職場人의 修行德目

현대산업사회와 불교

2009-03-20     관리자

  위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우리는 산업사회에서 하나의 역군으로 종사하는 사실만으로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보시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기업의 한 조직원이 됨으로서 그 조직을 살리고 그 조직이 기업의 산업활동을 이끌어 가게 됨으로서 직장인은 국민경제사회에 대하여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에 봉직(奉直)한다는 것만으로 보시가 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직장인이 다 보살이란 말이 되는가?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직장인이 참으로 보살이 되기 위하여서는 몇 가지의 중요한 조건을 구비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직장인의 수행덕목이다. 그리고 그 조건들은 진리에 대한 굳건한 신심(信心)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보살다운 신심이다.

  보살다운 신심은 우리 모든 중생이 그 본성에 있어서 법신여래(法身如來)와 하나인 진리를 믿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법신여래 이외의 별개의 생명체는 있을 수 없으며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은 본래부터 한 형제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잘 살게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이며 남의 잘못은 곧 나의 마음의 그림자임을 믿고 남을 원망하고 시기하지 아니하면서 내가 반성하고 내가 참회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곧 그러한 신심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신심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 주위에 적을 두지 아니한다. 모든 중생들은 자기가 이익하게 해 주어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한 까닭에 그에게 있어서의 직장은 자기의 이타행(利他行) 곧 보살도를 실천하기에 꼭 필요한 자기의 활동무대이다.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곧 그의 보살도를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이러한 신심을 바탕에 두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수행덕목으로 다음의 몇가지를 실행해 갈것이다.

  첫째는 공경심(恭敬心)이다.

  직장은 조직(組織)이 움직여지는 까닭에 그 조직에는 상 · 하의 여러계층이 있게 마련이다. 직장의 보살은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무조건 공경하여야 한다. 사람들을 그 지위나 능력 또는 재력(財力)따위로 차별적인 평가를 하지 아니하고 인간으로서 조건없이 공경한다. 이 경우 조직을 움직이기 위한 명령계통이나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관계를 무시하라는 뜻과는 전혀 다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상급자에게 경의를 나타내면서도 내심으로는 인간적인 멸시를 하는 일은 공경이 아니다. 또한 하급자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감독하는 경우가 되더라도 마음의 깊은 곳으로 부터 나오는 공경심은 그 언사의 문법적 격식 여하와 관계없이 상하의 일체감을 들어낸다. 공경은 윗사람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위 아래 없이 모든 사람을 불자(佛子)로서 대접하는 것이 공경이다. 본래 부처에게는 일정한 모양이 없다. 모양을 특정하게 갖지 않으신 부처님 께서는 안 계신곳 없이 계신 것이며 안계신 때 없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다. 그 부처님의 법신생명(法身生命)이 내 주위의 모든 중생의 참 생명이다. 법신생명은 그러한 까닭에 내주위의 상급자로서 또는 하급자로서 또는 동료로서 그 모양을 보이시면서 나와 함께 계신것임을 잊지말고 끊임없이 그 법신생명들에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칭찬하는 말로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 조직은 사람들의 모임인 까닭에 화합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조직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은 남의 단점을 지적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열등의식을 갖게하는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사람들은 본래 법신생명의 구현체(具現體)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무조건 공경하여야 한다고 보았듯이 법신생명의 구현인 나의 직장 동료는 내가 한량없이 칭찬해 주어야 마땅하다. 칭찬을 아끼고 오히려 단점을 드러내면 그 단점이 더욱 더 명백하게 되어 법신의 공덕을 가리우는 불행을 초래한다. 칭찬은 법신의 무량공덕을 남김없이 들어내는 열쇠이다. 내눈에 단점투성이로 보이는 그 상급자는 사실에 있어서 그러한 단점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단점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와같이 보고있는 것이다. 내 마음의 눈이 남의 장점, 남의 공덕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내 자신에 대한 교만심 때문에 남의 단점만이 눈에 띠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반성하여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러므로 남을 비난하려 들지말고 남을 칭찬 한다. 모든 사람이 여래의 무한공덕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그 공덕을 칭찬한다. 100가지 일 중에 99가지를 잘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의 마지막 한 가지의 공덕을 칭찬한다. 칭찬할일이 도저히 발견되지 아니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착한 일을 하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도해서 그 착한 일을 칭찬한다. 혹 몸이 건강하면 그 건강한 몸을 칭찬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두터운 것을보면 그 두터운 가족애를 칭찬한다. 독자 중에는 혹 어떤 분이 반박하는 말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른다. 아주 지독하게 나쁘기만 한 사람을 어떻게 장점을 칭찬할 수 있겠는가하고.

  그러나 우리는 법신생명만을 믿는다. 그리고 그 법신생명 아닌 인간의 별개의 생명을 인정치 아니한다. 뿐만 아니라 법신 생명은 무한광명임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는 모든 인간이 무한광명의 주인이다. 무한광명의 주인 아니 인간은 본래 없다. 결점은 광명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결점은 본래없다. 결점인듯 보이는 것은 광명이 임시로 가리워 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가리워진 현상(現象)도 객관적 현상으로 꼭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있는 것은 광명뿐이다. 그러므로 광명의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광명을 부인하여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허망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다운 신심이 그 바탕에 마련되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한 일이므로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가능한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밝혀주고 있는 바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감(認定感)을 충족시키기에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얼핏보면 직장의 부하들은 모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물질적 소득만을 위하여 직장에 나오고 있는 것같지만 실(實)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 무엇보다도 큰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부하들의 성장을 위하여 그 단점을 지적하고 그 바로잡음을 구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나무람은 부하들의 열등 의식만을 자극하는 결과가 되고 상사(上司) 내지는 회사와의 적대적 감정만이 커질것이므로 나무람을 듣는 사람에게 극히 해로운 일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 기업으로 보아서도 귀중한 인재를 죽여버리는 애석한 일을 치루게 되는 것이다.

  인간능력의 개발은 열등감의 제거로서만 가능하다. 이 열등감이야말로 인간능력의 십이분의 발휘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러므로 단점많은 부하를 양성하는 비결은 그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하여 주는 일이다.

  칭찬은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법신생명 즉 무한능력(無限能力) 을 들어내는 열쇠임을 굳게 믿자. 그리고 이 칭찬이 그 조직의 화합을 가져옴을 잊지 말자.

  셋째는, 겸하(謙下)하는 마음이다. 위에서 열거한 공경과 칭찬은 겸하심(謙下心) 없이는 실행불가능이다. 혹 형식적으로는 그러한 모습을 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위선(僞善)이다. 직장에서 가장 거북한 사람들은 자기의 직위나 능력 또는 세력등을 코에 걸고 교만한 태도로 지내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본래 생명은 법신이며 그 법신생명은 결코 남과의 우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남보다 우세한 듯하게 보이는 그 현상은 한갖 중생상(衆生相)이다. 그리고 보살은 이 중생상을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