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이 낳은 불심인데 별들이 왜 대낮에 나올 수 없는지….

나의 믿음 나의 다짐

2009-04-15     관리자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삼보전에 귀의하옵고 일심으로 참회하옵니다. 본래면목이 아닌 과거 저의 몸으로, 무명과 무지 속에 지나온 날을 생각하니, 이 순간 모든 생각은 애잔한 슬픔으로, 순간 자리에서 석상이 되어, 이렇게 후회하고 번민 속에서지내는 가련한 인생이 저 한 몸으로 끝맺음 되기를 합장하며 빌어봅니다.

 먼 거리에서 불교라는 이름만 알았고, 불교가 자비와 지혜의 종교라는 것을 몰랐던 중생이기에, 지금 이 처지 인과필보의 맺음 너무나 당연하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슴치는 조그만 감동있기에 감히 지면에 옮겨 봅니다.

 사형수라는 굴레를 벗지 못한 이 몸으로써 불법을 안다고 말하는 자체가 민망한 일이지만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님과 같은 불성(佛性)을 지녔다는 불법(佛法)을 만났기에, 새로 태어난 기쁨으로 창살 안 햇빛을 새롭게 대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란 절대로 남에게 나쁜 짓 하지 말며 오계를 지키고 육바라밀을 행하며 보살행의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뉘우쳐 보지만 후회막급입니다.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전도몽상으로 살아온 저였지만 이제는 한시도 불교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지의 소치와 순간을 참지 못해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곳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 은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앞으로 얼마 안 있어 한 호흡에 숨이 멎겠지만, 지금은 세상의 유혹을 떠나 어머님 품에 잠이 든 아기처럼 느껴진다면 너무 자신만만한 표현이 될까요!

 사형집행이 꿈이 아니라 현실인데도 불교책을 접하면 환희용약하는 기쁨으로 자주 입정(入定)을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온갖 장애 벗어날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이 생겼고 참회와 정진으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지옥 중생까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원하시겠다는 지장보살님의 대원 속에 제 자신도 있기에, 불법은 감로 자체였습니다.

 지은 죄로 보면 엄청난 대죄이지만 광명진언처럼 일심에서 행한 속죄의 3000배를 눈물 속에서 교차하는 명암을 가져보면서 불법의 요체는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몸은 죄의 댓가로 형극의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과거에 제가 지은 모든 악업 참회하면서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게 해달라는 원을 가지고 하루도 소홀히 하지 않는 신심으로 오늘까지 만 4년 동안 십만 배 오체투지를 성취했고,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까지 독경하는 불자가 되었습니다.

 이곳 부산구치소 교화위원이신 정각 스님께 오계를 수지하고 심공이라는 법명을 받아 이제는 자신있는 참회불자가 된 것입니다. 불법 안에서 불심으로 현실에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있기에 지금은 주위 분들에게 미력이나마 전도전법하는 포교사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원망만 하면서 불만과 불안으로 소일하다가 불교를 알게 된 후로는 생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한 기분으로 전환되었기에 주위의 환경과 세상이 한없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일을 우리 불법에서는 인과법칙이라 필설되지만,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없었다면 저의 무명 언제까지나 캄캄한 미혹 속에서 방황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한없는 은혜에 감사하며 세세생생 부처님 품안에서 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저의 조그만 발심공덕도 회향하는 신심을 가졌기에 몸은 사형수이오나 이젠 어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법의 등불 밝히고 있습니다.

 인과법칙에 따른 인과응보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 말씀 따라 배우는 환희심이 더 크기에 부처님의 고행을 생각하며 더욱 정진. 정정진하고 있습니다.

 육근이 있어 항상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으로 인해 못난 행동만 했었지만 지나온 모든 잘못을 진정 참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초발심이 변정각이라, 저도 언젠가는 꼭 불도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또한 가지게 되었습니다.

 불광의 인연 계신 여러 불자님! 자타를 건짐이 어찌 자비라 이름하지 않겠는지요. 무지한 몸에서 10대 대승경전과 성철 스님 법어집 11권 모두 불심으로 정독하고 역대선사들의 선어록인 전심법요, 임제어록, 육조단경, 선림고경총서까지 두루 전독한 연고로 출가의 뜻까지 가지게 된 이현실이 어찌 불법 아니면 가능했겠습니까.

 우리 불법에서 제행무상이라 했듯이 불법 속에서의 변함은 적멸위락 자체가 아닐런지요. 삶이 철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 같은지라 저마다 특성이야 있지만, 광명은 하나로되 그 모두 한 빛 안에 섭수되고 근기가 제각각 다른고로 다양한 삶이 펼쳐지지만 불성이야 어찌 자타의 구별이 있고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법화경 비유품 말씀처럼 제 옷 속에 보배불성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모든 중생도 다 가지고 있기에, 불광의 빛처럼 20여 년간 신행의 햇살된 자비의 행렬에 부끄러운 신행 수기를 감히 드려봅니다.

 불광의 빛이 있었기에, 불심을 대신심으로 옮긴 인연 또한 크기에, 음지의 불자님께 용기를 드리고 싶고, 청명한 불자님께는 자비의 법등을 더 밝게 켜시라는 무례한 부탁을 감히 드리고 싶고 주제넘게나마 투박한 제 수기를 통해 조그마한 법열이라도 느꼈으면 하고 일심으로 합장합니다.

 무연의 중생은 제도할 길 없다고 하시지만 그 근본 뜻은 모든 중생이 무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채찍으로 알아, 여러 보살님의 전도 전법 큰 원력으로 지장보살님이 서원하신 지옥 중생과 이웃들에게 이생에서 성불의 씨앗 뿌려둠은 대승불자의 자비심이 아니겠는지요. 저의 모든 매듭이 이렇게 법다이 된 연고가 인간방생 대원력으로 불철주야 정진하고 계신 정각 스님의 감화어린 법음이 이루어진 향내음이라 거룩한 스님께 다시 한번  합장합니다.

 부처님깨서 과거 전생에 대보살행 하신 교훈을 배우고자 저의 장기를 기증했습니다. 너무나 크신 불법 은혜 갚고자 기증을 했지만 죄지은 몸인지라 청정한 보시행을 흐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봅니다.

 이 세상에 몰라서 죄짓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포교하여 불법 안에서 살 수 있다면 이 사바세계가 정토가 되겠지요. 불법안에서 내생에도 심공처럼 되고자 얼마남지 않은 생이지만 대참회하며 정진하겠습니다.

 인과필보 이 진리 엄연하오니 불법인연 둘도 없는 보배로 생각하시어, 염주가 두루두루 둥글듯이 자리이타 법수레 세세생생 이어지길 삼보전에 엎드려 기원하옵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지장보살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