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인도 8 베드샤(Bedsa)굴원

불국토 순례기/부처님이 나신 나라, 인도-8 데칸 고원의 한 점 섬, 베드샤(Bedsa)굴원

2009-04-10     관리자

뿌네(Pune) 에서 베드샤 굴원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실제 이수( 里數)로 따진다면 백 리 남짓한 길이며, 그렇다고 고산 준령을 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행자(대중교통 수단에 의지하는)에게 이 길이 멀고 험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도무지 신통찮은 차편 탓이다. 첩첩산중을 더듬어 길을 찾는다 해도 이보다는 나을 듯 싶다.

우선 깜쉐뜨(Kamshet)역(베드샤 굴원에서 가장 가까운)에 서는 기차를 만나기가 어렵고, 역에 내려서는 까룬즈(Karunj) 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만나기가 어려우며, 마을 어귀에 내려서는 굴원으로 오르는 길이 멀고 가파르다. 우여곡절 끝에 까룬즈(Karunj) 어귀에 버스가 닿았을 때는 이미 정오가 넘은 뒤였다. 아침 8시에 뿌네에서 기차를 탔으니 백 리 길을 무려 4시간이 걸린 셈이다. 버승서 내려 멀리 산허리에 보일 듯 말 듯 한 점으로 찍힌 굴원을 건너다 보았을 때, 돌아서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으로 배수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굴원 방향으로 나 있는 소로를 따라가면, 그 끝에 베드샤 마을이 있다. 30,40호 정도의 아담한 마을이다. 담벼락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쇠똥(귀중한 연료로 쓰인다)만 없었다면, 30년 전의 우리 나라 산간벽촌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외지 사람의 출입이 드문 듯, 호기심에 찬 아이들은 답사자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그러다가 혹 길이라도 물으려 하면 얼른 달아나 버린다. 꾸밈없는 아이들이다.

마을 한복판에 학교가 하나 있다. 우리 나라의 그런 학교가 아니다. 벽을 치지 않은 널찍한 교실 하나에 20,30명의 아이들이 맨바닥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 다소 산만하기는 하지만 즐거운 공부시간인 듯하다. 교실 한구석에 있는 붉은 색칠의 가네샤(Ganesa)신상이 인상적이다. 이들의 길흉화복을 책임지는 신이다.

산은 가파르고 날씨가 무덥다. 산비탈 여기 저기에는 동네 아낙들이 땔나무를 하느라 부산하다. 이 곳 아낙들은 평상시나 일을 할 때나 사리(Saree)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편의를 좇아 옛 것을 쉬이 버리지 않는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숨이 턱에 차도록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긴 사리(Saree)를 끌며 낫질을 하는 모습들이 딱하다. 산을 오를수록 선인장이 무성해지고 곳곳에 바위를 깎아 만든 돌계단의 흔적이 보이지만 길이 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가파른 산기슭의 8부 능선에 굴원이 있다.

가쁜 숨을 고르며 굴원 초입에 들어서면 잠부(Jamboo)꽃(꽃송이가 작지만 백목련과 흡사한)향기가 코를 찌른다. 이미 고목이 되어 그 원래 모습을 짐작하기조차 어렵게 되었지만 , 이 황량한 굴원을 지키고 섰는 두 그루의 잠부나무는 낯설은 객지에서 오랜 벗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고 , 고요한 경내를 더욱 고요하게 한다.

기원 후 1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굴원은 1개의 차이띠야(chaltya,塔院) 굴과 4개(오래된 기록에는 11개라고도 전해지는) 비하라(vlhara, 僧院)굴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탑원이다. 바위를 굴착하여 만든 좁은 통로를 통하여 안으로 들어서면, 4개의 기둥이 버티고 선 주랑(柱廊) 현관이 나온다.

아름다운 조각이 부조된 기둥 그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양식의 기둥 머리가 일품이다. 한 쌍의 남녀를 태운 말, 물소, 코끼리의 조각은 근 2천년이라는 세월의 추이에도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다. 주랑 현관의 내벽에 꾸두(kudu), 즉 편자 모양의 퇴창을 모티브로 한 다층 누각 디자인도 이색적이다.

현관의 화려한 조각에 비하여 내실은 매우 간소하다. 천정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으며, 스투파가 있는 가장 안쪽에는 반구형의 돔(dome)을 조성하였다. 내부와 요도(繞道)를 구분하는 26개의 팔각기둥도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화려한 기둥머리를 얹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밑동에 멋을 부린 것도 아닌, 그저 수수한 시골 아낙처럼 편안하다. 천정에는 목재 서까래를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한 때 단청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흔적도 보인다. 소박하기는 스투파도 마찬가지이다. 2층 기단 위에 놓인 복발형 탑신으로 이루어진 이 스투파는 전체적으로 홀쭉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기단의 상부에 새겨진 난간은, 이 스투파가 산치(Sanchi)나 아말라바티( Amalavati) 일대의 스투파를 전형으로 하면서도 실내에 안치되는 상황에 따른 일종의 변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피라미드형 평두(平頭) 위에는 산개를 꽂았던 대만 남아 있어, 온갖 잡스러운 낙서로 훼손된 스투파의 아픔을 더욱 가중시킨다.

탑원굴 바로 오른편에 있는 승원굴도 눈여겨 볼 만하다. 대개의 승원이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굴은 우선 천정이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그 안쪽이 반원을 이루고 있어 탑원굴을 연상하게 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좌우 벽과 뒷부분에 조성되어 있는 9개의 승방은 이 굴이 승원굴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승방 안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2인용 침상이 남아 있으며, 그 밑에 감(龕)을 만들어 둔 곳도 있다 . 입구 가까이에 있는 3개의 방(상당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는)은 내부의 승방과는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원래는 이 방들이 있는 현관과 내실 사이에 나무로 된 벽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 개의 방 가운데 둘은 미완인 것으로 짐작되며, 이외에도 베드샤 굴원에는 미완의 흔적들이 여럿 남아 있다. 탑원 왼편에 있는 소규모의 석굴에는 새기다만 스투파가 1기 있으며, 탑원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 통로만 깎아 만들어 둔) 도 치워져야 제 모습이 아닐까 짐작된다. 답사를 끝내고 잠부나무 밑에 앉아 땀을 식힐 즈음 이면, 돌아갈 일이 막막하다. 이제 머뭇거리다가는 오늘 중에 뿌네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배수진을 친다. 어제 바쟈 굴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드라스(Madras)행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으니, 마음은 이미 어제 데칸 고원을 내려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