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상추 놀이'라는 이름의 경로잔치

불교 세시풍속

2009-04-03     관리자

3월의 세시

지난 2월에 입춘과 우수가 지나고 보니 이제는 양지바른 언덕에 냉이며 쑥이며 봄 나물이 돋아 오른다.

양력 3월 6일이 경칩(驚蟄)이고 보면 개구리가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땅 위로 기어 오른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 속에서 동면하던 동물들이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때이다.

 개구리들은 물이 괴어 있는 곳을 찾아 알을 까놓으니 번식을 하려는 자연의 조화라 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알을 먹으면 속병이 없어지고 특히 허리 아픈데 특효라해서 보기만 하면 건져 먹는다. 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 알을 보약이라며 팔기도 한다.

 한편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담을 쌓거나 벽을 바르기도 한다. 한 겨울 얼었다 녹은 담과 벽돌이 무너지기 쉬우니 시기로도 적절하다 하겠다.

 지금은 없어진 '물것' 가운데 옛날에는 아주 고약했던 것이 빈대라 하겠는데 이 빈대가 많은 집에서는 경칩날 재를 탄 물을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 두면 없어진다 했다.

 또한 이 날 보리싹의 성장을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속신(俗信)도 있었다.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의 껍질에 상채기를 내어 흘러 나오는 수액을 받아 마시면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험이 있다 해서 약으로 삼기도 했다.

 양력 3월 8일이 '출가재일', 15일이 '열반재일', 18일이 '지장재일', 24일은 '관음재일'이다.

'풋상추 놀이'라는 이름의 경로잔치

요즘은 '비닐 하우스'라는 것이 있어 춘하추동 계절에 관계없이 야채와 과일을 먹고 있지만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이른바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 '경칩'이 지나야 겨우 싱그러운 풋나물 맛을 볼 수가 있었다.

 하긴 텁텁 구수한 묵은 김치를 큰마누라에 비유한다면 그보다 더한 것이 없으련만 모처럼의 봄 푸성귀의 상큼함도 그와 쌍벽을 이를 만 했다.

 자연생의 '달래'며 '돈나물'이며 '냉이', '쑥', '물쑥' 등은 모두가 계절의 미각을 돋구는 것이었다.

 이러한 때에 봄 푸성귀로 경로잔치를 벌이는 아름다운 풍속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 버렸으니 서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근년에까지 '풋상추 놀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왔던 부산 동래 고을의 경로잔치를 다음에 소개한다.

 …바람이 타지 않는 오목하면서 양지 바른 곳에 상추며 쑥갓 씨를 일찍 뿌려, 밤에는 짚으로 덮고 낮에는 햇빛을 쪼이면서 정성을 들이게 되면 냉이 캐는 무렵보다는 조금 늦지만 3월 하순 쯤 야들야들하나마 맛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상추, 쑥갓과 냉이를 비롯한 봄 푸성귀와 술에 고기안주를 고루 갖추어 놓고, 노인을 공경하는 잔치를 베푸니 이보다 더 따사로울 수가 있으랴!

 준비한 젊은이나 초대되신 노인들께서 싱글 벙글 웃음꽃을 피우는 가운데 좌중은 한결 훈훈해진다.

 술과 안주가 흡족하니 어찌 춤 또한 빠질 수가 있으랴.

 여기에서 추어졌던 '학춤'은 지금도 '동래학춤'이란 이름으로 부산의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소중하게 전승이 되고 있다.

 도포에 갓을 쓰고 너울 너울  학의 시늉을 하면서 청초하고도 우아한 춤을 춘다. 장수의 상징이라 할 학의  자태를 굿거리 장단에 맞춰 소박한 민속적인 율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겸손하면서도, 계절과도 걸맞은 '풋상추 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경로잔치는 이제 없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그와 함께 추어졌던 '동래학춤'이 전하고 있음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까?

 욕심 같아서는 '풋상추 놀이'속의 '동래학춤'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옛날 동래 금강공원의 노송 아래에서 주로 펼쳐졌다고 하는 풋상추 놀이판을 허공에 그려 보면서 허전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새 봄을 맞는 이맘 때면 팔도강산 어디에서나 시절음식을 갖추어 경로잔치를 벌였으며, 불심이 돈독한 불자들은 노인을 모시고 봄맞이를 겸하여 명승고찰을 찾기도 했는데 모두 옛풍속이 되고 마는가 싶어 아쉽기만 하다.

농사의 시작인 춘분(春分)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라 할 춘분은 양력 3월 21일이다.

24절기의 하나인 춘분은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春分點) 위에 왔을 때이니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면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농가에서는 이 날 농사의 시작이라 할 애벌같이[初耕]를 성심껏 해야만 탈없이 풍요한 수확을 얻는다고 믿어 소를 잘 먹이고 쟁기를 손질하는 등 일손이 바빴다.

 그러면 여기서 경칩· 춘분 절기에 해당하는 중춘(仲春)의

'농가월령가'한 대목을 인용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 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 나니 버들꽃 새로와라. 보쟁기(보습과 쟁기) 차려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살진 밭 가리어서 봄보리 많이 갈고 목화밭 갈아 두어 제때를 기다리소.담배 모와 잇(약초)심기 이를수록 좋으니라."

 한 폭의 풍속화를 보는 듯한 위의 노래를 조용히 읊조리면서 올해도 무척이나 땀 흘리실 농민 여러분의 노고에 옷깃을 여며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한 알의 씨앗을 심어 땀 흘려 가꿔서 만 알을 거둬, 온 백성의 양식을 마련해 주는 농군의 수고로움이야말로 모름지기 견성(見性)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겠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