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고마움

빛의 샘/감사

2009-04-07     관리자
감사, 고마움 혹은 고맙게 여김이라고 사전은 간단히 밝히고 있지만 정작 그같은 생각이 누군가의 마음 속에 가득차게 되면 그 느낌은 이미 한 가지 표현으로 정의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내게 있어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지만 불행히도 현실의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에겐 그같이 느꺼운 감정을 진솔하게 느낄 기회란 좀처럼 없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감사의 대상들은 쉽게 떠오른다. 부모님,친척, 친지들, 형제, 아내와 아이.... 하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순수하게 '감사'라는 느낌을 가졌던 경험을 말하자면 내게 그건 하나의 이미지로 온다.

결혼 전 연구소 내의 독신용 기숙사에 머물던 시절, 나는 그곳의 아침이 주는 마력에 이끌려 언제나 일찍 일어나게 되곤했다.

연구소가 제법 넓은 산 속에 터를 잡은 까닭에 직장의 분위기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어했지만 이른 새벽 생생하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기숙사 옆의 숲길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 인적은 드물고 주변의 나뭇잎은 간밤에 내린 이슬을 받아 차갑고도 부드러운 숨을 토하며 이제 막 떠오를 새로운 태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이러한 길을 새벽에 걷는 기분이란!

머릿속은 마치 맑은 물로 깨끗이 헹궈내기라도 한 것같이 투명해지고 마음은, 뭐랄까 조용하고도 벅찬 느낌표로 가득차고 만다. 살아있는 것이 한없이 기뻐지고 어떤 정갈한 기도마저 떠오르는 한순간, 나는 무언가에게 진실로 감사하였다. 마치 더 이상 순전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과도 같이.

사실 따지고보면 내게 그런 느낌을 갖게한 실체는 그저 평범한 나무들의 군집과 아침이라는 시간적인 조건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작은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소가 어떤 건물이거나 인공적인 정원이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풍경에 대한 감탄은 있을지언정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평안과 감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감사를 느꼈던 대상은 '자연',바로 그것이었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가진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서 인간을 고양시키고 때로는 위로하며 우리 삶의 터전이 되어왔다. 기실 우리가 항상 동정하며 그리워하는 것들 속엔 언제나 자연이 있다. 유년의 나날들, 자유롭고픈 여행길, 고향의 모습 ....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자연에게서 받은 온갖 혜택을 잊어버린양 이기적으로 자연파괴를 일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뒤늦게나마 문제의식을 느끼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주변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엔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 듯하다.

나는 내가 아침의 작은 숲길에서 느꼈던 그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내 아이에게도 꼭같이 느끼게 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과 그들의 후손들과도 함께 나누고픈 일이며 또한 마땅히 그래야할 것으로 믿는다. 인간이 아무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해도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할 것이 있으며 그 많지 않은 것들 중 하나가 자연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난 뒤에도 후손들이 또 그들의 후손과 함께 자연을 느끼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거기엔 단순히 삶의 터전을 보존하고 물려준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보며 가슴으로 배운 모든 것들, 의연함과 조화 그리고 감사를 느끼는 겸허한 마음가짐이라는 귀중한 유산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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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은 동국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여 현재 대전 대덕연구단지내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