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의 네가지 해석

2009-03-25     관리자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반연하여 항상 불변하는 진여법계가 즉 변을 떠난 중도인 일승무작이니라." 서로 융통무애하여 변견을 고집하지 아니하여 항상 변동이 없는 것이 진여법계이며 일승무작이라는 것입니다. 연기를 해석함에 있어서 네가지 연기(緣起)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생멸연기(生滅緣起) 이며, 둘째는 무량연기(無量緣起)이며, 셋째는 무생연기(無生緣起)이며 넷째는 무작연기(無作緣起)입니다.

 보통 학자나 스님네들은 아함경에 있는 이 12연기를 소승이라 하여 생멸연기로 해석했으나, 생멸연기로 해석하면 진여연기가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분명히 진여연기를 설하신 만큼 근본불교의 12인연은 생멸연기가 아니며 무작연기라ㅏ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근볹ㄱ으로 말씀하신 12인연법이란 진여, 중도인 생주법계이며 법계연기이면 서 중도일승인 것입니다.

 그럼 어째서 여태까지 12연기를 생사윤회하는 것으로 시간적 해석을 하게 되었나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학문이 발달하기 전에는 불교라고 하면 그냥 불교라는 것 뿐이었는데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불교도 역사적으로 보아서 근본불교, 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등으로 분단을 지어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근본불교란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살았던 당시의 불교를 말하는 것이며, 원시불교란 부처님제자들 이후 백여년 동안을 말하며, 그 뒤 각 부파가 나뉘어져 서로서로 이론적 논쟁을 하게된 시대를 부파불교라 합니다. 그 부파불교의 소산이 무엇이냐 하면 소승불교 입니다. 그 이후 소승불교가 거의 교단을 지배하게끔 되었는데 여기에 반하여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라고 합니다.

 대승불교는 용수보살이 기점이 되고 있는데 불멸 후 5~6백년경이 라고 보며 이것을 대승불교 운동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부처님이 근본이 되는 것인만큼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 당시의 불교가 중심이 되어야지 그 뒤로 내려오면서 불교의 근본 취지가 변질된 것이 있다면 그 변질된 것은 시정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법문해온 바와같이 근본경전에서 12연기법은 진여이며 법계이며 중도라고 하였는데 그럼 어떻게 해서 12연기법을 시간적인 생멸법으로 해석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시불교시대를 지나서 부파불교시대로 오면 서로서로 자기파의 변견을 고집하게 되는데, 한쪽에서는 부처님 근본교설을 해석할 때 없다는 견해에 치우치고 다른 쪽에서는 있다는 견해에 치우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있다는 견해에 치우친 세력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소승불교가 된 것 입니다. 있다는 견해에 치우친 것이란'일체의 모든것에는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실체가 있으므로 고정적으로 생사윤회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연기란 근본에 있어서 서로 의지하여서 화합한다는 것인데 실체가 있어서 자기 아집을 고집하게 되면 연기가 성립하지 못 합니다. 때문에 연기란 것은 무아가 근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파불교에서는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양변을 여읜 중도사상을 모르고 변견에 떨어져 '실체는 있다'는 견해를 고집하여 생사윤회하는 근본법적으로 12연기를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해석이 최초에 어디서 나왔나 하면 가전연이 지은[발지론(發支論)]에서 12연기를 해석할 때 삼세양중인과설로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난뒤 오백나한들이 모여서 가전연존자가 지은 발지론에 대한 주석 해석서로서 [대비파사론(大毘婆沙論)]100여권을 지었는데 거기서도 삼세양중인과설을 채택하여 생멸법으로서 12인연을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구사론(具舍論)등 유부의 소승불교 전체가 12인연의 해석이 근본불교와는 다르게 변조되었던 것입니다.

 그 뒤에 용수보살이 나와서 유부(有部)의 변경, 즉 생멸적인 변견으로 부처님 근본불교를 잘못 알고 있으므로 [중론(中論)]을 지어서 중도를 근본적으로 선양하고 [대지도론(大지智度論)])에서도 중도사상을 가지고 근본불교를 회복시키려고 복구운동을 일으킨 것이 소위 대승불교운동 입니다 간략하지만 이렇게 설명하면 연기설이 어떻게 해서 유부적인 소승의 생멸적 견해로 해석하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과정을 대강 짐작할 줄 압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불교계 실정을 보면 12인연설을 생멸적인 소승유부적인 해석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가르치게 되면 부처님의 근본 뜻은 즉 법계연기, 진여연기인 중도의 12인연의 뜻은 영원히 모르게 됩니다. 지금 세게 어느 학자든지간에 좀 상식있는 사람이라면 12연기를 생면적 시간적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읷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태의여나게 생멸적인  소승유부적인 해석을 고집하게 되면 이 사람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동시에 부처님의 근본 뜻을 영원히 모르게 되고 맙니다.

  부처님 근본불교에 있는 중도사상. 연기사상. 진여법계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화엄법계 연기사상 입니다. 흔히 보면 화엄사상이라는 것은 부처님 뒤에 자꾸자꾸 이론이 발전되어 이루어진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부처님 근본 뜻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부처님이 근본불교에서 설한 연기설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것이 화엄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종도 똑 같습니다.. 화엄법계 연기가 부처님의 진여법계연기 이론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것이고 선종은 실천문에 있어서 진여자성을 확철히 깨쳐서 진여법계를 친증(親證)한다는 것입니다. 중도를 정등각하고 진여법계를 증득하여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내려온 것이 선종입니다. 선종도 흔히 뒤에 중국에서 발달되었다고 보는데 그것은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선종이란 부처님의 중도 즉 법계연기.. 진여법계를 돈중(頓證)한 것이며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