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된 맑은 혼을 그리며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2009-03-16     관리자

"제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86년부터였습니다. 제 내면에 정리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림이었으니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지요."

 열 살 적부터 그림을 그리며 그것이 당연한 자신의 길이려니 생각했던 화가 김희자(48세). 그는 문득 어느 순간 자신이 왜 그림을 그리는지 몰랐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했다. 자신의 존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타의에 의한 피상적인 모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그림 그리는 것 자체에 짙은 회의가 들었다.

 그래, 화가가 아니면 어떤가. 작가라는 기본적인 생각마저 포기한 그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1976년 붓을 집어던진 그는 단 한 번도 붓을 들지 않았다. 그 후 7~8년 세월이 흘렀다. 그는 다시 인생문제와 맞부딪쳤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도대체 나라는 이 사람이 누구냐.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끝없이 하다보니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면서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한 여자로 태어나 결혼을 하고 불합리한 모순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갑자기 삶을 거부하고 싶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나에 의해 살아가지 못하고 왜 남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왜 여기에 태어났는가….'

 의문은 의문에 꼬리를 물고 휘몰아쳤다. 1980년 초 존재에 대한 목마름으로 그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서양철학과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그리고 신프로이드 학파의 서적류들이었다. 그러다가 신프로이드학파의 거두에 속하는 에리히프롬이 지은 『선(禪)과 정신분석』이라는 책을 통해 불교를 알게 되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서양의 정신분석이 인간을 연구하는데 어느 정도는 기여했지만 인간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했다. 극동의 선불교 이외는 아무것도 궁극의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일본의 스즈끼 다이세쯔를 만나 선(禪)을 알게 된 에리히프롬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서양철학을 통해 불교를 알게된 김희자 씨는 희미하나마 희망을 불교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 서점 저 서점 불교책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읽을 만한 책을 찾지는 못했다. 손에 들어온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난해하다는 생각만이 더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책 속에서 달마 이후의 법통을 잇고 계신 스님이 인천 용화선원에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다.

 1983년 남편(덕봉 거사)과 함께 용화선원에 찾아간 그는 마침내 송담 스님을 만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었다.

 "스님께선 제 존재 이유를 인연설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업(定業), 업에 의한 것임을 부처님 말씀을 빌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체의 가식과 선입견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백지장처럼 순수한 감각을 지니신 분이셨지요. 스님께서는 특히 그림을 잘 그리시고 또 그림을 좋아하셨어요. 예술이나 참선이나 삼매경의 경지는 같은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보는 것을 함께 보고 싶었습니다. 스님께선 특히 교육받은 자, 지식층에 대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셨어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생각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무리 환한 빛이 있어도 뒤짚어 쓴 독안에서는 그 빛을 볼 수 없는데 그 독은 자신만이  벗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대하면 대할수록 편하고 아름다운 분이에요. 세상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스님 같은 분이 있기에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시심마' 화두를 받으라고 할 때 그는 두렵고 무서운 것 같아 받기를 거부했다. 마치 공상망상을 피우는 손오공의 머리에 쇠를 채워 망상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머리 조이는 틀과 같은 것 같아 무서웠다.

 어찌보면 망상만큼 즐거운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림은 자유로운 망상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누구냐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해결하는 것이 화두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주인공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지요.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다보면 인식의 전환이 옵니다. 자기를 객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대부분 우리는 ‘나’ ‘내 것’ 이라는 아집 때문에 나와 관계되는 모든 것과 붙어 뒤엉겨 삽니다. 오히려 대상에 휘말려 살지요. 그러나 참선을 하면 깨어 있는 투명한 의식으로 모든 것을 정돈하고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 수 있어요. 알고 보면 제 자리에 모든 것이 있기에 누구를 탓할 것이 없어지지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참선을 하는 것을 일과로 하고 있는 김희자 씨는 한 때는 자신의 빨래통에 뒤엉켜 돌아가는 빨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온갖 것이 뒤엉켜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들을 관조하며 그것들의 자리를 볼 수 있다. 삶에 대한 대의심이 더욱 크고 깊어지면서 풍요로와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송담 스님을 만난 이후 자신에 대한 대변혁이 일어나면서 그것이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더니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져 누적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뭉클뭉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떤 형식으로든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86년 다시 붓을 잡은 그는 마침내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최근의 작품까지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한마디로 거의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상식에 충격을 주고 우리의 미술경험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아트뉴스」 비평가 셔리 헌툰은 이렇게 말한다.

 “작가 김희자는 구성상 작품의 중앙에 공백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금기를 실험하며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김희자에게 있어서 도려냄은 또한 ‘공(空)’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일부 현대 미술 비평가 및 작가들이 소위 끝났다라고 여기는 유화라는 미디어 속에 김희자는 지속적인 변신을 위한 여지를 찾아내었다. 분명한 점은 작가로서 그녀는 아무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기꺼이 전통적인 유화와 판화 기법을 이용하지만, 통상적인 사각형의 지루한 제약을 기피한다.”

 “제 작품이 왜 그렇게 생겼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 어쩔 수 없는 필연입니다. 저는 시를 쓰는 것처럼 그림을 그립니다. 쓸데없는 부분을 다 없애버리고 나면 그렇게밖에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본래 아무것도 없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망상으로 허상을 만들어서 웃고 울고 그것을 진실로 착각하며 사는 그림자 속의 삶만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제 그림 역시 또 하나의 허상을 만드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모든 것이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 마음에서 생겨났을 뿐이라는 것을 관조할 수 있다면 결코 집착에 의한 어리석은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비록 우주 앞에 서면 하나의 미물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온 우주를 마음 속에 삼켜 버릴 수도 있는 인간의 이 모순된 삶을 그는 사랑한다고 한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만 이 지구가 자전하는 어마어마한 굉음을 들을 수 없는 이 존재의 실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다행히 자신의 그림을 보는 이가 혼을 정화시켜 맑은 영혼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자신의 사명은 다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 온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그의 영혼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