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스리랑카 3 폴론나루와

울창한 숲이 있는 중세의 고도(古都)

2009-04-03     관리자

ㅡ스리랑카 폴론나루와(POLONNARUWA)

 

▲ 갈 위하라에 있는 14m 길이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상과 7m 높이의 그의 제자 아난 존자 입상

 

▲ 원형 불탑 와타다게

폴론나루와는 콜롬보에서 약 215km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 동남쪽에 있으며, 시기리야에서 동쪽으로 약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밀림이 울창한 중세의 고도다운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11세기 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으로 인해 아누라다푸라에서 이곳 폴론나루와로 수도가 옮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옛도읍에 남아 있는 유적은 주로 위자야 바후 1세와 파라크라마 바후 1세 등 두 왕 시대의 것이다. 특히 파라크라마 바후 왕(King PARAKRAMA BAHU 1153년~1186년)은 스리랑카 최초로 저수지를 창안하여 관계수리사업을 발전시켜 모든 사람들이 농사가 잘 되고 바른 불교 생활을 할 수 있는 원천을 만들어 나간 훌륭한 왕이기도 하다.

 

▲ 파라크라마 바후 궁성터

 이 근방에는 1,000여 곳 이상의 크고 작은 관계용 저수지가 있는데 그 중에 바다라는 뜻을 가진 파라크라마 사무드라야(PARAKRAMA SAMUDRAYA) 저수지가 대표적으로 넓다. 이 왕은 "저수지의 물을 한 방울도 바다로 흘러 보내선 안된다."라고 강조하였고, 불탑(DAGAV-A), 저수지(WEWA) 그리고 불교(PA-NSALA)에 역점을 두어 스리랑카의 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정책을 펴 나갔다.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는 자연의 보존이다. 이것은 곧 사회 번영의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셨단다.

 사람이 살아가는 주변은 항상 숲을 만들고, 보존하며, 수로사업을 해서 비의 형성과 공기정화 등 원활한 자연현상을 유지함으로써 식물에서 얻어지는 것은 인간을 비롯하여 동물(생물)들에게도 이롭다는 사실을 불교에서는 벌써 말하였던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라크라마 왕은 석가모니 부처님 말씀을 깊이 받아 들였고 그것을 실천한 왕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 본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고 공원과 정원이 많이 있으며 많은 유적들은 녹음 속에서 우뚝 서 있다. 풀론나루와의 유적들은 남북 일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관광하는 데는 무척 편리하며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더욱 좋다.

 

▲ 코끼리상

남쪽에는 정원을 둘러싼 건물군과 왕의 궁전, 왕실의 목욕탕들이 있으며 1층의 200여 평 되는 넓은 궁전은 처음 건축 당시는 7층 건물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2층만 남아 있다. 원형으로 축조된 와타다게(Watadage)는 전형적인 불탑이며 한 방향으로 부처 좌상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부처님을 향해 첫 계단을 밟기 전의 바로 앞바닥은 반원으로 된 강한 돌 위에 여러 마리의 코끼리와 다른 모양들이 새겨져 있다. 스리랑카 불탑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코끼리들이 부처님을 등에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니고 해시계와 같이 태양 방향에 따라 시간을 볼 수 있도록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 그 건물 옆바닥에는 우리네 용마루용 기와 같은 것으로 이어져 비가 오거나 하였을 때 그 물이 하수도를 통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던 지혜의 흔적이 있었다.

 또한 풀론나루와를 중심으로 북쪽 약 5~6km 가게 되면 갈위하리라는 곳에 커다란 바위 자체를 깎아 부처님을 모셔 놓은 길이가 약 14m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와불상(열반상)과 왼쪽 옆으로 7m 높이의 아난 존자 입상이 있고 그 왼편으로 약 4m 높이의 좌불상이 나란히 계신다. 다른 돌의 잇댐이 없이 하나의 커다란 통짜 바위를 가지고 정성들여 부처님들을 조각하여 놓은 것에 놀라웠다.

 

▲ 파라크라마 바후 왕의 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