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빛을 주자

오늘에 빛을 주자

2009-04-02     관리자
 

  오늘의 한국인은 옛날과 달리 의욕적이고 진취성이 있어 장래 희망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외국에 나가보면 그것이 여실히 느껴지는데, 내가 이번 학회(學會)의 관계로 멕시코시(市)에 가는 도중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안 타운을 보고 더욱 우리 민족의 희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세계 각처에 큰 공사를 맡고 일을 통하여 신용을 얻어가고 있어 동남아(東南亞)의 여러 나라에서도 한국의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서구(西歐)나 미국인들도 그리 보고 있어, 특히 미국에서는 한국이민의 부지런함을 보고 유태인보다 몇 배 지독한 민족이라고 특이한 평을 하고 있다고들 한다. 일류 테파아트에 한국산(韓國産)물건이 당당히 들어가서 잘 팔린다고 한다. 옛날의 일본인들이 우리를 게으르다고 평하던 것은 완전히 일소된 셈이다. 나는 놀란 일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에서 TV를 트니 한국TV가 아니냔 말이다. 일주일의 이틀인가 사흘인가 밤 프로의 일부를 사서(?) 한국TV의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가 하면 한인(韓人)들의 좌담회에 장사의 선전이 우리나라에서와 똑같이 나온다. 전화 책도 보니 한글로 엮어진 한인(韓人)만의 전화번호 책이 있다. 또 그 곳의 자동차 면허의 시험은 한글로 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파리시(市)의 번화가에 당당히 큰 빌딩을 한 채 현대건설(現代建設)과 KAL이 사서 그 위세를 보이고 있다. 신라 때의 장보고란 사람이 해상의 왕이요 무역의 대장 격으로 활약한 것이 지금 다시 그 기세를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 한국민이 어찌도 그리 의욕적이고 진취성이 있고 활발하고 용감한 국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이것은 정말 내 생애에 처음으로 느끼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여지껏 우리는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필요이상 낮추어보려고 함이 일종의 체질과 같이 되어 있고 스스로를 「엽전」이니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어」, 「우리는 틀렸어...」식으로 말하던 것이 엊그제가 아니냔 말이다. 「북한은 공업으로 뻗고 있는데 우리는 농업으로 어떻게 하지...」가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만사를 절망에 가깝게 봄이 정단한 이론같이 말한 것이 얼마나 국민의 사기를 꺾는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악몽에서 깨어난 것만 같다. 지금의 우리 경제를 내어다본다고 「달러를 거의 다 썼는데 곧 바닥이  들어난다」라고 말한 평론가의 얼굴이 가끔 떠올라 우습기만 하다.

  그러나 이같이 겉에 나타난 현상만 보고 기뻐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는 크게 자랐고 자신(自信)도 생겼으나 반면에 정신적인 면에서 후퇴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감정에서 전통이라 문화의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다. 박물관이 서고 인간문화재를 대우하고 향토발전을 위하여 지방마다 축제가 일어나고 있으나 생활 방식이 돈만 있으면 지나치게 서구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학생을 놓고 보더라도 퇴계와 율곡의 사상이나 더 올라가서 서화담(徐花潭)의 업적은 몰라도 헤밍웨이나 토인비에 관한 것은 더 잘 알고 있다. 핵가족을 바라고 있으나 부모의 재산을 의자하려는 모순이 당연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것이 대학입시시험의 구술고사에서 학생들의 사고경향을 간단히 테스트 할 수 있어 기성세대의 반성이 요망된다.

  나는 인도의 여성을 존경한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도 그들 지식여성이 야장을 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 좋은 한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장으로 사치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일본도 결혼식에서 신부를 다시 일본머리의 일본 복으로 나선다고 한다. 우리의 사치는 정도 이상을 넘어선지 오래며 이것이 부조리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번 여름 미국에서 온 교포학자가 놀라운 듯이 「그 비싼 양주(洋酒)를 어찌 그렇게 즐겨 마시는지 놀랐어요...」라는 말을 듣고 나는 선뜻했다. 나는 지난 일요일 경춘선의 강촌(江村)역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의 풍경을 볼 때 정말 비관했다. 등산에서 돌아오는 젊은 세대가 팝송으로 악다구리 끓듯하니 공중도덕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지만 세계 최상급의 타락열차라고 평하고 싶다. 이것이 숨김없는 우리의 정신상태가 아니랴. 내가 15만이 모인다는 호주(濠洲) 제일의 해수욕장을 밤에 안내를 받고 간 일이 있다. 거기에는 구비치는 파도소리밖에 들리지 않고 남의 폐가 되지 않도록 호텔이나 방갈로의 불만 보였다.

  우리는 정신상태가 아직은 정비되지 않은 만리포 해수욕장의 밤풍경 위에 문화의 고루가 세워지는 것을 아닐까 한다. 나는 여기서 감히 주장한다. 재주 있고 쓸모없는 우리 국민의 정신을 일깨우고 반성시킬 뜻있는 선재들의 활발한 계몽운동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신문·잡지 등의 매스컴이나 종교의 설교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거족적인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전개된다면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되고 다시 없이 발전할 것을 굳이 믿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