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

특집/내가 주고싶은 것

2009-03-19     관리자

  그 날은 용하게 내가 집에 있었다. 따랑 따랑 울리는 전화를 받고 보니 반가운 K여사의 목소리, <만나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하기에 <점심을 먹지 않고 기다릴 터이니 빨리 오시요>하였다.

  점심 식사 준비를 간단히 했을 때 의외로 빨리 나타난 셈이다. 반갑다고 현관에서 손을 잡아 끌고 방으로 들어오게 하고는 앉자 마자 점심상을 갖다 놓았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운듯 <나는 박여사가 이렇게 야무진 줄 몰랐어요. 나박김치 배추김치 깍두기 김치다 갖추어 놓고 반찬들이 다 얌전하네요>하고 내 밑반찬 솜씨를 한바탕 추겨 주었다. 사실 내 요리 솜씨를 칭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이 분명하리라.

  언젠가 선배(先輩)시인 한 분과 같이 합세하여 내 건망증(健忘症)이나 무심증(無心症)을 찬양하여 <나사가 좀 빠진 사람 같은데·····>라고 놀려댄 적이 있었다. 하기야 동창생들도 나를 좀 이인(異人)취급을 하는 것을 왜 내가 모르겠는가?

  화려한 길 다 두고 시조(詩調)라는 고독을 택하여 골몰하고 있으니·····, 그 위에 직업을 갖고 매일 바쁘다고만 하니 아마 나를 중성(中性)인 줄 알았던 모양인지? 그러나 그들은 내 조그만한 아파트에 와 보면 비둘기집은 못되더라도 부엉이집처럼 없는 것 없이 오밀조밀 해 놓고 내가 손수 차려 내놓는 밥상을 대하고는 한 번쯤 K여사와 같은 말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다.

  남편도 없고 가족이라야 강아지같은 딸 하나 뿐인데 누구를 위하여 부리는 재미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딸을 위하여 그리고 찾아오는 벗을 위하여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재미, 정(情)을 주는 즐거움, 마음속으로 중얼거릴 것이다.

  진실로 고독(孤獨)을 좋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단 한가지에라도 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만 있다면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시조(詩調)와 딸이 있다. 시조는 내 종교(宗敎)나 다름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딸은 내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벅찬 남녀 공학(南女共學)에서 의학(醫學)을 공부하는 딸은 봄도 없고 가을도 없고 밤낮으로 공부에 쫓겨서 꽃다운 시절을 어이없이 보내고 있는 것을 보는 어미의 가슴은 항상 아픔 비슷한 것이 쓰리어 있다. 나는 이 딸에게는 아까운 것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그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차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꼭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일까?

  아마 길어도 길어도 끝없는 내 가슴의 샘물같은 정이아닐까.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놓고 <얘 그만하고 밥먹어라>하고 짜증내는 것도 공부에 열중하여 때로 잊어버리는 딸에게 주는 사랑일 것이다.

  이는 비단 딸에게만 한한 것은 아니다.

  먼 곳에 있는 벗에게 미처 만나지 못한 그리운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 같은 것이 있다.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하는 마음, 그것은 정을 주고 싶은 까닭이 아닐까?, <참 그분에게 주었던가, 꼭 만나면 주어야지>하는 것은 내 시조집(詩調集)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해 보면 내가 주고 싶은 것은 자못 눈물겨운 내 정이고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