치해 마치 잘 그려놓은 정물화를 보는 듯하다. 꽃살문의 아름다움은 양쪽 협칸의 소박한 격자문으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정수사 꽃살문은 그 제작기법으로 인해 한층 유명해졌다. 통판투조방식으로, 바탕살 없이 두께 45㎜의 널판에 무늬를 새겨 통째로 문울거미에 끼워넣은 것이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과 길상화(吉祥花)의 으뜸인 모란을 정성스럽게 새겨 오색찬란한 빛깔로 단청된 꽃살문은 그 자체로 부처님께 올리는 꽃공양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살문이 아니더라도 보물 제161호로 지정된 정수사 대웅보전은 역사적인 가치가 대단히 높은 소중한 문화재다. 국내의 현존하는 목조건물 대부분이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조선 초기에 세워져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목재가 변형되고 뒤틀려 우측으로 기울던 대웅보전을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국비와 지방비를 보조받아 전면 해체보수공사를 하였다.

▲ 무료 찻집에서 한가로이 정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는 등산객들
대웅보전은 여느 전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매우 특이한 구조를 지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본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었으나, 후대에 앞쪽으로 한 칸의 툇간을 내달아 정면보다 측면이 긴 구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유심히 살펴보면, 지붕 또한 앞면이 뒷면보다 긴 짝지붕이다. 법당에 툇마루가 있는 법당은 안동 개목사 원통전과 함께 정수사 대웅보전뿐이다. 툇마루는 아담한 절 크기와 조화를 이뤄 마치 고향집에 온 정겨움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장엄함을 드러내야 할 법당에 왜 툇마루를 두었을까,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법당이 작아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어, 많은 사람이 함께 예불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주지 진효 스님은, “마니산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얼이 깃든 곳입니다. 정수사는 마니산을 수호하며 평상시에는 사찰의 기능을 했지만,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국제(國祭)를 봉향하는 곳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을 대신하는 제주(祭主)는 법당 안에서 제를 주관하고, 제에 참례하는 제관(祭官)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툇마루를 두지 않았을까요.”라며 조심스럽게 그 쓰임새를 추정해본다.

▲ 정수사의 이름이 유래한 샘물
남한 제일의 정수사 샘물

‘정수사(淨水寺)’라는 이름에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겠지만, 대웅보전 옆 돌샘의 물맛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조선 초기 다승(茶僧)으로 이름이 높았던 함허 스님이 산신각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석간수(石間水)의 물맛에 반해 아예 절 이름을 바꿨을 정도이니, 그 맛은 이미 검증된 것으로서 예사롭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남한의 3대 명수로는 오대산 우통수, 정수사 샘물, 속리산 삼다수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차 다례를 복원·부활시킨 근세 차인(茶人) 명원 선생은 생전에 남한 제일의 샘물로 정수사 물을 품명(品茗)했다. 심지어 일본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져 일본인들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조그만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맛을 보니, 과연 허명(虛名)이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맑고 찬 기운이 입안을 자극하며 부드럽게 넘어간다. 한 모금 더 들이키니, 가슴까지 시원해지고 머리마저 맑아진다. 정수사 물맛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대웅보전 아래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차실엔 전국에서 모여든 차인들로 인해 차향이 가시질 않는다. 문득 대웅보전 꽃살문의 연꽃과 모란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것도 이 석간수가 화병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선 초 배불(排佛)이 팽배하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불교 수호를 위해 힘썼던 함허 스님에게, 정수사 샘물로 끓인 한 잔의 차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실천케 하는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대웅보전 오른쪽 뒷산에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 함허 스님의 부도가 고즈넉하게 서 있다.
정수사 옆 계곡의 이름은 ‘함허동천(涵虛洞天)’인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함허 스님은 계곡 물이 바위들을 넘나들며 장관을 이루는 함허동천을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가히 삼매경에 들 수 있는 곳’이라고 극찬하였다. 함허 스님이 수도했다는 거대한 너럭바위에는 손수 새긴 ‘涵虛洞天’ 네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비바람이 머무는 곳

정수사는 동선(動線)이 짧은 데다 이야기 거리가 많아, 몇 번이고 절 주위를 돌며 천천히 둘러보더라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일단 절에 들어서면 주지스님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한 번 놀라고, 사찰을 찾는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에 두 번 놀란다.
절 입구 종무소 앞에 뜬금없이 군고마통이 놓여져 있다. 주말이면 마니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정수사를 많이 찾는데, 추운 겨울 그들의 언 손과 발을 녹이고 출출한 배를 채워줄 요량으로 절에서 베푸는 따뜻한 인심이다. 아침에 불만 지펴놓으면, 등산객들이 알아서 군고구마를 꺼내 먹고 뒷사람들을 위해 날고구마와 장작을 집어넣은 후 자리를 뜬다. 주말 하루 10kg 일곱 박스가 비워진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같은 크기로 차곡차곡 쌓인 장작더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찰의 절도와 기품이 느껴지며, 마음 또한 정갈해진다.
군고구마를 먹었으니 정수사 샘물로 우린 차 한 잔 아니 마실 수 없다. 종무소 옆, ‘바람이 이곳을 스칠 때’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찻집에 들어가면, 절에서 보시하는 따끈한 차를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다만 나설 때 찻잔을 씻어놓기만 하면 된다. 향긋한 찻잔을 앞에 두고 시원스레 낸 통유리 밖으로 마니산 줄기와 서해를 바라다보니, 저절로 마음이 편안하게 쉬어진다.

찻집을 나와 정수사를 조용히 거닐다보면, 쉴새없이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마니산은 암석이 많은 산이지만, 유독 정수사 주변은 고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며 천연기념물인 새매, 황조롱이, 소쩍새, 쇠부엉이 등이 서식하고 있어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나무와 새가 살기 좋은 환경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소위 말하는 ‘명당’일 것이다. 정수사가 자리한 능선은 어머니의 자궁을 닮아 더욱 아늑하고 고요한 곳이다. 특히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도 법당 주변에 다다르면, 신기하게도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바람이 잦아든다고 한다.

비바람이 머물 듯, 마음마저 정수사에 머물러버린 것일까. 시간이 어느덧 훌쩍 지나가 있다. 서둘러 꽃창살에 피어난 꽃 한 송이 꺾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돌아오는 길, 뒤를 돌아보니 서녘 하늘이 붉은 기운으로 물들고 있다. 정수사를 다녀와서일까, 황홀할 정도로 슬프도록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한없는 따뜻함이 배어있다.

강화 마니산 정수사 032)937-3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