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에서 본 윤회

특집/윤회를 다시 본다

2009-04-07     관리자

‘인간이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없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천상, 지옥, 축생 그리고 다시금 인간으로 태어나는 영원한 순환의 과정(Process of Circulation)을 밟게된다’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윤회(輪廻)사상은 비단 불교만의 사상이 아니라, 부처님오시기 전부터 인도에 있던 베다(Veda)교나 브라만(Brahman)교의 교리에서도 그 씨앗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사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아마도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인도에서 생긴 자이나교(Jainism)의 영향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어쨌든 사후에는 천당에 가거나 지옥에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는 기독교 사상과는 달리 불교에서는 천당이나 지옥에 갔던 영혼이 다시금 축생(畜生)이 되거나 새로운 인간이 되어 태어난다고 보는데 이러한 윤회사상은 매우 흥미있는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업(Karma)을 잘못 닦고 탐·진·치의 세계에 탐닉하게 되면 필경 죽어서 지옥에 가거나 개나 돼지 등 축생이 되고, 업을 잘 닦으면 천상의 극락세계에 간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적극적으로 선한 생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다할 것이다.

죽고나면 그만이라거나 죽기직전에 하나님께 회개하면 천당에 갈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면 일생을 살면서 온갖 사악한 일을 다 해도 된다는 역설적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부 불교 신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아니면 사업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기돋교를 믿게되는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통계를 볼 수 있는데 그 이유중의 하나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교의 윤회사상과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 한다. 더우기 우리는 일제시대의 시련과 해방, 6·25, 정치적 격변, 군사혁명, 근대화 운동, 민중의 한풀이 운동 등을 보면서 본의아니게 누구나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아온 역사였다.

아버님께 효도 못하고 도시로 나온 죄, 사회정의를 위한답시고 친구와의 우정을 끊은 죄, 보다 더 매력적인 여성이 나타났다고 애인을 버린 죄, 돈을 벌고 경제 건설을 해야 한다고 동업자를 배신한 죄, 온갖 고생끝에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동창생을 깔본 죄, 민주화 한답시고 스승에게 대어든 죄, ‥‥‥ 온갖 죄들이 이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난무하게 되었다. 이 죄들이 죽어서도 그대로 따라가서 그 죄과에 따라 천당이나 지옥, 또는 축생으로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불교는 너무나 큰 심리적 불안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지난 이삼십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죽기전에 회개만하면 천당도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기독교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윤회의 가르침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보다 높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하며 남에게 착한 일을 하고 좋은 업(Karma)을 닦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사상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신분석학은 프로이드에 의해 창시된 현대과학의 한 분과에 속한다. 때문에 정신분석학이나 심층심리학(Depth Psychology)에서는 사후세계를 다루지는 않는다. 따라서 윤회사상과 같은 주장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정신분석학을 깊이 연구해 보면 여기에도 불교의 윤회사상에 해당되는 발상이 그 깊은 곳에 내포되어 있지 않나하는 부분이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윤회사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첫째번 측면은 프로이드의 이른바 ‘죽음의 본능설’에 있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성욕이나 식욕 등 삶의 본능(Libido)이 있는가 하면 이와 정반대로 죽고 싶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삶의 본능’은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한 것을 피하려 하기때문에 쾌락원칙의 지배를 받는다 했다. 죽음의 본능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죽고나면 인간이 숨을 쉬거나 밥을 먹거나 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죽은은 욕망이 춤추는 세계가 아니라 욕심이 없어지는 ‘고요한 세계’ 즉 영원한 적정의 세계라고 프로이드는 주장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백년전의 서양인인 프로이드가 이러한 자신의 학설인 죽음의 본능을 ‘열반원친(Nirvana Principle)’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의 세계는 즉 열반의 세계라고 본 프로이드의 발상은 아마도 불교의 가르침에서 어떤 힌트를 얻은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인 것이다. 불교는 종교이기때문에 거침없이 사후세계를 말하며 극락세계나 열반세계 등에 대해서 다루게 되지만 과학자인 프로이드로서는 자신의 죽음의 본능설과 열반원칙설(Nirvana Princilpe)을 가정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높은 통찰력을 발휘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육체는 세포로 되어 있는데 이 세포는 단백질의 합성과정에서 생겨났다‥‥‥ 단백질이 생명체로 합송되는 과정에는 무생물인 여러 원소들이 합쳐져야 한다. 무생물이 생물체로 합성되는 과정에서는 이 과정이 역으로 가서 즉 생물체가 무생물체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따라서 생명체로 합성되려는 본능이 ‘삶의 본능’이며 반대로 무생물인 각 원소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이 ‘죽음의 본능’이다”라고 프로이드는 설명하고 있다.

어쨌든 프로이드의 ‘죽음의 본능설’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세계 즉 사후세계를 가정한 발상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과학에서도 윤회사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불교의 윤회사상은 인간의 생전 또는 사후세계라는 시간의 영원성에 바탕을 둔 사상이라 하겠는데 이와 유사한 두번째 측면을 정신 분석의 개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프로이드가 노이로제의 원인을 캐는데 있어 유아기의 ‘정신적 충격설(Early Mental Trauma)’을 주장한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서양의 학계에서는 병이 생기는 원인은 뼈가 부러졌거나, 화상을 입었거나, 세균이 몸 속에 들어갔거나 하는 당장의 원인때문에 온다고만 믿었으나 프로이드는 노이로제나 정신병의 원인이 당장의 쇼크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극히 어린시절에 받은 어떤 상처때문에 온다는 사실을 주장했던 것이다. 수십년 전에 있었던 일과 상처는 불교식으로 말하면 어떤 인연과 업을 지은 것이라 하겠는데, 프로이드는 이런 과거의 상처가 먼 훗날 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특히 프로이드는 만 1세에서 5세까지의 유아경험을 중시했는데 그후 그린아크(Greenacre)같은 정신분석학자는 더 거슬러 올라가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당시 입은 상처도 훗날 노이로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님 뱃속에 태아로 있기 이전은 어떤가? 그것은 어머님 난소속의 난자(Ovum)와 아버님 고환속의 정자(Spermatozoa)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상태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모님의 위장에 들어가는 음식물과 단백질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즉 무생물이라 할 수 밖에 없다.

프로이드의 노이로제 원인설을 따지고 보면 결국 한없는 옛날로 올라가야 하고 이것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세계까지 가야만 해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교의 윤회설에 해당되는 개념을 정신북석학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보여주는 시간의 무한개념을 정신분석학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이승에서 좋은 업을 닦아야 저승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가르치는 바와 같이 정신분석학에서도 인간이 부단히 자아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삶의 과정에서 얻는 상처들을 해결하면서 보다 성숙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행복이 온다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