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이 음식이 어디서 왔을고

2007-03-05     관리자

이 음식이 어디서 왔을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불심이 보잘것 없어서 그렇겠지만 나는 아직 반야심경을 봉독할 때 틀리거나 놓친다. 아내는 예불을 할 때 거의 다(?) 줄줄 외는데 나는 부처님 말씀을 머리에 넣고 있는 것이 별반 없다. 외야 하겠다는 절박함도 없고 또 예불 때 그냥 책을 보고 봉독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단단한 마음이 하나 있다. 부처님 말씀 가운데 ‘한 말씀’만이라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한다면 괜찮은 불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대단히 불경(不敬)스러운 생각이겠지만 금강경을 달달 왼다 한들 새기고 실천함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포근한 등에 업혀 부처님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는데 나를 업고 절에 가신 어머니도 아마 부처님 전에 공양미 놓고 합장하고 복이나 비셨을 것이다. 평생 부처님전에 기도하신 어머니가 독경하는 모습을 뵌 적이 없으니까. 어렵던 시절에도 아끼고 모은 공양미를 부처님께 올리실 뿐 부처님 말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시고 어머니는 그냥 절간에 다니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부처님의 생애를 알고 부처님의 말씀을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 그 말씀의 심오함을 모두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많이 아는 것보다 몇 말씀이라도, 아니 한 말씀이라도 새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오늘 그러한 내 생각의 단면을 보여 줄 ‘내가 좋아하는 내 마음의 법구’를 소개한다면 공양 때마다‘오관게’를 보고 (때로는 혼자 읽고) 느끼며 공양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집(산골집) 식탁 내 자리에서 바라보는 정면 창 높은 구석에는 내 글씨로 쓴 오관게가 붙어 있다.

잘 보이는 곳이 아니라‘높은 구석’에 붙였는가 하면, 필법에도 어긋나는 글씨이거니와 가끔 불자가 아닌 손님과 공양을 하다가 그 오관게를 읽고 마치‘악식도 고맙게 생각하고 조금만 먹으라’는 말처럼 보일까봐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을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도업’은‘올바로 살겠다’는 의미 정도면 족할 것이다. 말하자면 과탐하지 않는 마음을 담은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이다. 내가 이‘오관게’를 처음 접한 것은 단기 출가 수련을 할 때였다. 오관게를 독송한 후 공양을 하면서 나는 새삼 그 소박한 음식이 소중했고, 그동안 얼마나 필요 이상의 음식을 탐하며 살았는지 반성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음식점에서 남들과 회식할 경우를 빼고는 남김없이 깨끗이 먹는 바루공양을 실천하고 오관게를 되뇌인다. 남들 앞에서는 유난떤다는 소리 들을까봐 삼간다. 기름지지 않지만 오직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오관게’를 실천하는 것만으로 나는 불자임이 행복할 때가 많다.

그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 한번은 해외출장 가는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 비빔밥 그릇을 하얗게 씻은 듯 비웠더니 여승무원이 신기한 듯 낄낄거리며 식판을 들고 가는 것을 본적이 있다. 앗, 실수!

반야심경 봉독에는 자주 걸리고 깜박깜박해도 나는 불자로서 오관게에 담긴 뜻을 새기고 실천하는 것으로 불자의 길을 행복하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