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스리랑카 1 남국의 보석

스리랑카에 현존하고 있는 고대도시 아누다라푸라

2009-03-16     관리자

스리랑카의 옛 역사는 전설과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선사시대 기록으로는 고타마 붓다가 세 번에 걸쳐 빛나는 아름다운 섬 스리랑카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인간이 아닌 야카스와 나가스가 살았다고 전해지며, 또한 중국의 파 히센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기록은 이 섬은 인간이 아닌 악마와 용 같은 것이 살았다고 중국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최초의 원주민은 인도 북부에서 살던 아리안족의 비쟈야 왕자와 그를 따라온 700 명의 사람이 중북부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는데 역사 학자의 주장으로는 원주민이 정착한 이때가 기원전 487~483년으로 추측하고 있다. 비쟈야는 이 섬에 도착하여 탐바파니 시를 건설하였고, 그가 지명한 다른 책임자들도 이 섬 여기 저기에 마을을 건설, 살았던 흔적이 근대에도 발견되고 있다.

 비쟈야는 계속해서 카담바 강 근처에 아누라다가마와 북쪽 감비라 강뚝 위에 우파티샤가마라는 도시를 낀 신앙 사원을 세웠다.

 또 다른 세 사람의 책임자에 의해 우제니, 우루베라, 비지타 시를 건설 그는 38년 간 탐바파니에서 싱하리 왕조를 지배하게 된다.

 비쟈야 시대에 이미 아누다라푸라가 조성되었고 기원전 4세기 싱하리 왕조의 네번째 왕인 판두카바야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고대사 마하완사에 따르면 이 도시는 계획된 도시로서 중심부와 외곽지로 나누어졌는데 중심부는 왕궁과 주요 건물들이 있었고, 외곽지는 상업 생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도시가 세워진 후에는 제왕들에 의해서도 유지되어 왔고, 그 왕들은 섬을 여러 가지 종교적 사원과 예술품으로 성스러운 분위기로 충만하게 만들어 나갔다. 살기 좋고 아름다운 섬, 이 곳은 점차적으로 인도 대륙으로부터 침략자들이 온다는 것을 감지하였지만 밀림에 싸인 이곳 중심부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되었던 듯하다.

 아누다라푸라는 기원 전 3세기 인도의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적 열정과 문화적 업적이 살아 있는 고대 도시이다. 고대에 종교적인 헌신과 예술적 솜씨가 현대로 이어진 불교의 발상지이기도 한 아누다라푸라는 또한 스리랑카의 수도로서 스리랑카의 시작은 곧 불교 역사였던 것이다.

 기원전 247년 인도 마우리안 제국의 아쇼카왕은 이미 그때 스리랑카에 종교 파견단을 보내 불교 부흥의 시기를 택했던 것이다. 이 왕은 아들 마힌다와 딸 상가미따를 스리랑카에 파견한 것으로 봐도 이 섬을 불교 부흥지로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같다.

 마힌다에 의한 불교 전래는 아누다라푸라를 중심으로 폴로나루와, 시기리야, 담불라, 아우카나 등 이 섬 전체를 불교 성지로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들은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고, 또한 이들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섬에 많은 왕들이 종교, 문화를 잘 계승 발전시켜 불교정신과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마힌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스리랑카는 줄곧 번영해 왔으며,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 후 11세기까지 15세기동안 침족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그 기간에도 시기리야, 폴로나루와 등도 나름대로 번성되어 왔다.

 왕족의 후계자 싸움 등으로 불안한 틈을 타서 남인도에 타밀족으로부터 침임을 자초해 11세기 초 싱하리 왕조와 타밀 왕조로 분열, 싱하리 왕조는 아누다라푸라에서 폴로나루와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폴로나루와에 남아있는 유적은 위자야ㅡ바후 1세와 프라크라마 1세 등 두 왕의 시대 것이다. 이후 침략자들에게 쫓겨 1301년에는 구루네ㅡ갈라, 지금의 수도 콜롬보 근처의 꼬데 등을 거쳐 또한 1505년 포루투갈의 침입을 받아 지배당했으며, 마지막에는 구릉지대인 캔디로 도읍을 옮겼다.

 스리랑카는 다시 1658년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는다. 16세기 초부터 정글 속에서 도시를 건설하며 살고 있었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캔디 왕조도 1815년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그들에 의해 밀림 속에서 찾아진 마지막 왕조가 되었던 것이다.

 싱하리 왕조는 타밀족의 침략에 밀려 아누다라푸라를 버리고 폴로나루와로 도읍을 옮긴 후에도 싱하리의 지배자들이 아누다라푸라의 종교사원에 대해 정열을 쏟았던 예가 있다.

 마지막 왕조인 캔디의 왕들도 18세기 초입에는 몇차례에 걸쳐 그곳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고 점차 잊혀져 있다가 19세기 들어서 서서히 아누다라푸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밀림 속에 감춰져 있던 캔디 왕조가 무너진 1815년 영국이 정복한 후 싱하리인들은 영국 정부의 관료들로 하여금 옛 고대도시 아누다라푸라를 방문할 것을 권했다. 불교 단체들도 영국 정부에 건의하여 아누다라푸라를 보소하고 유지, 개발하도록 하는 데 앞장섰다.

 영국 정부는 1890년 인류연구위원회를 발족 위원장에 벨(H.C.P.Bell)을 선임했다. 이 위원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이름을 부치고 복구하며, 재활하는 등 도시, 저수지, 재단을 부흥시키는 임무를 착실히 하였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205km 떨어진 중북부 지방에 있는 아누다라푸라는 기원 전 5세기 기원 후 11세기까지 싱하리 왕조의 수도였으며, 오랜 동안 잊혀져 왔던 폐허이던 곳으로서 금세기에 들어 발견되기까지 밀림 속에 묻혀 잠자고 있던 고대도시이다.

 현재는 정글들이 말끔히 제거되어 도시 전체가 녹색 짙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부처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최초의 불탑 투파라마(Thuparamadagaba)가 있다.

 상가미따가 인도의 붓다가야에서 가져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2,200년 된 보리수 나무, 약 100m 높이의 세계 최대의 불탑 루완베리(Ruwanweli Seyadagaba), 왕궁터, 승원, 조상(彫像) 등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 불교유적이다. 당시 옛 궁전은 9층으로 된 부조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돌 기둥만 남아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현재 아누다라푸라를 보노라면 유일하게 고대도시의 왕족과 시민들의 생활, 종교적으로 화려했던 점을 관찰할 수 있게되며, 즉 현대 속의 고대를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