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현장]경북 경주군 복두암

겨레혼 담긴 기도도량 부산성 복두암

2009-03-31     사기순

  처처(處處)가 극락국이라고 하지만 사는 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마음은 늘상 가벼운 흥분과 크나큰 즐거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목적지가 절(寺)일 때는 법열(法悅)까지 보태진다.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생불(生佛)을 배출하는 도량, 금방이라도 우리네 삶의 고통이 사라지고 절대적 행복을 약속받을 것만 같은 산사(山寺)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그렇게 복두암을 찾았다. 희뿌연 서울의 새벽공기를 가르고 출발한 취재차는 한낮이 넘도록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여섯 시간 가량 지나 경주군 건천읍에 닿았다. 전형적인 농가의 돌담에 떨어지는 햇살을 보며 시골길을 10여분 달려 1차 목적지인 선암사에 도착한 취재팀은 지팡이를 한 개씩 선사받은 뒤 복두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경북 경주군 건천읍 송선1리, 부산[(富山),일명 복수산(福壽山)] 부산성(釜山城)에 자리접은 복두암에 오르는 30여분의 산행은 아주 값진 것이었다.

  옛 선인들의 숨결소리가 도처에 흐르고 있었다. 이미 천삼백년 전에 만들어진 좁다란 산길, 그 숱한 세월 속에서 신심있는 선남선녀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수도 없이 기원했을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관세음 보살, 나무 미륵보살, 나무 아미타불·····, 그 음성을 들으며 산길을 오르노라니 힘든 줄도 몰랐다. 기암괴석과 숨어있는 계곡의 이음새를 발견하곤 여지없이 흘러 나오는 감탄사. '세상에, 관세음보살' 산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복두암 오르는 길엔 웬 이야깃거리가 그리도 많은지···  천상의 8선녀가 매일 내려와서 복두암 용정에서 목욕을 하고 놀았다는 선녀바위(선인대) 는 흔들흔들 흔들려 흔들바위라고도 한다. 복두암에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은 일단 그바위에서 속세의 번뇌를 다 털어버리고 와야 한단다. 예전에 복두암에 주석했던 노장 스님은 신도를 흔들바위에 올려놓고 바위를 흔들면서 "번뇌가 있느냐? 없느냐?" 호통을 쳐서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한 신도에게만 경내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고, 그런 절차를 거친 신도는 반드시 기도를 성취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기자도 예의절차를 엄숙하게 치뤄보았다. 마음의 때를 씻는 것은 뒷전에 두고 덩실덩실 구름을 타고 떠가는 느낌에 마치 선녀라도 된 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복두암에 도착하니 불사가 한창이었다. 끝내 법명을 밝히지 않으시는 주지 스님은 복두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복두암은 부산성 축성 이전부터 창건되었다는 설과 부산성 축성과 동시에 호국적 측면에서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지요. 부산성 축성 년대가 신라 문무왕 3년(불기 1205년, 서기663년)이니 대략 추산해보더라도 천삼백여년전에 건립된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산허리를 두르듯 석축(石築)을 쌓아 경주를 방비할 요새지 및 화랑의 조련장(調練場)으로 사용하기 위해 축성된 부산성안의 복두암은 주변에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고 신비한 전설과 영험담을 지니고 있다.

  김유신 장군이 기도하여 신력(神力)을 얻었다는 장군바위, 김유신 장군이 기도후 명마(적토마)가 나타나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와 말등에 오르니, 복두암 옆 중엄암에서 높이 뛰어 장군 바위를 건너 계곡 아래 능마능에 내려서 말안장을 수리하고, 다시 높이 뛰어 올라 현재까지 말발굽 형상이 남아있는 중엄암 능마, 김유신 장군이 기도후 신력을 얻어 칼로 내리쳐 갈라진 단석, 배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배바위는 마치 번뇌의 세계에서 열반의 세계로 실어다주는 반야용선인 듯 싶었다. 그 밖에 흔들바위, 고추바위, 용정 등에 얽힌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복두암은 이렇듯 김유신 장군이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신력을 얻은 기도도량이며 신라 화랑들의 정신적  귀의처였고, 이 곳은 사찰명도 복두[복의 머리, 장원 급제하여 임금을 알현할 때의 어사화가 꽂힌 관(冠)을 머리에 쓰는 꽃중의 꽃 보화(寶華, 뛰어나고 존귀한 꽃)를 머리에 꽂는다. 손에 쥔다는 등]의 뜻을 내포한 때문인지 복두암에서 기도하여 공덕을 입은 신도들의 말에 의하면 특히 승진과 진학, 신(神)을 잡는데 영험이 많다한다.

  전(前)이 모(某)장군도 이 곳에서 기도하여 소원을 이뤘고 그 밖에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진급을 위해 이 도량을 찾았다고 공양주 보살님이 귀띔해주었다.

  좌청룡 우백호가 내외로 겹쳐 있고 산앞으로 물이 흐르며 사람으로 치면 심장 부위에 자리하고 있는 복두암은 얼핏 보기에도 상서로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장군이 태어날 자리, 도인이 탄생할 자리라는 명당설로 말미암아 복두암은 폐사가 된 적도 많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도인이 출몰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왜적들의 손에 의해서, 이조 때는 유생(儒生)들에 의해서, 일제때는 일인들에 의해서 마구 훼손을 당했던 복두암은 기록에 의하면 1937년 중창(重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하루에 3천명의 신도들이 운집할 정도의 대찰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7년전 사월 초파일 화재로 인해서 대웅전과 국보급 목불상이 소실되었어요. 그 이후로 7년 동안 주석하는 스님이 없었어요. 불보살님은 영원한 깨달음과 구원의 빛을 발하시고 신도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님네 없는 도량은 썰렁하기 그지 없더군요."

  옛 선인들이 산세 좋은 곳에 사찰을 짓고 신앙을 모아온 기도도량의 스러져가는 모습이 가슴 아파 큰 절 주지 소임 마다하고 지나던 길에 눌러 앉게 되었다고 주지스님은 말씀하신다.

  때마침 자리를 같이 하고 있던 윤원거사는 복두암을 새롭게 일구고 계시는 주지 스님과 복두암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 요사채 좌측 절벽에 삼존불과 16나한이 모셔져 있어요. 삼존불 불두(佛頭)위에는 바위에서 물이 나와 90센치 정도 흐르고 있는데 이 세줄의 물은 삼불(三佛)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도량은 자시(子時)에서 묘시(卯時) 사이에 특히 기도가 잘 되는데 그 때 보면 영락없이 삼존불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하게도 여기 스님의 뒷머리를 보십시오. 똑 같습니다. 삼존불 위 물흐름과 같은 형상으로 내천(川)자 모양이 나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스님 뒷머리의 머리카락이 모여 생긴 천(川)자가 날 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절에서 기도 정진하고 나서 생긴 것이랍니다."

  윤 거사의 말을 듣고 재차 확인하면서 신앙의 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신력이 있음을 또 한번 실감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복두암에 주석하게 된 스님은 맨처음 부처님 뫼실 법당 불사 원력부터 세웠다. 부처님 도량에 대웅전이 없다는 것이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소실된 법당을 우뚝 재현해내기 위해 삼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터를 닦고 있는 인부들의 신심있는 구슬땀과 불사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스님의 용맹정진으로 부처님께서 안주할 깨달음의 집[대웅전]이 곧 피어날 기세다.

  "저는 심장협심증 환자였는데 복두암서 기도하고 난 뒤 제 병을 고쳤습니다. 공기도 말고 해발 600고지에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요양했기 때문이라고 의학적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직 한마음을 다해 염불하고 절한 공덕으로, 병이 나았다고 믿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전 몸도 나았지만, 늘 흔들리고 어두었던 제 마음이 밝고 환하게 되었어요.부처님 은혜갚는 불사가 있다기에 만사 제쳐두고 달려왔습니다."하고 말하는 대전 보살님등 신심있는 신도들의 정성은 스님의 법당불사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복두암에는 나반 존자와 산왕 대신을 모신 산영각(山靈閣) 좌측 절벽의 삼존불과 16나한, 가뭄이나 홍수에도 늘 변함없는 양의 물이 샘솟고 있는 용정이 있다. 한편 스리랑카 수상이 우리나라에 상호국익적 측면에서 기증한 석가모니 진신사리 1과가 복장되어 있는 관세음보살상은 복두암의 큰 자랑거리다.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법당불사만 원만히 회향되면 옛 가람의 면모가 되살아날 것이다.

  불사를 하시면서 가장 어려우신 점을 여쭙자 "길이 너무 험해서 불사를 더뎌지게 합니다. 장정 넷이서 35관 짜리 범종을 이틀 걸려 들고 올라 왔어요. 법당 불사를 위해선 길 불사부터 해야겠어요"하고 말하면서 허허 웃는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룰 수 있다는 천년 기도 성지 복두암이 법당 불사가 순조롭게 성취되길 빌며 복두암을 떠나왔다. 가파른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내려오는데 자꾸자꾸 생각나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었다. 스님의 마지막 말에 끄달려서인지 ·····

  "금생에 자가용 타고 편안하게 다니는 사람은 무슨 까닭인가? 전생에 다리를 놓고 길 닦은 공덕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