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로 쓰러지는 나무

2009-03-16     관리자

삼보(三寶)가 무엇이지 佛子들은 다 알 것이다. 부처님과, 부처님 말씀과, 부처님 뜻을 좇아 부처 되고자 수행하는 단체인 승가(僧伽) 이 셋이 불자들이 받들고 섬겨 따라야 할 귀한 세가지 보배인 것이다.

세가지 보배중 위의 두 보배인 부처님이나 부처님 法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은 불자라면 누구나 잃지 않고 산다. 그러나 승가에 대해서만은 다른 생각을 가진분들이 꽤 있음을 본다. 그래서인지 삼귀의(三歸依) 노래 중에 있는 제일 마지막 귀절, [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의 [ 스님들]을 [스승님]으로 일부러 바꾸어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이것은 여러 생각에서 일 것이다. 스님이란, 위 두 보배와는 달리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우리 곁에 생존해 있고, 어쩌면 우리이웃, 내 자식, 내가족 중에도 있는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러므로 스님이란 특수 신분에 있으면서도 그분들이 때로는 실수도 하고, 스님답지 못한 행동을 하며, 때로는 보통 시민만도 못한 생활을 하는 분도 있음이 우리 눈에 직접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도가 높지 않은 평범한 중생들의 마음에 경시하는 마음이 이는 것도 어느 면으로 보아서는 당연히 받아 들여 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스님들은  自意에서든 他意에서든 스님이 된 이상 부처님 법을 이어갈 귀한 분네들인 것이다. 스스로 發心하여 된분이면 이세상의, 괴롭긴 하지만 버리기 어려운 모든 인연을 끊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히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환경 조건등 타의에서 되신 분들이라면 스님이 되기까지의 그 귀한 인연을 존중하는 것이다. 여간해서는 스님될 인연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佛家에서는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불자인 나도 또한 내게 맺어진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할 때가 많다. 돈이나 명예등을 얻었을 때가 아니라 뜻이 맞고 대화가 통하는 [ 사람 인연]을 만났을 때 그렇게 감사한 것이다.  이사람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서로 듯이 통하고 의견이 맞아 즐겁기도 하지만 그외에 인연으로 인하여 돈도 벌수있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  사람 만난 인연이 무엇보다 큰 인연인 것이다.  나는 내겐 항상 좋은 사람 인연이 많이 맺어짐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내게는 스님 될 인연만은 주어지지 않은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었건만 나는 감히 스님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 좋은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겠지만 지금이라고 해서 그럴 엄두가 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감히 부처 될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발심하면 이루어진다는 막연한 확신만은 갖고 있다.  부처될 발심을 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어떠한 수행의 어려움도 물리치겠다는 결심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 발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금의 나로서는 발심을 하더라도 다음 생에 스님될 인연 맺었으면 하는 소박한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불자이다. 부처님 말씀이 이세상 어떤 음악보다도 곱게 들리고 부처님 존호만 보아도 환희스런 마음이 생기는 불제자인 것이다.

이런 불자인 내가 기도하는 조그만 소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부처님께로 쓰러지는 나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남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남쪽으로 쓰러지고, 북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북쪽으로 쓰러지듯이, 내가 佛法에 기운 나무가 되어 몇번의 생을 거듭하더라도 부처님법과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는, 부처님께로 쓰러지는 나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