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미얀마 11 미얀마의 자존심, 불교

불국토 순례기 11

2007-03-09     범라 스님께

미얀마는 불교 역사상 6차례의 상가야나[결집(結集) -부처님의 가르침에 해박한 스님들이 모여서 부처님 가르침의 오류를 바로잡는 행사] 가운데 2번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을 진행하였다. 그만큼 부처님 가르침에 해박한 학자 층이 두텁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국가적 차원으로 불교 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노력을 하고 있다.

미얀마 족의 민동민왕이라는 불심 깊은 통치자의 후원으로 5차 결집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패다라수에 경전을 보관하여 전해졌다. 패다라수의 나뭇잎을 건조시켜서 그 위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글씨를 새기고 다시 기름칠을 하면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패엽경이라고 한다. 패엽경은 더위와 우기를 지나는 동안 쉽게 변질되고 부패하기가 쉬워서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5차 결집을 하면서 부처님의 사상이 아닌 것들을 추려내고 빠알리의 오류를 잡고 빠진 것들을 보충하여 의견이 일치하면, 많은 자격을 갖춘 스님들이 그 내용을 같이 독송하며 정리하는 일이 결집의 주요 목적이었다. 5차 결집을 마친 삼장을 대리석 위에 안전하게 새겨서 보관하였다. 지금 미얀마 북부 도시 만달래이(옛날 수도)에 가면 그 대리석 경판을 보관해 놓은 절이 남아 있다.

2차대전 후 정부 수립과 동시에 6차 결집을 서두르다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도 꾸준하게 불심을 지켜오다가, 2차 대전이 끝나고 독립이 되었을 때 정부수립과 더불어 불교를 발전시키는 일을 서둘렀다. 국가 차원의 승가고시를 실시하면서 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로 6차 결집을 준비하였다. 테라와다 불교권에 그 사실을 널리 알리자 주변국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미얀마에서 결집을 할 수 있는 인재(人才)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삼장법사 시험제도를 부활시키고 그곳에서 걸출한 밍곤 삼장 법사와 마하시 사야도를 배출하여 당당하게 6차 결집을 서둘렀다. 그러한 것은 외형적으로 드러난 일이지만 삼장법사를 배출시키고 그분들을 가르치고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막강한 스승들이 너무나 풍부하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밍곤 삼장법사

밍곤 삼장법사는 몸이 매우 갸날프게 생기셨다. 그분이 좋아하시는 말씀이 있다. 어느 날 그분이 자기의 가느다란 팔을 보시면서 생각하셨다. ‘이렇게 약한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경전에 있는 “내가 법을 보호하면 도리어 법이 나를 보호한다.”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용기를 내서 삼장시험에 역대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결집하는 일 또한 아주 무난하게 마치셨다. 그리고 일평생 동안 불법을 펴는 일과 스님들을 후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아원, 양로원 등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정말로 알뜰히 살다 가셨다.

삼장 가운데 어느 권 몇 장, 몇째 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시고 그 뜻에 관해서도 듣는 이들이 모두 긍정할 정도로 밝으시다. 지금도 그분의 법문 테잎을 들으면 한결같이 신심이 넘쳐나는 기운이 나에게까지 전해온다. 마하사리불 존자께서 대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주르륵 눈물이 넘쳐 나오게 만드신다.

삼장법사에 합격하면 국가차원의 축하행사가 몇 달을 지속한다. 전국적으로 잔치가 치러진다. 먼저 삼장법사의 표시로 코끼리 상아로 만든 하얀 부채를 올린다. 그리고 법을 펴실 수 있도록 차가 한 대 지급되고 그 차에는 삼장법사의 깃발이 달려 있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국가 운영의 비행기와 기차 등을 이용할 시자와 함께 3명의 좌석이 일평생 무료 지급된다. 그리고 다달이 필요한 식량이 바쳐지고 그 어머니에게 장한 아들을 낳아준 공덕을 기려서 국가에서 장려금이 지급된다.

밍곤이라는 지역은 미얀마 북부의 만달래이라는 고도(古都)에서 북쪽으로 이라와디라는 강 건너편 8십리 길이의 수행자들만 사는 사가잉이라는 언덕의 안쪽에 위치한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밍곤 삼장법사의 뜻을 받들어서 경전을 배우고 가르치는 특출한 제자 분들이 이어서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13분의 삼장법사 가운데 무려 일곱 분이 밍곤 삼장법사의 직계제자들이다. 말하기로 들자면 정말로 이보다 막강한 가문이 또 있을까? 가까이서 뵈었던 분들은 그렇게 높은 위치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교만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으셨던 밍곤 삼장법사의 모습을 지금도 떠올린다. 마하시 사야도와 만나서 가끔 법담이라도 나누실 때 보면 마하시 사야도의 발치에 공손하게 앉아서 친밀하면서도 정다운 대화를 즐기셨다고 한다.

어느 때 종교성 상가 마하나야까라는 대원로 회의에서 연로하신 한 노스님이 시자가 없는 한밤중에 배탈이 나셔서 일을 만드셨다. 그 사실을 아신 삼장법사님이 손으로 직접 모든 오물을 치우고 그 노스님을 다 씻겨드린 다음 가사를 깨끗이 빨아서 말려드렸다.

그 노스님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하셔서 “우 위쌔이따여, 자네 같은 위치의 인물이 어쩌면 그렇게도 자신을 낮추어 교만심이 없는가? 하심이라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오늘에서야 제대로 본 것 같네. 정말로 놀라운 일이구려.”라고 칭찬하셨다며,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이렇게 경전과 법을 펴는 일,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셨기에 삼장법사님이 세상일에 대하여서 잘 모르시는 것은 당연하셨을 것이다. 어느 날 법문 도중에 정부를 칭찬하시는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는 그것을 녹음하여 자주 방송에 내보냈다고 한다.

어느 날 법회를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리시는 시간에 젊은 청년스님들 오십여 명이 반듯하게 도열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삼장법사님이 비행기에서 내려 앞으로 지나가시자 그 젊은 스님들이 구령도 우렁차게 “차렷, 열중 쉬어, 차렷 경례”를 하면서 거수경례를 올렸다.

너무나 놀라신 스님이 옆의 시자에게 영문을 물었다. 정부에 불만을 가진 젊은 청년 스님들이 사야도께서 정부를 칭찬하신 것에 불만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사야도는 어떠한 법회의 초청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두문불출 석 달을 자중하시면서 나름대로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보이셨던 것이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사실을 인정하시는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가장 진정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삼장법사님은 특히 어린 사미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셨다. 높은 연세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어린 사미들이야말로 불교의 미래’라고 하시면서 천을 마련하여 손수 가사를 만들어 사미들에게 나눠주시고 법을 가르치며 다독여 주셨다.

“황금항아리를 만드는 방법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면
세상에 황금항아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황금항아리가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재 황금항아리가 수십만 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황금항아리를 만드는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면
세상에서 황금항아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아무리 큰스님들이라고 해도 영원히 머물 수가 없고, 지금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어린 사미들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들이 다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어른의 위치가 되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수행하는 방법을 배우지 아니하면 결국은 주춧돌 없는 집처럼 어느 날인가는 한순간에 모두 무너지고 말 것임을 너무도 자명한 일임을 아셨기 때문에 어린 사미들에게 그토록 정성을 기울이셨던 것이다. 밍곤 삼장법사님은 지금까지 정계나 일반 신자들, 미얀마인들 모두의 커다란 정신적 자존심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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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연재해 주신 범라 스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