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연 고창(高敞)

나의 인연 아야기

2009-03-19     관리자

  나는 승진만 하면 고창이다.  공직생활하는 나와 고창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고창과 나의 인연은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면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편고지역(偏苦之役)으로 표현하고 싶다. 즉 괴로움을 남보다 더 받으면서 그 아린 가슴을 달래며 수괴지심(羞塊知心)으로 살아간다. 

오늘은 승용차로 심원면 주산리까지 갔다. 고향은 아니지만 이곳은 내가 첫 교감 발령을 받은 학교다. 오랫만에 찿은 고창 땅은 실로 놀랍게 변해 있었다.  무슨 인연인지 몰라도 교감으로 승진해 이곳에서 4년간 지내면서 삼양사 경작자들의 데모로 인하여 그 어린 자녀들인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까지도 데모에 합류했던 추억이 있다.  80년대에 이곳에서 교감으로 근무 할 때는 흥덕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곳 다리 근처에서 내렸다.  이 다리는 정월 대보름날 동트기 전에 실개천 물이 넘실대는 곳에 징검다리가 새롭게 놓이곤 했다. 

이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선심으로 공약을 남발하며 놓는 것이 아니고 그저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몰래 하는 인정이었고 남을 돕는 이곳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새롭게 놓여진 징검다리를 뛰어 다니던 이곳에는 이젠 색다른 회색빛 묵중한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 다리 방천 밑에서 미꾸라지 잡겠다고 동네 아이들이 헌 바구니를 들고 비를 함뿍 맞으며 눈마저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누렁콧물이 윗입술까지 흐르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이제 그렇게 많던 미꾸라지는 고사하고 송사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겨우 발등이 감추어질 정도 냇물만 고여 있을 뿐이었다.  삼 년 전 아홉 명의 교장이 같은 날 고창에 와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다 가고 나 혼자만 남아 있으니 인생 노송이라 부른다.  하늘을 곧게 치솟는 소나무는 재목감으로 선택받아 먼저 베어 갔는가 하면 허리 굽고 짜리몽땅한 한 아름드리 소나무만이 운치가 있게 서 있다.  그 밑엔 깍아 세운 듯한 바위가 슬며시 눈을 감으며 입다문 채 이끼가 옷을 입히고 있다. 그 옆에는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춘란이 수줍은 듯, 머리 풀고 우유빛 꽃대궁으로 풋내음과 짙은 향기를 토해 내고 있다. 

이 조그마한 동산이 오늘도 늙은 소나무에 정을 담뿍 묻고 한 마리 학이 되어 고로코롬 살아라 한다.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한 맺힌 세월만 남아 있다. 어째서 나는 한과 원의 점철이 내 인생임을 미리 깨닫지 못했을까?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을 참으며 침울한 마음을 달래어 본다. 그러나 흘러간 건 부질없는 것이다.

          인정(人精)과 세상만사는   촐랑대며 빨리빨리 속에

         숨벅찬 빌딩들만   서로 다투어 앞서네

          태초(太初)부터  피맺힌 한을 푸르게

          원을 철갑에 두른   노송은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고로코롬 서서

          오묘함과 수려함을 자랑하며  

           노송에 정이나  담뿍 묻고

           한 마리 학처럼 살어라 하네.

  학의 생명적인 리듬의 표출이 학춤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는 몸짓의 춤은 접어두고 대 자연에 정감(情感:Feeling)이 쌓인 뜨거운 가슴이 있지 않는가.   그 가슴 속에 여흥(餘興:Remainingmirth)을 리듬화하여 이 글을 읽는 분에게도 나와의 인연으로 생각해서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인언이박(仁言利博)으로 얼마나 멋진 시정(詩情:Poeticalseniment)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