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마음의 변화가 환경을 변혁시킨다

신앙실록

2009-04-20     오리봉

  어떤 폐결핵 환자의 이야기

  벌써 5년 전의 일입니다. 한 번은 필자가 친히 다니는 마포에 있는 약방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약방 주인이 반색을 하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잘 오셨습니다.』 하면서 한 중년부인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아하니 몸은 형용할 수 없게 초췌해 보였고 얼굴모양, 눈, 말 그 모두가 극히 쇠약해 보였습니다. 무섭다기 보다는 그 형상이 매섭다고 할 정도로 처참해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는 폐결핵으로 세 차례나 수술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이혼하여 현재는 두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말은 극히 낮은 목소리되 어세와 발음 모두가 극히 격했으며 그 표현은 무서우리만치 금속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쇠약했던지 조그마한 거리라도 거의 기다시피하여 다니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부인이 이혼한 데에는 부인 주장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자인 자기에게 태도가 성실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장으로서 집안에 대한 관심이 적고 자기 일에만 치우쳐 가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그 이유였습니다. 그 밖에 그 분의 말에 의하면 퍽이나 이유가 많았습니다. 그 말하는 태도는 참으로 무서우리만치 공격적이며 면도칼과 같이 비판적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생각했습니다. 역시 이 분의 병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로구나. 부부의 부조화가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도 이 부인이 스스로 짓고 들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주인 되는 분은 모 대학에 봉직하고 있었던 이학박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그 남편도 실직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이 부인이 직장에 나가 그 직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소란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당시에 그 부인은 모두가 남편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모두 당당하고 옳았습니다.

  이 많은 이야기를 들은 다음 필자는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지 않고서 어찌 병이 안 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부부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어찌 파탄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지 힘써 이 분에게 도움이 되고자 생각했습니다마는 이미 남편되는 분과는 이혼하고 그 남편되는 분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합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우선 이 사람의 마음을 회복하고 이 분의 병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면서 필자는 마음 속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마음에서 불평과 원망을 몰아내자. 

  『부인 생각해 보십시요. 모두는 남편의 잘못에 있다고 하십시다. 하지만 부인은 너무나 쇠약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을 찾아야 되고 무엇보다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몇 가지 어려운 말을 하겠습니다. 양해를 해주시고 잘 들어 주십시요. 이것은 부인의 병을 고치는 방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와 같이 전제하고 좀 과한 말이 되는 상 싶으면서도 한동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병이 당신이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한 데 있으며 그 마음의 불안의 원인은 감사할 줄 모르고 늘 불평불만을 마음속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남편이 무능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병들 수도 있습니다. 모든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인에게는 박사라고 하는 훌륭한 남편이 있습니다. 그는 사회의 존경을 받는 대학교수입니다. 그는 남못지않게 건강했습니다. 그는 두 아들까지도 자기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살만한 재산도 있었고 남부럽지 않게 유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인이 무엇이 불평이고 불만이어서 이와 같이 감사할 여건이 많은 데도 이에 대해서 눈 돌릴 줄 모르고 불평불만을 하는 것입니까.

  학자로서 연구에 열심이고 보면 할 수 없이 가사(家事)는 부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실정입니다. 저절로 집안 일에 대하여 등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남편을 이해하지 아니하고 오직 냉정하게 비판만 가하면서 그의 입장을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한다면 이 남자는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하루의 피로와 밖에서의 지친 마음이 집안에서 마저도 휴식을 얻지 못하고 집안에 들어오면 그 부인에 대한 비판과 감독과 공격 앞에 서야 할 또 하나의 두려움을 그는 안아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계속 남편의 잘못만 지적한다면 그 부인인 당신은 무엇을 그리 잘하는 것입니까? 남편이 설사 가사에 불충실하고 부정을 저질렀다 하면 무엇보다 남편이 마음을 가정에 붙이지 못할 정도로 거치른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남자가 집안에서 평화를, 집안에서 안온을, 집안에서 행복을 찾지 아니하고 밖으로 내달려서 거칠어 가는 마음을 잠시 잊고자 하게 만든 것은 남편 자신의 수양부족이나 그 밖에 행동의 부절제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역시 마음을 함께 관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부지간이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거칠고 불안하게 해 주고 그가 휴식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밖으로 탈선행위를 하게 되는 것은 결코 남편의 마음의 관리자이며 조종자인 부인에게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그 부인에게 이런 사정을 거듭 거듭 말해주고 당신이 헤어졌을망정 이미 주어진 환경에서 감사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마음속에 먼저 찾을 때 불만의 원인이 해소되고 그러면 그 때에 당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남편과 헤어지면서 받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지금 거의 영락하다시피 되었다 해도 지금에 주어진 환경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 하지 말고 우선 마음속에 감사를 채우라고 했습니다. 두 아들이 있다, 그리고 명민한 판단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은 의지해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 그 보다도 그 자신에게 부처님의 은혜가 부어져 있어서 그가 외면하지만 않고 받아 누리겠다는 생각만 가지면 어느 때나 그 앞에 큰 은혜가 주어지는 사실은 무엇에 비할 수 없는 큰 감사의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분은 비록 종교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를 갖고 있지 않으나 생각은 명철했습니다.

  대개 사람은 물질적인 인간이 아니고 인간에게는 부처님의 큰 공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났으며 이것은 인간의 생명 속에 본래로 있는 것이어서 이것을 바르게 받아쓰고 누리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그리 쉽게 이해되기 힘든 것인데도 이 분은 그 말에 깊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인간이 물질적 육체적 존재가 아니고 보다 크고 신성한 근원이 있고 그 근원이 자기 생명에 직결되어 있다는 이 가르침에 대하여 그는 깊은 관심을 보이고 많은 질문을 해 왔던 것입니다. 필경 이 분의 변화는 이곳에서 왔습니다.

  자신이 물질적인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고 「자기」라는 육체는 거짓이요, 실로 있는 자기는 부처님의 큰 공덕에서 온 생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병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역시 이 분에게 갖추어있던 명철한 이해력과 분석력이 어쩌면 남편에게 공격적 화살을 가했던 무기였는지도 모르나 필자와의 대담에서는 종교적인 이해를 갖는데 더 없이 훌륭한 소질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필자의 말을 어기지 않고 받아 들였습니다. 감사하고 자기 자신에 있는 부처님의 공덕생명을 받아서 쓰고 일심으로 독경 염불하겠다고 서약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오늘의 환경에 이르게 된 것이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뉘우쳤습니다.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와서 자기 아버지 밑에 행복해야 할 아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데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왕에 남편에 대하여는 너무나 거칠고 그를 못살도록 등살대었던 자기에 대해서도 깊이 뉘우쳤습니다. 

  참회의 눈물이야 말로 고귀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그 많은 불평, 불만과 공격적인 무기를 모두 버리고 마음속에는 회개하는 생각만이 차오르고 또한 함께 자기가 취해야 할 마음자세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때부터 열심히 염불과 독경을 했습니다. 몇 차례 필자와 만나는 사이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깊은 질문을 해 왔고 자기는 끊임없이 부처님의 대공덕생명이 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더해 갔습니다. 염불하면 부처님께 공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부처님의 공덕생명에 대해 감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후 부터 그의 생활이 일변했습니다. 두 아들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원망과 저주만 하던 헤어진 남편에 대해서도 그는 회개와 함께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이웃 친척에게도 오직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틈만 있으면 독경하였고 쉴 새 없이 염불하였습니다. 사람을 대할수록 모두에게 합장하고 웃음과   감사의 태도가 먼저 흘러 나왔습니다. 이런 것은 일찍이 없던 일입니다.

  행복의 빛은 비춰오다.


  그러는 동안 두 달이 흘러갔습니다. 그는 그 동안 아무 약도 먹지 않았으나 점점 병은 나아갔습니다. 식욕이 증진하고 체중은 증가됐습니다. 두 달이 경과하는 동안에 사뭇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드러운 말씨, 따뜻한 표정, 사람에게 넘치는 친절-그 모두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상태로 바뀌어갔습니다. 본래 그 분이 남편과 헤어질 때 받은 재산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가격으로 6, 7백만원 되는 집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아들을 양육한다는 명분으로 차지하였으며 남편과 헤어졌습니다. 그 후 몇 가지 사업에 손댄 결과 재산도 없어지고 집도 팔았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이혼한 남편에게 자주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전화 첫 말부터 공격적인 독설을 퍼붓는 것이 일상사였다고 합니다. 물론 남편되는 분은 지치고 지쳐서 이혼한 터라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만 하면 전화를 끊고 마침내는 여자에게서 온 전화라고 하면 아예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나왔던 것인데 이 분의 심경이 바뀌고 남편에 대해서도 오히려 감사를 가지고 자기 마음을 감사로 채웠을 때 자기의 몸의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남이 된 남편에게까지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화를 걸면, 전화를 받는 것입니다. 이쪽에서도 먼저와는 달리 남편에 대해서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에게 결혼해서 이혼할 때까지 고맙고 너그러움에 대해 감사를 했고 또한 두 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남편에게 감사했습니다. 남편이 전화를 받자 넘쳐나는 고마움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남편이 보기에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인의 변화입니다. 그 후는 자주 연락을 갖게 됐습니다.

부인은 더욱 더욱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남이 된 남편입니다. 그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행운의 약속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E씨 입니다. 필자가 만난 당시는 서울 도화동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포 대흥동에 살고 계십니다. 큰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둘째가 중학 2학년입니다. E씨 부인 스스로 말하듯이 그는 학교시절 이래 벗이라곤 없다고 합니다. 친척지간에 있어서도 결혼 이후에 깍쟁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고 친절히 대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혼자 똑똑하고 모두가 못나고 무능해 보였습니다. 주위의 모두가 나쁜 사람으로만 보였더랍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일변했습니다. 가슴에 감사를 안고 지냈을 때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웃 친척이 모두가 자기를 반기고 자기가 가면 모여 있던 사람들도 헤어졌는데 자기의 심경이 바뀐 이후는 자기가 가면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합니다. 그는 기뻐서 자기의 변화와 신앙을 이야기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함께 기뻐하며 지낸다고 합니다. 그의 말인즉 『어째서 이제까지 부처님을 모르고 있었던가. 좀 더 일찍 알았던들 나의 환경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오늘의 환경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기는 이대로 행복하고 이대로 만족하다 생각하면서 감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분에게는 새로운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 마음이 변화했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일체는 마음이 만든다(一切唯心造)」는 부처님 가르침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