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연화소식 : 용성龍城 스님 간찰簡札

화중연화소식

2009-04-13     편집부
편집자주ㅡ이 화중연화소식(火中蓮華消息)은 경봉 스님과 당대의 선지식이신 용성, 제산, 한암, 효봉 스님들께서 나눈 간찰(簡札)입니다.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나눈 법담이 오늘 족적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귀한 자료들은 경봉 스님의 시자 스님이었던 명정 스님께서 흔쾌히 내주셨고 여기에 풀이와 주(註)까지도 달아주셨습니다.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주신 편지를 서둘러 뜯어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소. 오랫동안 공무의 분주한 가운데서도 無價의 寶藏1)을 발견하였으니 만약 여러 생에 般若의 지혜종자를 심지 않았으면 어찌 능히 이와 같겠습니까. 나 또한 未盡한 처지지만 그러나 이것이 지극히 중대한 일이라 실로 경솔한 말로써 증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의 깨달은 바도 모르면서 억누름도 죄인이며 깨달은 바가 깊고 옅은 것도 모르면서 망령되어 認可하는 것도 죄인이니 실로 예삿일이 아닙니다.

 청나라 옹정황제2)가 이르기를 요즈음 참선하는 이들은 義解로 따지지 않으면 말길과 마음이 끊어지는 곳을 집착하고 이러한 도리가 아니면 아무런 재미 없는 것을 極則으로 삼나니 스님의 깨달은 바는 과연 어떠한지요. 만약 허공에 불이 일어나 허공이 타버린고 바다 밑에 연기가 일어나 山河大地가 한꺼번에 타버리더라도 여기에서 다시 묻는데 답을 못하면 조금 갈등이 남음이로다.

 스님께서 실로 話頭의 疑情을 타파하였으면 참으로 불 가운데 연꽃이 솟음이라 나 역시 찬탄하여 마지 않음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리오.

 요즈음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대개가 모든 법이 空寂하다고 하지 않으면 가히 상대할 것이 없고 가히 이치를 펼 것이 없다 하거나 잠깐 묵묵히 있지 않으면 은밀히 작용하고 또는 宗門의 向上을 타파해서 最初句에 집착하지 않으면 大用을 나타냄이라 하니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자기의 本性은 꿈에도 보지 못함이니 알겠습니까.

 나의 本性은 體도 아니며 用도 아니며 宗門向上도 아니며 最初句도 大用도 아닙니다.

 臨濟3) 德山은 이 모두 마음을 훔치는 도깨비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는 마치 모기가 어지러히 우는 것과 같음이라 여기에는 무엇이든지 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참으로 본성을 깨달으면 촛불이 눈 앞에 있는 것과 같아서 누구에게 물을 필요가 없으니 알겠습니까.

 이 일은 물 가운데에 소금맛과 같아서 결정코 있는 것이나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과 같음이라 여러가지 名相과 온갖 意理와 世間과 出世間의 일들이 전부 붙을 수가 없는 것이니 비록 그렇게 붙을 수가 없지만 이 일만은 분명한 것이라 진실로 이 이치를 아시겠습니까.

 저 물에 비유하자면 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하며 넓게 파도 치고 출렁거리며 하류로 흘러가되 이것이 아울러 물의 본성은 아니니 물의 성질은 젖는 것이나 결코 현상을 볼 수 없으되 파도가 돌에 부딪친 뒤라야 젖는 것은 보지 못하나 원래로 젖지 않는 그 젖음이 가히 젖음으로 나타남이요 大覺의 性理가 그 當體에는 여러가지 名相이 없으되 빛을 보고 소리를 들음에 깨달아 아는 것이 나타나나니 원래로 깨달음 아니 그 깨달음이 가히 깨달음으로 나타남이라, 시작과 근본이 한몸이며 근본과 지엽이 둘이 아니며 둘이 없는 그 性理가 참된 성리로다.

 이 참된 성리는 범부에게 있다 해서 못할 게 없고 성현에게 있다해서 나을 게 없다.

 스님이 만약 이 이치를 깨달으면 現世에 종횡으로 설파하여 三玄이니 宗門向上이니 最初句니 三要니 我空이니 法空이니 良久默言이니 절대로 짐작이 없는 것이 大用이니 하는 무리들과 같지 않을 것이니 아시겠습니까.

 만약 이와 같으면 쓸어 버림도 나에게 있고 세우는 것도 나에게 달려서 밝은 구슬을 가지고 놀며 종횡으로 유희함에 일없는 한가로운 도인입니다.

 潙山4)이 이르시기를 닦는 것과 닦지 않는 것이 두 가지 말이니 다만 물질에 아무런 뜻이 없다면 저 법의 성품에 맡겨져 두루 유통하여 끊지도 말고 잇지도 말라 하신 여기에 결택할 것이며 牧牛子가 이르시되 마음이 마음에 머물고 경계가 경계에 머물러서 어느 때에는 마음과 경계가 서로 대하여도 마음이 경계를 취하지 않으며 경계가 마음에 임하지 않으면 자연히 망념이 일지 않고 저 도에 걸림이 없으리라 하니 스님의 습기를 스스로 헤아려서[眞心直說] 가운데 열 가지의 공부짓는 방법 중 어느 것이든지 선택해서 하십시요.

 혹시 습관이 중하여서 定力이 약하고 혼침과 산란에 빠지거든 열 가지 중에 첫 번째인 깨달아 살피는 공부법을 의지할 것이며 혹은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방법과 혹은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 공부를 하십시오.

 

기사년 9월 15일

 

白龍城 답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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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寶藏 : 귀중한 보개가 가득 찬 창고. 중생들의 고액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미묘한 교법에 비유.  또는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如來藏과 같은말

2) 雍正皇帝 : 청나라 제 5대 황제

3) 臨濟 :(?~867) 중국 당나라 스님. 속성 邢. 臨濟宗의 開祖. 黃檗希運의 法嗣.

4) 潙山 : (771~853) 중국 당나라 스님. 潙仰宗 初祖. 속성 趙. 百丈懷海의 法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