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수록 더 좋은 내 도반

불자가정 만들기 - 신상철, 동산옥 씨 부부

2009-04-15     관리자

도심(都心)속에서 젊은 부부 못지않게 풋풋하게 사는 노부부가 있다. 신상철(64세), 동산옥(59세) 씨. 노부부라 이름짓기 어울리지 않은 이들 부부는 만개하려는 4월의 봄만큼이나 싱그러운 요즘의 일상에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신상철, 동산옥 씨 댁은 두 딸을 출가시키고, 아들은 멀리 유학보낸 텅 빈 집에 부부만이 단출하지만 그러나 넉넉한 불심으로 온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늘도 동산옥 씨는 치과 의사인 남편을 출근시키고 절 일하러 서둘러 집 나서기에 바쁘다.

구룡사 불교대학 1기 졸업생, 불교대학 회장직을 4년 동안 역임, 절의 큰 행사, 작은 행사에 중책 맡아 동분서주하길 몇 해, 지금은 구룡사 부설인 '진리의 전화' 회장으로, 또 상담원으로 부처님 일 하기에 분주한 그녀이다.

동산옥 씨가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은 지는 10여년 전의 일이다. 출가해서 시어머님 살아계실 때 신년 초 시어머님 따라 절에 다녀온 것이 고작이었던 그는 시어머님 돌아가신 후에는 그일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종교에 관한 한 남편은 적극적이었어요. 종교활동을 하는 분은 아니었지만 불교에 대해 관심도 많고, 부처님을 좋아하셨던 분이라 한 집안에 불교이외의 다른 종교행위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셨어요. 저도 가정의 행복과 보다 잘 살기 위해 종교가 필요한 것이라면 굳이 반대하는 신앙행위는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남편의 권유도 있고 해서 그녀는 시간을 내어 당시 마포구에 살던 집 근처 사찰을 찾아가 무진장 스님의 『금강경』강의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땐 착했던 아들이 재수를 하며 좋지 못한 친구를 사귀어 근심과 괴로움이 많았던 때였고 그래서인지 부처님의 말씀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뒤 그녀는 불법을 더욱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 후 다짐했던 일을 실행해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살고 있는 개포동으로 이사오고부터다. 집에서 절까지는 교통이 불편했으나 남편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봉은사 법회에 참석하고, 또 관악산 연주암에서 기도 정진을 하루도 쉬지 않고 1년을 계속 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구룡사 포교당 개원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남편에게 교통도 편하고 하니 이젠 불교교리 공부하러 함께 구룡사에 다니자고 이야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조금 주춤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랬어요. 당신이 저와 함께 불교교리 공부하지 않으면 나도 다 집어치우겠다구요. 제 말에 남편은 가건물의 좁은 장소에도 열심히 참석을 해주더군요. 남편에게 고맙고 한편으로 저는 불법에 귀의한 행복감에 흠뻑 젖었어요. 그 일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에요."

동산옥 씨가 구룡사 불교대학 교육을 수료하고 법문 열심히 듣고 매일 108 대참회, 매달 3000배 철야정진했던 초발심 때의 정진은 지금까지도 그에게 있어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불법의 나무가 되어 그녀 가슴 깊숙히 자라고 있다.

"구룡사 제1회 백고좌(百高座) 법회 회향을 체조경기장에서 했어요. 3~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에서 어떻게 성대하게 행사를 치룰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요. 행사 요원으로 섭외도 하고 홍보도 하고 자원봉사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무척 많았어요. 우선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지요. 드디어 불교계에서도 보기 드문 훌륭한 행사가 무사히 진행되었고 또 성대하게 마쳤지요. 그때 그 환희심은 무어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제 갈길을 찾아 부모 곁을 떠나는 시기에 자식에게서 부모의 손길은 멀어져 간다. 나이도 먹고, 사회활동도 뜸할 때의 시기가 바로 이때이기도 하다.

세상에 혼자 남은 것만 같은 노후. 자기 존재,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재점검하는 이런 시기에 종교는 커다란 힘이 된다. 내가 서야 할 곳, 내가 필요로 하는 곳을 발견하는 것은 삶의 커다란 의욕이다. 그것이 부부가 함께하는 신앙행위라면 더욱 좋을 듯 하다.

신상철, 동산옥 씨 부부 역시 종교적 가치관이 하나되어 한 길로 가는 도반이기에 더욱 행복하고 뜻있는 노후의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상철, 동산옥 씨 부부가 처음부터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아내인 동산옥 씨는 불교를 깊이 몰랐던 지난 시간 어두운 모습의 남편을 종종 보아왔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들에 대한 큰 걱정, 부모 뜻을 따라와 주지 않았던 아들 아이에 대한 갈등, 그러기에 부모 자식간의 사이가 멀어지고 불편했던 점 등.

그러나 불법에 깊이 빠져든 그 후의 남편에게서 놀랍도록 밝은 모습을 보았다.

"남편은 항상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세요. 지금은 인연이 닿지 않아 못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 학교에 무료로 봉사도 나가고, 그리고 10여 년 동안을 불우아이들에게 무료치료를 해주었던 분이지요."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녀는 말끝을 흐렸지만 뜻깊은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 뭉클하게 고맙다.

회현동에 있는 병원에 남편은 매달 불교신문, 불교잡지를 갖다놓는다. 병원 근처 동네에 불교를 믿는 노인분들께, 또 몸이 불편해서 절에 다니지 못하는 분들께 불교교리와 불교계 소식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신문, 잡지 오는 날을 기다린다는 분들도 많다고 남편은 좋아한다.

"제가 절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남편의 힘이 큽니다. 아침 일찍 나갈 때도, 저녁 늦게 나갈 때도, 그리고 늦은 귀가에도 남편은 늦으면 늦은대로 이해해 주고 또 차로 데려다 주곤 하지요. 경제적인 도움을 남편으로부터 받는 것도 물론입니다."

아침 일찍 절일하러 아파트 문을 나서는 그녀를 경비아저씨는 직장여성인 줄 알았다고 한다. 모범적이고 따뜻한 이웃인 그녀가 불자임을 알았을 때 매일 부딪치는 우리의 이웃도 불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그녀는 생활불교를 실천하는 것이 요즘 우리 불자의 자세임을 이야기한다.

"청소부 아저씨께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하고, 상냥하고 다정다감한 이웃이 된 것도 불법을 만난 후의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아파트 사는 이웃에게 초파일 등달기를 권하면 웃으며 응해주세요. 이런 일을 볼 때, 제 행동 하나하나가 불자 전체의 얼굴이다 싶어 더욱 마음을 다지게 되요."

항상 말없이 실천하며 부처님 정법을 알리자는 그녀의 생활신조는 큰 딸아이를 불자로, 기독교인이 전부인 동창생 모임의 회원을 불자로 이끌기도 했다.

"제가 절일하는 것을 아이들도 무척이나 좋아해요."

한국에 큰 딸, 호주엔 작은 딸, 미국엔 아들아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이들 가족은 항상 아버지, 어머님이 외롭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였다. 그러나 예전보다 더욱 즐겁게 사시고, 보람있는 일 하시고, 종교활동도 열심인 부모님을 보면 자식으로서 감사하고 또한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금년엔 입을 단속하자라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제가 진리의 전화 일을 하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좋은 이야기, 기쁜 소식 전하기에 노력하고 싶어요. 좋은 일 많이 생기기를 말로나마 이야기해도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보았어요. 좋은 일이고, 기쁜 일 아니겠습니까?"

이웃이 잘되면 나라가 밝아진다는 신상철, 동산옥 씨 부부.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과 부처님 법따라 용맹정진하는 것 말고 그 무엇이 있겠느냐는 힘있는 말씀이 아직도 우렁차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