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상병의 자기 마음 찾기

바라밀 상담실

2007-03-09     관리자

“일주일간 잘 지냈는가? 어서 들어오게.”
휴게실 문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정다운 눈길을 준다.
“송 이병, 오늘 처음 만나는 구나. 군 생활 많이 힘들었지. 이곳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을 충분히 바라보며, 본래의 자기 마음을 찾아가는 수행 공간이라 생각하게. 그러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고 당황하지 말게. 자네와 비슷한 동료들이 여기에 함께 와 있으니 마음 편히 갖게나.”
이런 말을 하면서 포옹(따뜻하게 환영의 스킨십)을 해준다. 대부분 조금은 머뭇거리면서 어색하게 받아들인다. 잠시 후에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긴장을 푼다. 왜냐하면 승복 입은 법사의 법복에 머리를 난생 처음으로 묻어보기 때문이다.
송 이병은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얼굴은 창백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옆에 있던 여 상병이 “법사님, 이 친구 좀 잘 도와주세요. 말 한 마디 없습니다.”
“여 상병 마음씨가 참 좋구나. 후임병을 챙길 줄도 알고. 그래, 차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두 달 먼저 들어온 여 상병은 제법 활기가 넘친다. 다음 주 목요일이면 자대로 돌아가며, 그 다음부터는 외진 치료를 받게 된다. 여 상병도 처음 입원했을 때는 군 생활 적응에 많이 힘들어 했다. 내가 상담하는 시간에도, 이리저리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강박증 때문에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했으며,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여 상병에게 투사적 심리검사인 ‘집, 나무, 사람을 한 폭에 그리는 동적 그림검사(KHTP)’를 실시하여 보았다. 나뭇가지는 아래로 휘어지면서, 기와지붕에 붙어 있고, 동떨어진 화장실이 있고, 주변에 신발 자국은 여러 개 있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여 상병, 사람은 왜 안보이지?”
“법사님, 사람은 화장실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엉뚱하게 그림에 대한 대답을 했다. “여상병은 화장실이 좋은 모양이지, 다른 사람은 냄새난다고 싫어하는데….”
“어릴 때 부모님들이 화가 나서 자주 싸웠습니다. 물건을 마구 던지고 서로 때리고 할 때, 화장실에 가 있으면 제일 안전하고 편했습니다.”라고.
여 상병의 어린 시절 부모의 잦은 다툼에서, 무섭고 두려운 감정의 스트레스가 강박관념을 낳고 조울증(mania-depressive: 감정의 기폭이 크게 나타남)이 자리 잡게 되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잘 되지 않고 주변에서 스트레스를 주면 마구 폭력이 튀어 나오거나 혼자 어디로 가서 조용히 피신하여야 한다. 이등병 때 야단을 맞고는 어딘가 숨어버렸다. 그리하여 탈영했다고 야단이 난 적도 있었다. 지금도 감정이 조절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의 감정을 선임병과 후임병에게 표출한다. 마구 화를 내게 되고 감정이 진정되지 않는 회수가 점점 잦아지게 되자, 본인도 감당할 수 없어 힘들어 했다. 호흡수행을 통해 먼저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하면서 면담을 시작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 상병, 들숨 날숨 호흡을 천천히 챙기면서 호흡수행을 해보니 마음이 좀 어떤가?” “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감정의 마음은 본래 네 마음이 아닐 거야. 그 감정에 끌려 다니지 말고 평화롭고 고요한 본래의 네 마음을 찾아보자.”
“본래의 차분한 나의 마음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있겠지요?” “그래, 있고말고. 호흡 챙기는 수행을 하다가 감정이 솟아오르면 가만히 그 감정을 주시해 보아라. 처음에는 감정이 격해 오겠지.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 감정을 마치 물건을 바라보듯이 바라다보면 차츰 그 기세가 약해질 거야. 그렇게 될 때 다시 호흡수행을 계속 하는 거지. 생각이 깨어 있을 때마다 5~10분씩 점점 더 시간을 내어 자신의 마음을 챙겨보아라.”
함께 좌선 및 걷기 호흡을 하며 8주 정도가 지나가니 자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법사님, 지루하고 힘들었던 병원 생활이지만 법사님을 기다리며, 시간도 잘 갔고, 잘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셔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호흡법을 알려주셔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 이제 진심으로 불자가 되어가는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친구를 통해 남겨주었다.
한편으로 고마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부의 잦은 싸움이 자녀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고 있는지를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했다. 처음 만나게 된 송 이병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야겠다. 자신의 내면을 통찰(照見, 止觀)하는 수행은 선수행과 심리치료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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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 김말환 | 법사,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선수행과 심리상담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군승법사로 중위에 임관하였으며, 현 육군대령으로 육군교육사령부 군종실장 겸 장병 기본권 전문상담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 카페 ‘선 심리치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