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이야기] 사경寫經의 공덕

2009-03-15     김운학

  사경의 의의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러경전에서 서사(西寫)의 공덕이 크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즉 경의 독송과 함께 이 경을 서사하는 공덕은 무량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적으로 이 사경을 해서 얻는 공덕이 어떤 것이 있고 또 이것은 반드시 가능한 것인가, 몇 가지 예를 들어 적어 보기로 하자. 인간은 이러한 덕이나 영험을 알기전에는, 잘 이를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경은 다만 경의 이해와 전달의 공덕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신앙적 깊은 공덕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이것을 먼저 알고 사경의 방법 용도(用度), 의식 등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사경에는 장경(藏經)과 원경(願經)이 있다. 장경(藏經)은 절이나 신도(信徒)가 경전을 옮겨 만들기 위해서 쓴 것이요, 원경(願經)은 반드시 자기나 국가의 어떤 원을 위해서 쓰는 경이다. 때문에 원경(願經)의 뒤에는 반드시 원문(願文)이 따로 적혀 있다. 오늘날은 인쇄술에 의해 경이 발간되기 때문에 이러한 원문의 성질은 법보시판(法布施版)으로 나타나 있지만 과거에는 많은 사경에 원문(願文)이 반드시 뒤에 써 있었다.

  이것으로 사경이 신앙성을 가지고  기도를 목적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은 그 결과가 있기 때문에 과거부터 이미 내려온 것이다.

  자운장(紫雲裝)에서 나온 <사경의 공덕집> 같은 책만 보아도 오늘날 많은 영험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요한 것들을 보면 이 사경의 정진에 의하여 입학 시험에 합격되고 다 죽게 된 아이가 나았으며 취직이 되고 매월 2~3명이 된 동생과도 만나는 등 그 종류가 너무나 많다.

  어떤 학생은 성적이 너무나 좋지 않아 그 선생도 학생이 시험 칠 만한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 할 정도로 성적이 나빴지만 이 학생이 다른 우수한 학생들을 물리치고 합격을 했다는 이야기, 이 학생은 공부는 못해도 사경은 매일 열심히 썼다는 것이다. 1년이나 사경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후 걱정스러웠던 입학금(入學金)마저도 친척이 갖다 주었다는 등 사경을 열심히 하면 그 효과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경에 있어서 먼저 두가지의 마음가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먼저는 한자 한자 글자를 쓸 때마다 관세음보살이나 성인께 합장하는 마음으로 써야 되고 다음 그 원이 걱정스럽고 되지 않는 상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되어진 감사의 태도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것은 성인에게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고여 있고 뒤의 것은 이미 되어진 그 마음의 개척된 상태를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물론 두 가지로 함께 꼭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면 함께 생각하는 것이 좋다.

 앞의 것은 종교적 신앙적인 것으로 한자 쓰고 한번씩 예경(禮敬)하기도 하고 한자 쓰고 세번 절하기도 하며 한 줄을 쓰고 세번을 절하는 등의 의식이 있다. 한자(一字)쓰고 세 번 절하는 것은 일자삼예경(一字三禮經)이라 하고 한 줄 쓰고 세번 절하는 것을 일행삼예경(一行三禮經)이라 한다. 곧 사경이 이만큼 깊은 기도적 자세를 가지고 임하기 때문에 이것이 백일이고, 1년이고 3년을 하면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 입학시험을 목표로 하는 사경에 있어서도 그 자신이나 부모가 불합격(不合格)을 걱정하면서 사경을 하지 않고 이미 되었다는 마음의 자세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이나 부모의 그 마음이 시험칠 때에 그대로 그 마음에 부각되기 때문에 다른 하등의 불안한 마음 없이 시험을 잘 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경의 태도는 그 마음의 개척이 연연히 잘 나타나 보이는 태도라 하겠다.

  때문에 이러한 마음 가짐으로 행하는 사경이기 때문에 그것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백일이고 일년이고 평생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의 공덕집에서도 보면 대게 백 일 또는 1년에 효과를 본 것이 많았다.

  그런데 경우에 가서는 며칠 되지 않았는 데도 영험이 나타난 기록들도 있었다. 이것은 이 사건의 성질로 보아 분명 과거 업력의 탓이었기 때문에 그 참회의 자세가 이 사경으로 해서 나타났기 때문에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생각되었다. 가령 한 부인이 어떤 사정으로 해서 남의 아이를 데려다 기르게 되었을 때 이 네살 난 아이가 먹지도 못하고 마비 증세를 보이면서 다 죽게되었다. 병원에서도 이미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 양친(養親)인 부부(夫婦)의 사경은 물론 이것이 그 아이와 그 아이 부모의 전업(前業)까지 곁들여있다는 사경선생의 말을 듣고 그 아이의 부모들도 찾아 함께 사경하자고 권했다. 그들도 깊은 반성과 함께 참회를 한 나머지 사경을 한 결과 사경을 시작한 바로 뒷날 아이는 갑자기 음식도 먹게 되고 회복되기 시작했다는것이다. 이것은 전세의 업장을 깊이 참회한 공덕에 의해서 사경은 비록 오래지 않았지만 영험을 본 예인 것이다.

  사경은 절에 가서도 하고 집에서도 할 수 있는것인데 이것은 불교적 수행의 하나의 방편이기도하다. 때문에 그 마음의 정서에 따라 반드시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심신과 신앙이 문제될 뿐이다.

  그런데 이 사경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그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사경이 한권 두권 쌓여감으로 해서 그 마음도 차차 열려 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정성으로 나타난 그 사경 자체에 영험이 나타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상에 금니사경(金泥寫經)은 은니사경(銀泥寫經)등 사경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사경 자체에 큰 힘과 위력을 주기 위함에도 있었다. 즉 이러한 사경이 대개 부처님의 복장(腹藏)이나 탑속에 들어 감으로 해서 그 부처님이나 탑이 더 영험스럽고 오래가기 위해서 였으며 이러한 것으로 보면 이 사경은 그 정성에 따라 사경 그 자체에도 어떤 힘이 생김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의 흥미스러운 예는 일본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사건은 막부(幕府)시대로 올라 간다.

지금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어느 강을 중심으로 전투가 벌어진 뒤 많은 전사자를 냈는데 그 많은 전사자를 낸 격전지를 한 용감한 젊은이가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누구나 밤만 되면 이곳에 들어가 죽게 되는데 이 젊은 이는 이 세계를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몸 전체에 사경한 반야심경을 바르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밤이 깊어 죽은 장성들이 자기의 관내(管內)를 활보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마침 인간의 냄새를 맡고 찾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귀 하나가 보여 그것을 잘라 갔다는 것이다. 뒤에 젊은 이는 이 위기를 모면하고 나와 살펴보니 반야심경이 다 붙었는데 한쪽 귀에만 붙이지 않아 그 귀가 보여 잘렸다는 것이다. 이 사례로 보면 이 사경한 심경(心經)의 공덕이 어떠했던가를 알 수 있다.

  사경에는 반드시 공덕이 있다. 그 마음의 정성과 꾸준한 노력에 의해서 반드시 공덕이 있는것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염불하는 공덕을 인정한다면 이 사경의 공덕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이 사경의 태도도 그와 조금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경의 태도는 다른 기도나 염불보다 더 지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도 더 많이 나타난다는 장점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공덕을 살려 이 사경의 운동이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