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처음 그 자리에서

특집/산란심을 다스리는 법

2009-04-09     관리자

언제부터인가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런데 ‘잘 산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물론 잘 산다는 의미에는 물질적인 풍요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잘 산다는 것은 한 마디로 대답 할 수는 없지만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수행이란 그런 길을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가지고 이는 관념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늘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1997년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서울대 인근을 지나다가 ‘한국요가연수원’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몸이 바른 것을 원하면서도 자세는 늘 흐트러져 있었고, 정적이며 단아한 것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좌충우돌 부딪치며 어디로 튈 지 모르게 들떠 있는 모습을 교정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동대문에서 서울대 입구까지 다니며 1시간 30분 동안 수련을 하고 회사에 출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3개월쯤 지났을까. ‘참 좋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바뀌어가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짜증스러움이 없어지고, 삐죽삐죽 강하던 성격이 부드러워졌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되었다.

그냥 바라만 볼뿐이다

유유상종이라고 연수원에서 자연스레 수행에 관심이 있는 도반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행에 대한 정보도 서로 주고받다 보니 1999년 12월 미얀마 양곤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쉐우민 센터에서 5개월간 위빠사나 집중수련을 가지게 되었다. 호흡과 함께 배가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며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고요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출렁거리는 물이 잔잔해지면 물 밑의 온갖 것들이 다 보이듯 그냥 드러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솔직하고 청정해야 보인다. 그 일어난 현상에 대해서도 ‘예쁘구나’‘갖고 싶구나’‘참 좋다’등등 일체의 생각을 붙이지 않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 호흡을 놓치면 놓친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놓쳤구나’하며 다시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늘 깨어있으면서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가 필수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은 반드시 인터뷰를 통해 그 동안 공부한 것에 대해 점검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유쾌한 인터뷰스님을 만나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2004년 4월에 찾은 곳이 미얀마의 파옥센터이다. 양곤에서 버스로 열서너 시간 떨어져 있는 파옥센터는 사마타수행을 하는 곳이다. 이곳 파옥센터는 사마타수행을 통해 집중력(삼매)을 얻은 후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한다. 사마타수행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수행법이어서인지 생각만큼 녹록치는 않았다.

‘나’란 본래 없는 것

파옥센터 큰 스님께서 직접 이끄시는 이 선원에는 600~1,000여명의 수행자들이 함께 생활한다. 그 곳에는 미얀마 스님, 현지 재가신자(남녀 모두를 요기로 부른다),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 수행자들이다. 외국에서 온 수행자들은 중국과 대만, 유럽 등에서 오신 스님들이다. 물론 한국에서 오신 스님들과 나와 같은 재가 수행자들도 여럿 있었다. 이곳에서의 고도의 집중 역시 ‘이나빠나 사띠(호흡에 대한 마음 집중)’이다. 호흡시 콧구멍과 윗입술 사이 숨의 들고 나는 곳에 느낌이 가장 강하게 오는 곳(터치 포인트)을 집중하라고 한다. 명상을 시작하기 위해서 안락한 장소에 앉아서 숨이 콧구멍을 통해서 들고 나는 것에 깨어 있어야 한다. 집중력이 강해지면 ‘니밋따(선명한 표상)’가 생긴다. 니밋따는 개인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오직 터치포인트한 곳을 바라봐야 한다. 그 표상이 호흡과 하나 되어 단단해지고 굳어지고 안정될수록 공부가 익어가는 것이다. 그 니밋따에 집중하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야 한다. 그 삼매의 빛으로 선정을 들고 나는 것에 자유로울 수 있도록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한다. 이곳에서의 수행 지침은 철저히 불교 초기경전인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주석서에 근거한 정통 수행법에 따르며, 인터뷰 스님의 역할은 공부가 익어가는 정도를 체크해 주는 일이다. 물론 인터뷰시 가장 중요한 것은(나 자신에게 인터뷰를 지도해주시는 스님에게)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무엇인가를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기대와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 경전 말씀에 “충분한 삼매가 있다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삼매를 성취한 사람은 일체의 모든 것들이 연기의 법칙에 의해 일어나며 항상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란 본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언제나 그 자리

어느 산을 오를 때 여러 개의 코스 중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직선코스로 산을 오르든 조금은 긴 코스로 오르든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일부러 어려운 코스를 택해 암벽 등반을 하기도 한다. 산을 오르다 좋은 친구(도반)를 만나기도 하고 여러 번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안내자를 만나 재미있고 쉽게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산의 정상을 보고 산을 내려온 순간 다음 산을 오를 때는 역시 처음으로 다시 준비해야 한다. 수행 중에 집중이 떨어져도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조금 전에 무엇인가를 봤다고 해서 그것을 다시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 생각마저도 내려놓아야 한다. 파옥센터에서 7개월 만에 돌아온 지금 다시 요가 호흡부터 시작하고 있다. 돌아오면 언제나 처음 그 자리다. 설령 가던 길을 가다 중도하차 할지라도, 혹은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수행자로서 평생 가야 할 이 길을 가고 있기에 늘 행복하다.

박선경 님은 요가에 입문한 후 지도자 과정을 거쳐 요가 교사로 활동, 미얀마 쉐우민 센터와 파욱센터에서 위빠사나, 사마타 집중 수련을 통해 행복한 수행자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