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연옥(煙獄)의 불길

빛의샘/평화를 가꾼다

2009-03-27     관리자

  며칠째 쉼없이 쏟아지는 장마비를 바라보며 창 밖 하늘을 뒤덮은 어두운 구름들이 마음 속으로 흘러드는 듯한 망연한 느낌에 잠겨있을때, 옆자리의 동료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참 큰일이야, 우리야 괜찮지만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 ···어제 밤엔 또 산동네 축대가 무너져 여러 사람이 죽었다지."

  무심히 지나가는 듯한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저으기 놀랐고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나는 출퇴근길의 지옥 같은 만원버스나 시골집의 농사를 걱정하고 있었을 뿐, 이 장마비가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곧 절망의 늪이며 헤어나지 못할 깊은 수렁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이 장마비 뿐이랴.

  누구나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고, 슬픔에 잠기거나 기쁨에 환호하지만 그것은 또 대부분 '자기'라는 개인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말은 이제 효용을 잃었고, 어떤 비극이나 불행, 행복이나 평화 같은 것들도 많은 사람이 나누어 갖는게 아니라 다만 한 개인이나 일부계층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비감한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이미 옆집 아이가 밤새도록 문 두드리며 한 겨울 찬 바람에 얼어죽어도 모르는, 모른체 하는, 거대한 공동(空洞)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중국 연변을 다녀온 이로부터 그 곳 동포들의 생활이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가난하지만 사람살이의 따뜻한 정(情)과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그이는 한달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길을 하나 물어도 한결같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사람들을 보고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덜고 궁핍하게 살더라도, 이런 곳에서 살고싶다"는 강렬한 유혹마저 느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여행 중에 느낀 단순한 감상이라고 쉽게 넘길 수도 있겠으나, 아직 물질문명의 어두운 그늘에 잠기지 않고 자연과 친화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 속에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가슴 찡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물론 우리가 다시 긴 동지 밤 인절미와 동치미를 나누어 먹는다는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고, 설사 돌아간다해도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것을 온전히 가질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변동포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뒤틀리고 조작된 거짓욕망 속에서, 또 아무런 반성없이 살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는 있다.

  그렇다. 바로 이 깨달음과 반성속에 우리는 황폐한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평화를 싹 틔우고 꽃 피울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멀리 있지가 않다.

  한밤중에 문득 깨어나 자기가 얼마나 하잘 것 없으며, 이 지상의 삶과 욕망이 미소로운 것인가를 느낄때, 혹은 비탈진 언덕에 푸른 그늘을 드리운 나무나, 먹이를 굴리며 기어가는 벌레 같은 것의 겁많은 눈길 속에 세상살이에 비틀리고 상처 많은 자기의 모습을 볼 때, 더할 수 없는 고통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겸허한 마음 속에 평화는 싹이 틀 것이다. 그리고 퇴근 후 동료의 불행을 함께 걱정하고 위로하는 술자리에서, 비오는 날 낯선 이와 함께 받쳐쓰는 우산 속에서 평화는 조금씩 꽃 필것이다.

  비록 그것이 이 땅 위에 핵폭탄과 데모와 기아와 폭력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 거울처럼 비추어보고, 자기와 보이지않게 연결되어 있는 타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속에서 따뜻한 나눔과 안식과 평화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 연옥과 같다면, 평화는 그 정화(淨化)의 불길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