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사라진다

지상강연 2

2007-03-09     관리자


『대반열반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3개월에 걸쳐 열반지인 쿠시나가라까지 이동하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실 날이 얼마 안 되니까 제자들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대반열반경』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는 말은 딱 한 군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이 가장 핵심 되는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비구들이여, 내가 간곡히 당부하노니 마음챙김을 하라.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려라.”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은 몸과 마음이 현재 무엇을 하든 간에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잘 아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가고 없으면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또는 섬으로 삼고, 귀의처로 삼고, 다른 누구를 섬이나 귀의처로 삼지 말라. 그리고 법을 등불로 삼고, 섬으로 삼고, 귀의처로 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현재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라
이 말씀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뒷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바로 이어서 “그러면 어떻게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귀의처로 삼고 다른 사람을 귀의처로 삼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또 어떻게 법을 등불로 삼을 것인가.”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 방법이 사념처(四念處)입니다. 사념처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고,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것이에요. 물론 사념처는 좀 복잡하지만 핵심은 몸과 마음을 현재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쉬고 있으면 숨을 들이쉬는 것, 또는 내 마음에 탐욕이 있으면 탐욕이 있는 것, 탐욕이 없으면 없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챙김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되신 것에는 마음챙김의 코드가 굉장히 중요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무슨 수행을 하든지 수행이란 결국은 수행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마음챙김을 놓치면 곤란할 것입니다.
사실 저도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라고 했지만 왜 관찰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터뷰하시는 스님께 “왜 관찰해야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스님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알기 위해서 한다.” 영어로는 “To know.”라고 그래요. 그래서 일주일 정도는 계속해서 인터뷰 때 그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쯤 되어서 어떤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을 경험하고 나니 그때 ‘아! 이런 것을 관찰하려고 계속 관찰하라고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자신만의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 그것을 통해서 진리의 일부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앉아서 40~50분 좌선을 하면 그때부터 다리가 조금씩 저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앉아있는데 몸의 저린 부위에서 포탄이 터지는 것같고 세포분열이 엄청나게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내가 내 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와는 무관한 것이구나. 나의 통제를 벗어난, 나와는 전혀 무관한, 내 통제 밖의 것이구나. 아, 그래서 무아(無我)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수행하면서 참 신기하게 느낀 것은 생각의 정체입니다. 나름대로 불교공부도 했지만 이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좌선을 하고 또 보행명상을 하면서 가만히 보니 생각이 그냥 쑥 올라오는 겁니다. 그때 ‘아, 생각이라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냥 올라올 뿐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이 올라오나 하고 자세히 보니 그 전에 입력된 것이 올라옵니다. 주로 몇 시간 전이나 어제 있었던 일이 올라오고, 특히 걱정거리가 있으면 올라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제부터 생각을 잘 보호해야 되겠구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넣으면 그것이 올라오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이제 안 넣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인슈타인이 왜 물리를 잘 하는지 알았습니다. 머릿속에 물리가 꽉 차 있는 사람이니까 가만히 있어도 물리가 떠오르고 그러니까 물리를 잘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 환자들이 왜 병이 났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 환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골똘히 해요. 골똘히 생각해서 생각을 엄청나게 입력시키니까 나중에는 가만히 있어도 그 생각이 올라옵니다. 생각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이 병이고, 생각이 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사고로 팔을 하나 잃었어요. 두 사람이 똑같이 팔을 잃었는데 어떤 사람은 팔에 대해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그 생각에 묶여 있어요. 팔에 대해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한 사람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또 누구에게 돈을 떼었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난 뒤에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당해요. 생각을 안 한 사람은 고통을 별로 당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고요히 앉아서 수행해보시면 ‘결국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윌리엄 제임스라는 미국의 굉장히 유명한 석학은 ‘비가 온다’를 ‘It rains’, ‘바람이 불다’를 ‘It winds’라고 하듯이, 생각도 ‘I think, You think’ 하면 안 되고 ‘It thinks’ 해야 된다 그래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불교를 알든 모르든 잘 관찰하는 사람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듯 생각도 그냥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경전 말씀도 자세히 보세요. 부처님이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지 ‘내가 이 생각을 했다’는 말은 절대로 없습니다. 생각은 그냥 날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생각만 그렇게 올라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계속 하다보니 모든 정신 작용도 생각과 같이 그냥 올라오는 겁니다. 우리의 의도다, 의지다 하는 모든 것이 그냥 올라옵니다. 그런 면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정신작용은 우리의 컨트롤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서 환자치료에도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환자와 충분히 이야기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또 환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고 그것을 알고 난 뒤에 놓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두 가지를 병행합니다. 환자와 충분히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서 자기에 대해서 알도록 하는 한편 적절히 놓는 훈련을 하는데, 실제로 치료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냥 바라보라, 보면 사라진다
미얀마에는 모기가 엄청 많습니다. 그러니까 걸어 다녀도 물고, 밥 먹을 때도 물고, 아무튼 항상 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계 중 첫 번째가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기를 죽일 수 없어요. 모기도 그것을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모기도 여유 있게 그냥 물고 있다가 자기가 날아가고 싶을 때 날아가는 것입니다.
저도 한 달 출가이긴 하지만 비구복을 입었고, 비구이기 때문에 모기를 쫓아 보내기도 자존심이 상해 모기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모기가 날아가고 싶을 때까지 가만히 두었습니다. 모기가 앉아서부터 날아갈 때까지를 계속 관찰해요. 모기가 물어서 가려운데, 그 가려운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모기가 탁 착지하는 것이 느껴져요. 그리고 조금 있으면 가렵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가려워집니다. 미얀마 모기의 특징은 굉장히 가렵습니다. 폭탄이 막 터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이 지나면 전혀 가렵지 않습니다.
모기가 물어 가려운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니까, 가려움이 훨씬 줄어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려운 것이 결국은 없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모기가 물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가려운 것을 지켜보면 가려움의 정도가 줄어들고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부터는 안과에 가서 레이저 치료를 받든지 치과 치료를 받든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니까 통증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시술하는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저 분이 내가 견디기 힘든 통증은 주지 않을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집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것은 뭐든지 사라진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의 고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관찰하니까 굉장히 놀라운 효과가 있었어요. 고통이 싹 없어지더라고요. 마치 먹구름이 꽉 끼었다가 바람이 부니까 그냥 없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신기한 것은 신체적인 통증은 줄어드는 데 반하여 마음의 고통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습니다.
통증이든 가려움증이든 과거의 경험이 부가되어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그것으로 힘들었던 기억과 현재의 감정적 반응이 부과되어 통증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현상만 보면 과거의 영향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힘든 것만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생화학적으로 면밀히 보면 통증이나 가려움을 느낄 때 어떤 물질이 분비되는데 그 물질이 계속 분비될 수 없어요. 분비되었다가 잠시 쉬었다가 분비되는데, 그 쉬는 휴식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래서 힘들지 않게 느낍니다.
그에 비해 ‘마음의 고통은 왜 깨끗이 없어지냐’를 보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의 속성은 언제나 어느 대상에 가 있고 한 순간에 한 대상에만 가 있을 수 있어요. 마음이 여기에 가 있으면 저기는 못 갑니다. 마음이 만약 괴로움을 느끼는 쪽에 가 있으면 괴로움만 느끼고 다른 쪽에 가면 이 쪽은 스톱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깨끗하게 없어질 수 있어요. 마음은 그런 속성 때문에 몸보다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어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