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미국 불교의 현황

2009-03-26     관리자

'93년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미국 뉴욕주 북부 지방 도시인 시라큐스에 있는 뉴욕 주립대학 캠퍼스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하여 '미국 속의 선(禪) 일백년'(100 Year of Zen in America)이란 학술회의 성격을 지닌 행사였다. 미 전역에서 모인 각양 각색의 1백 50여 명이 미국 속의 선 문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친교를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임의 가장 큰 의의는 불교가 미국에 선보인지 1백주년이 되었다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미국에 처음으로 불교가 소개된 것은 1893년의 일이다. 당시 시카고 세계 박람회의 일환으로 열렸던 세계 종교회의에 일본인 불교 학자, 승려들이 참석하여 예불을 올리고 참선 수행을 선보임으로써 기독교의 땅인 미국에 불교의 모습이 처음 보여졌던 것이다.

 1백주년이라면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한 세기가 흘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 날의 행사는 뉴욕의 작은도시 캠퍼스에 1백 50 명 정도가 모여 선과 윤리, 선과 자연 요법, 선과 예술, 선과 여성, 시 낭송, 서예강좌 등의 한가로운 프로그램으로 한 세기를 자축하는 정도에 그쳐야 했다.

 우리는 이 날의 행사에서 1백주년이 넘었다는 미국 불교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미국 내에서 동야사상 특히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얘기된다. 표면적으로 미국 내 동양계 인구가 늘고 있고 동양 사상에 대한 탐구열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일반인들의 관심은 아직 막연한 호기심의 정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직한 분석일 것이다.

 미국인 친구들은 내가 불교인이라고 하면 으레 참선 명상 또는 쿵푸 등 중국의 고유 무술을 떠올리곤 그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어떤 친구는 소림사 스님들의 격투기 자세를 흉내 내면서 당신도 당연히 잘 하겠지 하는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

 최초로 전해진 불교가 참선을 중심으로한 일본의 선종이었고 최근 홍코의 무술 영화가 미 전역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아무튼 요즘 미국인들은 그것이 구체적인 행동과 신앙으로 까지 발전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불교 등 동양사상에 대해 무언가 신비롭고 경이스럽게 생각하는 관심은 많이들 가지고 있다.

 최근 나는 올리버스톤 감독의 '하늘 과 땅'이란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월남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로 전쟁에 의해 갈갈이 찢긴 한 월남 여인의 반생을 주제로 다룬 영화였다.

 전쟁 등 여인의 애닯고 잔혹한 삶이 한 미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원된다. 그러나 그 구원의 기쁨은 잠시뿐, 구원이 또다른 고통으로 반전되고 그러나 마침내는 이를 극복한다. 다소 상투적인 스토리였지만 꽤 감명깊게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종래 미국의 월남 영화 대부분이 전쟁으로 찢겨진 미국인의 삶을 다뤘다면 이 영화는 다분히 월남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영화 속에 불교사상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었고 불교용어가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영화의 작가와 연출가는 불교철학의 일차적 기본인 업장(카르마)에 대해 일정 수준 이해하고 있었다.

 "원래 당신 영혼은 순수했지요. 그러나 전쟁의 카르마 때문에 거칠게 물들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런 일들을 해야 했을 겁니다. 어쩌면 나 역시 전생에 군인이었는지 모르죠. 그렇기에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던 내 업장도 지금 당신을 따뜻이 보호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소멸될 것 같군요. 우리 모두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지요."

 영화숙의 여 주인공은 괴로워 하는 미국인 남편에게 속삭인다. 이 영화는 이런 불교적 업장 논리를 미국인 관객에게 무리없이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본 이 영화의 장점이었다.

 올리버스톤이라면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톱클라스 젊은 영화 감독이다. 그의 관심은 다양하지만 최근들어 인간의 문제, 인성의 문제에 부쩍 관심을 쓰면서 동양사상에 매료되어 이번 '하늘과 땅'이 그 구체적 결과로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다.

 왜 미국인들은 불교에 관심을 쏟고 있을까?

 미국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지적으로 활발한 문화에 살고 있지만 그들 자신이 정신적으로 황폐하다고 느끼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 시기였던 60~70년대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이른바 히피문화를 창출해냈던 젊은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도 이 경향이 높아진 한 요인이기도 하다.

 물질만능주의, 끝없는 쾌락추구의 허망한 결과, 만연하는 마약, 거리를 횡행하는 총소리, 살인사건, 그칠 줄 모르는 반 인륜적 사건 사고들… 이런와중에 비집착, 비이기주의, 존재의 유한성, 인과응보 그리고 개인의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열반의 개념 등은 그들에게 매혹적인 것으로 다가서기에 충분한 것이다.

 미국의 전통적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본래 불교의 가르침이 현실도피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던 측면도 있기는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파 1백년이 넘은 오늘에도 내세울 만한 교세를 지니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의 비집착은 책임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을 직시하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서서히 알려지고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검증되면서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불교의 가치와 효용성에 대한 검증에 아시아 제국을 다녀온 미국인 학자, 언론인 종교인들의 역할이 일정부분 작용하고 있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 내에서 실제 불교적 신행 생활은 불교국가인 아시아 제국 출신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바른 분석일 것이다.

 미국 내에는 뉴욕에 본부를 둔 불교도 연합(The Buddhist Assosation of America) 캘리포니아의 불교도연맹(A.B.F), 불교학자회의 등 미국인이 중심이 된 여러 단체가 있지만 아직 그 활동은 활발하지 못하다. '94년판 미국연감(The Almanac of Amer-ica '94) 종교 통계편에 보면 미국의 불교는 미국 불교 교회(Buddhist Church of America)라는 표제로 교역자 65명, 교회 67개소, 신자수는 1만9천4백41명으로 나와 있다.

 검토해 본 결과 이는 일본의 정토진종의 미국 내 사찰만의 통계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다른 불교의 종파나 단체보다 정토진종이 교계 홍보에 관심을 쏟았기에 통계에 언급된 것으로 짐작된다.

 공식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미주불교의 현황은 다양하고 활발하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정토진종뿐만 아니라 전세계 불교 국가 및 종파가 저들 나름대로 불교를 전파하기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티베트 베트남 등 대승불교의 여러 종파와 더불어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 소승 불교권의 각 나라가 미국내 대도시 농촌등 각처에 사찰, 학교, 문화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미주 대륙 전체에 1백만 명 정도를 불교신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종교계의 분석이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이민 불자들에게 있어서 사찰은 단순한 신앙의 장소가 아니라 사회 활동의 장으로 사교의 공간, 이민 생활의 다양한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보의 공간, 2세들의 민족정신을 고양하고 자민족 배우자를 맞게 하는 만남의 광장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내의 불교는 이민 불자들의 고향과 같은 보금자리로서 기능 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역할과 새로운 정신세계를 찾는 미국인들에 대한 희망의 보루로 자리 잡아야 하는 적극적인 역할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확고한 기독교 국가인 이민의 나라 미국 속에서 창과 방패와 같은 이 양면성을 어떻게 적절히 조화 하느냐에 미국 불교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