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불교강좌] 니르바나의 경지는 실재하는가

청소년 불교강좌

2009-03-28     관리자

선생님, 「우리의 고통과 죽음은 우리들 자신의 무지(無知)와 애착(愛着)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말씀에 새삼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었읍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과 고통이란 절대로 모면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다. 설령 영혼이 있어 신의 구원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죽음 다음에나 가능한 것, 그런 까닭에 그러한 구권이란 참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저희들은 대개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는 잠재적인 공포 의식과 불확실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읍니다.

  그런데, 「우리의 죽음은 무지(無知), 무명(無明)에서 비롯된다」라는 사성제의 설법은 저희들의 오랜 잠재의식을 뒤흔들어 놓고, 무엇인가 불투명하지만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잘 생각했읍니다. 바로 그것이 부처님께서 선포하신 사성제 법륜(四聖諸法輪) 의 위대한 힘의 전조(前兆)입니다. 우리가 좀더 열심히 공부하고 깊이 명상해 가면, 저 거룩한 사성제 법륜은 마침내 우리들의 모든 생각과 느낌과 잠재의식을 바꿔 놓을 것이다, 우리들의 모든 일상 생활을 바꿔 놓을 것이며, 필경 우리들의 죽음마저도 바꿔 놓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고멸성제(苦滅聖諸), 곧 멸(滅)의 진리(諸), 멸제(滅諸) 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기쁨과 희망에 넘치는 세존의 게송을 경청하고 있읍니다.

 「사제(四諸)」의 법문이 여기 있으나 이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면 생사(生死)속에서 돌고 돌면서 마침내 해탈을 얻지 못하리

이와 같이 사제의 이치를 깨닫고 또 그것을 밝게 알아서 생사의 근본을 끊어 버리면 다시는 윤회를 받지 않으리」 〈잠아함경, 권 15〉

  선생님, 사제(四제) 가운데에서 고제(苦)와 집제(集)는 이미 공부했읍니다만, 위에 말씀하신 고멸성제(苦滅聖제), 곧 고제(苦)란 무엇입니까?

  다시 세존의 법문에 귀 기울여 봅시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苦滅盡)의 성제이니라. 마땅히 들어라. 이 애착(愛着)을 남김 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나고, 벗어나 아무 집착도 없는 것에 이르는 것이 그것이니라.」 〈여래소설경〉

  멸(滅), 멸진(滅盡)이라 하셨는데, 무엇이 멸(滅)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남김 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나고, 벗어나는 것이 대체 어떤 상태입니까?

  선재, 선재, 아주 잘 물었읍니다. 멸, 멸진(滅盡)이란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느낌을 주기 쉽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가, 「불교는 허무의 종교다, 염세 주의다.」「 다 사라지고, 버리고, 떠나간다면, 이 세상살이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고요히 해서, 멸제(滅제)의 문을 경청해 보면, 멸제는 허무가 아니라 도리어 충실(忠實)이며, 멸제는 염세가 아니라 도리어 크나큰 사랑이며, 멸제는 부정이 아니라 도리어 적극적인 긍정이며, 멸제는 소멸이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성취며, 성취의 희망인 줄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때문입니까?

  선재, 멸제의 법문에서, 이것이 무엇의 멸진이라고 하셨읍니까?

  「고(苦)의 멸진이라」 하셨읍니까?

  「무엇을 남김 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난다고」 하셨읍니까?

  옳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애착(愛着)을 멸한다는 것은 그 애착을 불러 일으키는 우리들 자신의 무지(無知,無明)와, 그 무지에서 파생하는 번뇌, 어두운 생각들을 모두 버린다는 것입니다.

  저기 니르바나의 언덕이

  그러시다면, 「멸(滅)한다, 버린다, 떠난다, 벗어난다」라는 말씀은 우리의 고통과 죽음의 근원인 무지와 번뇌를 뿌리 뽑고, 시시각각 우리를 압도해 오는 온갖 형태의 고뇌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뜻이 아닙니까?

  아, 선재의 눈이 이제 비로소 빛나군요. 우리는 고제(苦제)에서 고뇌와 고통으로 방황하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였고, 집제(集제)에서 이 고뇌와 죽음의 원인이 우리들 자신의 무지(無知)와 번뇌(煩惱)와 애착(愛着)임을 통찰해 보았읍니다. 병의 원인을 진단한 의사가 날카로운 수술도를 잡아서 환자의 병 응어리를 잘라내듯, 이제 우리들이 우리 병의 근본인 무지와 번뇌와 애착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과정이 아닙니까.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첫 머리인 무명(無明)의 응어리를 뽑아 버릴 때, 양말의 한 코가 풀리면 마침내 양말 전체가 풀리듯, 나와 당신의 어리석음[惑]과 어두운 행위[業]는 소멸되, 생사의 고통과 슬픔[苦]이 또한 흔적 없이 풀리고 맙니다. 선재, 생사의 고통과 슬픔이 풀린 상태가 어떠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죽음의 공포가 사라진 상태,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며, 진정한 기쁨이 아니겠읍니까.

  옳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기쁨, 우리는 이러한 경지를 찬탄하여, 「니르바나(Nirvana, 涅槃)」라고 부르거니와, 사성제의 멸제란 필경 나와 당신에게 저 찬란한 니르바나의 언덕을 열어 보이는 크나큰 희망의 선언인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부지런히 수행하여 너희 자신의 무지와 번뇌와 애착의 뿌리를 뽑아 버려라. 바로 그곳에 만류가 갈망해 마지 않는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기쁨과 영원한 생명의 언덕, 니르바나의 언덕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바로 이것이 세존께서 사슴 동산에서 선포하신 사성제, 멸제의 참뜻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