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생각하는 불교

빛의샘· 새날 새아침에

2009-03-20     관리자

부처님께서는 어느날 강을 건너는 나룻배 위에서 강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은 강물과 같이 흐르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흐르는 강물을 인간의 삶에 비유하신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운명이 달려가는 필연적인 코스를 이미 모두 바라보고 게셨던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애절하고 스산한 숙업에 오염되지 않는 것이시간이다. 인간이 끝내 정복할 수 없는 것들 가운데 하나인 시간은 그 도도하고 비정한 표정으로 인간의 모든 악덕과 불결을 정화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인간의 숙업은 정화되지 않는다. 진정한 새해는 시간이 흘러서 묵은 한 해가 새로운 한 해로 바뀌어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새해일 뿐이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진정한 새해는 시간의 흐름에 의한 새해보다도 우리의 자성청정심이 맞이하는 새해인 것이다. 우리의 자성청정심은 이미 모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미망에 취해서 헤매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자성청정심은 이미 온갖 악덕과 비리로 얼룩진 우리의 모든 숙업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새 해에는 자성청정심이 이미 깨닫고 있는 진실들을 실현해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교계 내외로 마치 거대한 탁류가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것 같았던 지난해를 보내고 맞는 새해는 곧 다가올 세기를 준비하는 우리 불교에 매우 의미있고 보람찬 한 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종단이 안정과 활력을 되찾게되고 이 땅의 모든 불자들이 한층 우리 불교의 얼굴을 밝게 할 노력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우리 불교가 현대적 발전이라는 발전콤플렉스에 매달리지 말고 좀더 차분히 불교의 문화적 역량을 재정비해서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전망과 저력을 다치고 또한 삶의 불교로서 대중들에게 봉사하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불교의 기틀을 다졌으면 한다. 우리의 불교가 이미 후기산업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현대사회라는 괴물을 잘 이해하고 다스릴 줄 모른다면 불교는 무기력한 자기 폐쇄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술의 잠에 빠진 거인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간 우리는 늘 제도개혁이나 역경, 포교, 교육을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그런 종단의 백년대계는 그 문제의 전말과 해결의 필요성, 방법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문화적 기초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문화적 역량이 없다면 어떤 노력과 구호도 그 결실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현대산업사회에서 불교가 당면환 과제들은 어느 몇몇 사람의 작업이나 지도로 쉽게 풀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지금 우리 불교는 기존의 제도, 권위의 제방(堤防)만으로는 풀어갈 수 없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기존의 수로(水路)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을 유연하게 다스리려면 좀더 폭 넓은 사유방법과 탄력이 필요하다. 자기 절, 자기 스님, 남의 스님, 남의 절이 문제가 아니다. 새해부터 우리 불교는 생동감 있는 현대불교의 존재방식을 성실하게 모색하고 내실을 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불교는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이 남을 정복하는 사람보다 더욱 존경받는 사회, 가장 작은 생명을 포함해서 모든생명이 이해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회, 탐욕에 의한 부의 축적보다는 조화롭고 절제있는 생활을 장려하는 사회, 인간의 가장 고결한 목표인 진리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해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했던 모든 악덕과 비리를 망각의 그늘속에 묻으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공덕을 기원해본다.

일지스님은 '74년 출가하여 해인강원과 율원을 수료했다. '88년 논문「현대중공의 불교인식」으로 제1회 해인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동국역경원의 역경에 동참하고 있다. 저서로 『달마에서 임제까지』『붓다, 해석, 실천』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