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골짜기] 어머님의 追憶

푸른 골짜기

2009-04-20     권재만

  가을이 오면 나는 하얀 무명옷을 입으시고 얼마 되지 않는 추수 준비를 하시느라 바쁘게 논밭으로 다니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가슴속에 아련하다. 

  1년 수확이란 것이 고작해야 나락 여남섬, 현재 싯가로는 20여만원 그것을 가지고 7. 8 식구의 자식 손자들을 먹여 살리시겠다고 세상을 떠나시던 날까지 동분서주 바빠하시던 우리 어머님 그렇게나 심한 인생의 고달픔 속에서도 항상 우리 어머님의 마음은 지족의 행으로써 언제나 여유가 넘쳤고 자비와 온화하신 성품으로 이웃과 자식을 위해서 평생(平生) 자기의 고생은 잊고 사신 보살(菩薩)다운 일생(一生)이셨다.

  모든 어려움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의 은혜로서 해결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어머님의 관음 신앙은 소시(少時)적부터 평생(平生)을 두고 변함이 없었다. 

  어머님은 7년간을 병고에 시달리시면서도 그 여유있는 성품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셨다.

  가정(家庭) 형편의 곤란함 때문에 자기의 약을 자시겠다는 말씀을 안하셨고 우리 불효형제(不孝兄弟)들은 약 한 첩 제대로 지어드리질 못했다.

  방에 불이라도 따스하게 때어드리기 위해 이 불효자식은 산으로 가서 땔나무를 한 짐 해오면 「아이구! 우리 새끼가 나무를 저렇게나 많이 해 오구나」하시면서 반가워 하셨다.

  밤이 되면 어두컴컴한 호롱불 밑에서 우리 모자는 믿을 수도 없는 장래의 희망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다.

  엄마,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내가 공무원 시험만 되면 지금까지 고생한 것을 다 보상해 드릴테니 그 때만 바라고 참고 살자고 했다. 어머님도 그 날을 위해서 가난과 병고를 신앙과 의지로서 싸워 나가셨다. 그러나 우리 모자에게는 그런 행운이 오기 전 이 세계(世界)에서의 피눈물나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미처 상상이나 했으랴. 이 불효 자식이 문교부(文敎部) 산하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발령을 받기 2개월 전 그렇게나 잔 정많고 자비하시고 온화하시던 우리 어머님은 고달펐던 이 사바의 일생(一生)을 마치셨던 것이다.

  나의 모든 희망과 포부가 한꺼번에 무너지던 날 스스로 자신을 파멸해버리고도 싶은 나의 마음을 부처님께서는 간곡히 만류하시고 일깨워 주시던 은혜를 나는 그 때 느낄 수 있었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머님의 별세로 인하여 부처님께서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몇 배 더 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어머님을 따라 삼악도라도 마다않고 아들로 태어나서 어머님 은혜를 갚고 기어이는 우리 모자가 같이 성불(成佛)할 것을 맹서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국가에서 주시는 봉급을 받아 생활에 부족함이 없이 지내면서도 어머님과 보리밥 시래기죽을 먹고 지게를 지던 날이 더 행복한 시절이었다 생각하니 역시 행복은 맘 속에 있는 것, 물질적 행복이란 가상의 행복(幸福)이라는 부처님 말씀을 가슴깊이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