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청의 뿌리와 맥을 잇는 만봉 스님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2009-03-30     관리자

  가끔씩 하던 일을 멈추고 법당에 가 앉아 있다 보면 결코 외롭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이들의 마음을 이미 다 헤아려 다 알고 계신 듯 항상 하는 미소를 짓고 계시는 부처님을 뵐 수 있고, 또 으례히 부처님의 뒷면에 모셔진 탱화에 도설되어 있는 보살상과 호법신장상, 칠성, 산신 명부의 시왕(十王)에 이르기까지 금방 말을 걸면 대답하실 듯한 여러 존상들을 한꺼번에 만나 뵐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법당 기둥과 벽면, 천정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련되고 고운 선으로 그려진 불화(佛畵)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방 어디에선가 천음악(天音樂)이 울리고 단비가 내릴 것만 같은 환희에 젖어 들기도 한다.

  부처님 뒤에 모셔진 후불 탱화나 법당 벽면에 그려진 불화들, 그리고 천정의 서기에 어린 구름이나 천녀상 등이 어떤 대상을 묘사하거나 표출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주 전체상을 그대로 드러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기에 우주속에 함께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법당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원 건축물 외형에서도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가 있다. 청 · 황 ·적 · 백 · 흑의 5색으로 조화를 이룬 단청 문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선명하면서도 생동감을 느끼게 하기에 환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신성미마저도 준다.

  주로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채색을 써서 아름답게 문양을 베풀어 장엄하는 단청은 원래 건축물의 부식이나 충해를 막아 영구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쓰여 졌으며 건축물을 장엄하는데 쓰여졌다. 그러나 사찰의 단청은 단순한 장식과 부식과 충해를 막기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의 우주를 보며 우리의 이상세계를 본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축의 특색을 이루고 있는 사찰의 단청. 그 뿌리와 맥을 이어온 금어(金魚) 만봉(萬奉스님은 1972년 8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丹靑匠)으로 첫지정되었다.(당시 통도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월주(月州)스님과 금산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일섭(日涉) 스님도 단청 분야에 인간 문화재가 되었으며, 일섭스님은 타계하셨다).

  올해 81세가 된 스님은 6세때 출가 입문하여 서울 봉원사에서 만봉이란 법명을 받고 8세 때 예운(藝雲)스님의 제자가 되어 붓을 들어 9천여장의 어려운 그림수업을 거쳐 18세에 비로소 '금어(金魚)'의 칭호를 받았다. (금어란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님을 일컫는 호칭으로 시왕초(十王草) · 천왕초(天王草) ·  여래초(如來草) 등 9천장의 불화를 그리는 과정을 수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며, 약 10여년의 작업과정을 마치면 10단계 단청작업의 채공(彩工)들을 지휘하는 일을 한다).

  그 후 스님은 금강산 표훈사(表訓寺), 유점사(楡岾寺) 사연불(詞衍佛), 서울의 봉원사, 봉은사, 천축사, 보문사, 공주 마곡사, 전남 선암사, 안동 봉정사 등의 전국 명찰과 남대문과 경복궁 육각정, 경회루, 종로 보신각 등 국보 보물의 단청공사를 해왔다.

  한평생을 한가지 일에만 몰두해온 스님은 아직도 혼신의 힘을 다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봉원사 밑 사하촌(寺下村)에서 '만봉화실'을 운영, 후진양성도 계속하고 있다.

  "그림을 가르치다 보면 확실히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에 소질이 개발되게 돼요. 무슨 일이든 길게 잡고 해야 해요. 그래야 좋은 결과가 오는 법이지오."

  단청을 제대로 다 배우려면 적어도 10년을 해야 되는데 처음에 시왕초(十王草)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2~3천장은 그려야 되고 그 필력으로 점점 선이 복잡해지는 천왕초(天王草), 보살초(菩薩草)까지 마치면 자연히 단청기능도 자동적으로 익혀지게 마련이라고 한다. 단청을 시작할 때에도 처음에는 스승이 지도하는대로 노랑칠을 하라면 노랑칠을 하고 파랑칠을 하라고 하면 파랑을 칠하는데 노랑을 맡은 사람은 노랑만 파랑색은 파랑색만 찾아다니면서 메꾸는 일부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단청일을 익히는 것은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한가지 손끝으로 익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사람이 제 몫을 하려면 적어도 10년은 한가지에 몰두해야 해요. 단시일내에 무언가 결과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해요. 여기 화실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림을 배우고자 하지만 몇년씩 계속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안되지요."

  관음상과 세필(細筆) 탱화제작에 두각을 나타내 전승대공예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박정자씨, 그리고 둘째 아들과 미국인으로 올해 5년째 시왕초를 그리고 있는 브라이언 베리씨가 꾸준히 그림에 몰두하고 있어 흐뭇하다고.

  지난 해에는 경복궁내에 있는 전통공예관에서 단청전(1989년 12월 20일 ~1990년 2월 5일까지 47일간)을 열었다. 이 전시회는 원래 계획했던 전시 날짜보다 1주일을 연기할 정도로 많은 관람객들이 모였다. 그 때 전시된 탱화부분과 단청문양을 본 이들은 스님의 작품을 이렇게 말한다.

  "스님의 단청초는 매우 세련되고 신앙의 경지로 승화되었으며, 천정의 반자초에 사용되었던 파련화(波蓮華)는 보상당초문에서 보이는 섬세하면서도 날씬한 꽃가지가 규칙적으로 휘어감기는 자연스러운 필치로 살아움직이는듯 생동감이 있다.그리고 황룡도나 봉황도에 피어오르는 오색 운문은 화면에 안정감을 주면서도 유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특히 대들보에 사용되는 기하학 무늬에 가까운 연결 금문은 매우 규칙적인 선과 채색으로 도안화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등등.

  70년 이상의 외길 집념으로 '우리의 것'을 전승보전하는 일에 쏟은 스님의 열정은 남달랐다. 남대문 보수공사 때에 입찰이야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남대문 보수 단청을 하기 위해 문화재 관리국에서 전국에 있는 유명한 단청장(丹靑匠)들을 모집했던 적이 있었다. 단청을 해보겠다는 단청장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자 이들을 선별하고 입찰을 하게 되었는데, 만봉 스님은 '저 일은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내 일'이라는 생각에 입찰가 1원에 그 공사를 맡겠노라고 하므로써 남대문 단청공사를 성공리에 마쳤다는 얘기다.

  한겨울에도 반팔 런닝셔츠만 입고 작업에 몰두할 정도로 정열적이며 작품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스님은 전생에도 역시 불화를 그렸던 것 같다고 한다. 현생에 하는 일을 보면 전생에 한 일을 알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을 봐서 내생에도 불화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신의 익혔던 습성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대 독자였던 스님이 절에 입문하게 된 것은 여섯살이 되던 해였다고 한다. 짧은 명을 잇기 위해 부처님전에 바쳐진 스님은 탱화와 단청으로 부처님전을 장엄하는데 한평생을 바쳐왔다. 그리고 내생에도 그 일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정신이 산란해서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한다. 여러 불보살님들이 계시는 불화를 그리다 보면 문득 불보살님전에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열락에 젖어든다고 말씀하시며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웃음을 지으시는 만봉 스님 모습 속에서  또 한 분의 부처님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