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손

이남덕 칼럼

2009-03-30     관리자

  한국이 불교도 중 특히 여자 신도들은 무슨 복으로 '보살'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황송한 일이다. 나를 누가 '노보살님'이라고 불러줄 때처럼 고맙고 다정하게 느껴질 때는 없다. 여성 불자들을 '보살'이라 부르는 곳은 아마 우리나라 말고는 같은 불교권이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없는줄로 안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여자 신도를 '보살'칭호로 부르게 되었을까.

  '보살'은 보리살타(菩提薩唾 bodhi-sattva)의 준말이라 하고,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같은 소승의 성자보다 높은 대승(大乘)의 수행자를 의미한다 하니,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으로 일관되었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 불교 구경의 목표인 무상 보리를 구하는 최상의 구도자의 명칭이 왜 우리들 여성에게 주어졌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한국여성의 어떤 특성이 보살 칭호를 불러온 것일까. 우리가 불상을 볼 때, 부처님상은 아무런 장식품도 없이 단순한 차림새에 좌상이나 입상(立像)이 단정한데 비하여, 보살상은 머리와 몸, 온몸에 아름다운 장신구로 치장하고, 앉거나 서있거나 나부끼는 듯한 몸매인 것이 특징이다. 한국여성들이 이 보살의 아름다움을 이웃나라 여성들보다 더 많이 닮았기때문에 '보살' 칭호를 얻은 것일까? 설마. 글쎄다. 아닐 것이다.

  아니면 그 구도정신이 특출하기 때문일까. 보살은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을 목표로, 자기 혼자만의 구제에 그치지 않고, 몇 생을 되풀이 해서라도 중생구제를 서원하는 대승적 구도자다. 나는 한국여성의 생명을 향한 기원력에는 뛰어난 힘이 있다고 믿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한 가정의 역사를 보거나 민족 전체의 역사를 볼 때 우리의 삶 전체를 지탱해 온 여성들의 노고와 공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역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남성의 힘은 제 일선에서 꺾이고 우리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로울 때 여성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식구들을 건사하고 나라를 지켰던 것이니, 유독 민족의 수난이 많았던 우리의 역사속에서 여성을 보살로 표현했다함은 수긍이 가는 얘기다.

  나는 가끔 내 주변에서 보살의 화신과 같은 여성을 만날 때 마음속으로부터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특히 그들의 손놀림에 대해서 각별히 관심이 간다. 그들의 손은 한시도 쉬지않고 무엇인가 남을 위해 움직인다. 먹을 것을 장만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손. 밭을 매는 손. 빨래하는 손. 요즘 애들은 콧물도 안흘리지만 옛날 아이들 코 밑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 그랬던지 노상 우는 아이들 뿐이었다. 어머니의 맨손은 눈물 닦아 주고 콧물 훔쳐주기 바빴었다.

  나는 지금 나를 스치고 지나간 어머니, 할머니, 시누님들, 전통사회의 모든 여성들의 손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맡겨져 있었다. 길쌈하고, 바느질하고, 그리고 아이들 탈이 나면 '할머니 손이 약손이다' 치료하는 손이요. 절대절명한 곤경에 빠졌을 때는 신불(神佛)에게 기원하는 '비손질'도 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어도 보살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며칠 전 일이다.

  장마가 갠 다음날 아직도 계곡물은 철철철 넘치는 오전중에 제자가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놀러왔었다. 두 아들이 다 대학에 진학했으니 이제 한숨 돌리게 된 셈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죽을 고비를 넘긴 제자다. 몇해 전에 직장암(直腸癌)수술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하였으니 가히 두번 사는 삶이다. 그에게서 병 회복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이번에 들을 수 있었다.

  암수술을 받고 나서 그녀는 앞이 캄캄했다. 아이들은 어린데, 육남매 집안의 맏며느리인 그녀는 시부모 · 형제들에 대한 책임감도 그러려니와 그동안 다섯 시동생 학교 뒤바라지에 모두 장가들여 이제 좀 살만하게 되어 죽는다 생각하니 너무도 원통했을 것이다. 수술 후 몇달동안 암담하게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활원(活元)운동을 하는 분을 만나 운동을 하러 다니게 되었다. 활원운동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면 우주공간에 꽉차 있는 천지 기운을 온몸에 받아들여 손끝에서 부터 진동상태가 오면 그 기운으로 환자 스스로 자신의 환부를 다스리는 것이다.물론 처음에는 지도자가 그러한 진동상태로 들어가는 인도를 해 준다. 참선이나 단전호흡 때와 한가지로 결가부좌로 앉은 다음 두손은 양쪽 무릎위에 손바닥을 위로하여 가볍게 얹어놓고 마음을 완전히 비우면 이윽고 손끝에서 진동(振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자기라는 의식이 없는 상태. 참선에서 입정(入定)상태가 오는 것도 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무아(無我)상태가 아니고는 되지 않는 이치와 활원운동의 원리와는 기본적으로 같다고 하겠다. 그녀는 이런 진동상태에서 자신의 가슴을 멍이 들기까지 치고 종당에는 한없이 눈물을 흘린뒤에 가슴의 응어리가 풀렸다고 한다. 무슨 한이 그렇게도 맺혔던지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몇시간을 계속해서 끊이지 않더라고 했다.

  그 후 그녀는 새로운 기운으로  자신의 건강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활원운동으로 옆에 사람들의 병고를 덜어주고 치유케 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녀의 손은 '약손'이 된 것이다. 그 날 숲속을 거닐다가 큰 잣나무 앞에서 그녀는 나무와 인간과 한 생명임을 교감(交感)하는 이치를 설명했을 때 나는 감동을 느꼈다.

  한 나무 한 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한 생명임을 몸으로써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보살의 체질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살의 마음은 다른 존재와 한 마음으로 통한다. 보살의 손은 우주의 기운이 전달되는 파이프의 구실을 한다. 내가 보아온 무수한 어머니의 손들은 모두가 보살의 손이었다 보살의 손은 모든 것을 살리는 손이다.

  어린 아이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 났을 때, 아직 눈도 채 뜨지 않은 상태에서 맨 처음 보일 듯 말 듯하는 동작이 손끝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동작이다. 그 때 맨 처음으로 그에게 잡히는 것이 어머니의 손(손가락)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생명의 줄처럼 꼭 붙잡는다. 갖난아이에게 있어서 그 꼭잡힌 어머니의 엄지 손가락은 우주 전부일 것이다.

  한국여성이 왜 '보살'의 이름을 받게 되었느냐. 그 자색이 보살상처럼 아름다워서도 아니요, 재주가 뛰어나서도 아니다. 그 모성때문이다. 어느 나라 어머니들이라도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지극한 중에서도 지극한 것이 한국의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이라고 믿는다. 어머니와 자식을 연결하는 생명의 손이 그 어느 나라 모자의 손보다 단단하게 묶여져 있다는 말이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어머니의 손을 잃었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을 더욱 감사한다. 특히 한국여성이 되어서 '보살'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 황송하며, '진짜 보살'이 되는 예비 단계로 어머니가 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제 남은 여생, 이 손이 '보살의 손'으로 쓰여지기를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