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의실] 1.보현행원품 강의

성전 강의실

2009-04-02     광덕 스님

ꊱ 머리말

 

 보현행원품은 화엄경 입법계품에 있는 법문인 바 화엄경법문의총결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사상의 진면목이다. 화엄경이 부처님의 깨달으신 내용, 광대한 공덕을 설하고 있지만 행원품에 이르러서 그와 같은 광대한 공덕을 성취할 방법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무상정각을 이루기로 발심하여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는데 53선지식을 찾아 법을 묻고 배우는 구도역정의 마지막 차례에 보현보살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보현행원을 설하여 그의 기나긴 구도역정의 최후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행원의 내용에 대하여는 뒤에 언급하겠지만 열 가지 행원 하나하나는 보살행을 완성시키는 최고 최상의 행일 뿐만 아니라, 바로 제불여래와 함께 쓰는 일진법계(一眞法界)의 현발이며 자성의 묘영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을 지식으로 알려하거나 이론으로 알려하는 사람은 또 모르거니와 불법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불법의 무상고덕을 자신의 생활과 환경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불 보현행원을 배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로 인간은 구체적 실천을 통하여 체득이 있는 것이며 불법은 이론이나 관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행에 있는 것이다. 참으로 살아있는 참된 자신의 진실행을 전개함으로서 인간은 자성의 청정을 확인하는 것이며, 나아가 인류역사를 평화와 환희의 평원으로 펼쳐가는 것이다. 만약 불법이 아무리 교학이 정연하고 그 세계가 찬란하기 비할 데 없고 그 사상이 원대하고 착실하더라도 그 진리를 현실위에 굴리는 구체적인 창조행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타방세계의 화려한 장엄에 그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사상적 혼란과 사회적 변동으로 인간정신은 극단의 혼돈 속을 헤매고 있다. 높은 이상과 인간가치의 실현보다 각박한 현실상 위에서 살아 나가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갈등과 대립과 충돌 속에서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순간순간의 생존성의 연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보현행원에서 오늘의 현실이 영원을 실현하며 낱낱 행에 완전무결한 진리를 창조하여, 나아가는 대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보현행원품을 읽고 배우고 행하여 오늘의 인류세계를 평화와 번영이 영원한 보살국토로 바꾸기를 기약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보현행원의 각 요목에  대하여 약간의 숨은 뜻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오늘의 보현행자들에게 나의 경찬을 보내고자 한다.

 

ꊲ 보현보살에 대하여

  보현행원은 보현보살이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연의에 보현보살의 덕상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을 가하고자 한다.

  보현보살을 찬탄하는 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보현신상여허공(普賢身相如虛空)
  의진이주비국토(依眞而住非國土)
  수제중생심소욕(隨諸衆生心所欲)
  시현보신등일체(示現普身等一切)

  이 찬게는 보현보살의 몸과 보현보살이 머물고 있는 곳과, 보현보살의 행을 잘 말해준다. 보현보살의 몸 모양을 형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보현보살은 바로 비로자나불의 원만한 원과 완전한 덕을 함께 갖추고 있으므로 육체적 물질적 내지 감각적 이해의 대상이 되는 현상으로서 보현보살을 보거나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보현보살은 그 체성이 법계(法界) 자체인 것이다. 그는 서방국토니 동방국토니 하는 한계적 국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일진법계(一眞法界)에 진리 자체로서 스스로 머문다. 이와 같이 볼 때 보현보살의 덕과 그 행이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법계의 현전(現前)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보현세계를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부득이하여 억지로 법계니 일진법계니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보현보살의 행은 어떠한가? 화엄경에는 보현십삼매(普賢十三昧)와 보현십심(普賢十心)을 말하고 있다. 이는 보현의 체성(體性)과 용성(用性)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보현의 실상이 이러하므로 보현에게는 따로 버려야 할 중생도 타파해야 할 미록도 벗어나야 할 번뇌도 그에게는 없다. 실로 보현에게서는 그 일체가 보현의 진법계(眞法界)인 것이다. 관보현보살행법경(觀普賢菩薩行法經)에는 「보살심을 일으켜서 대승을 수행하고 무상보리심을 잃지 않으며 또한 번뇌를 끊지 않고 다시 오욕을 여의지 않고 육근(六根)이 청정하여 모든 죄를 없이하며, 부모가 낳아주신 이 몸으로 오욕(五欲)을 끊지 않고 모든 경계 밖의 일을 보자면...」 마땅히 보현을 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본다.

  보현은 바로 이것이 실상(實相)이니 그 앞에는 일체 망상과 업장이 설 수 없는 것이다. 보현보살은 이와 같이 무구청정의 대행을 펴서 일체 중생을 고루 제도하신다.

  보현(普賢)이라 하는 것은 그 뜻이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보현보살은 그 행 하나하나가 법계에 맞으며 두루 일체의 조화한다.

  그의 체성이 두루 하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보(普)」라고 하는 것이며 그가 갖춘 항하사공덕은 말도 생각도 미칠 수 없지만 인연 따라 일제처 일체사에서 완전무결한 덕성을 실현하므로 이를 「현(賢)」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덕성과 공덕을 성취하며 그 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이와 같은 보현에 있어 마지막이라 하는 것이며, 우리들은 보현행원을 배움으로서 이와 같은 보현과 더불어 하나임을 깨닫게 되어야 할 것이다.

  행법경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보현보살은 신량(身量)이 가가 없으며, 음성이 한이 없으며 색상(色像)이 끝이 없어서 이 국토에 오실 때면 자재한 신통으로 그 몸을 적게 한다. 그리고 지혜의 힘으로 그 몸을 적게 한다. 그리고 지혜의 힘으로 서 흰 코끼리를 나투고 한다....」

  오늘날 우리 불교에서 코끼리를 보현보살의 만덕구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도 이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 남을 살리면 자기도 산다

☆ 내어쓰지 않는 힘은 퇴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