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염불관 수행법

붓다의 염불관

2009-03-03     관리자
부처님의 초기경전인 니까야와 아함경에 근거한 염불관(念佛觀)도 다양하게 계발되어 수행되어져 왔다. 이번 호에선 남방의 다양한 염불관을 소개하여 독자들의 수행을 돕고자 한다. 우선 1991년에 입적한 태국의 아짠 차 선사의 염불관을 소개해보겠다.

‘붓도’ 염송과 호흡관찰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주시하십시오. 설사 다른 이들이 물구나무를 서더라도 그것은 그들 일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직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밖에 할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를 알아차리십시오. 숨을 들이쉴 때는 ‘붓(Bud),’ 내쉴 때는 ‘도(Dho)’라고 염송하면서1) 호흡관찰을 이어나가십시오. 이를 알아차림의 주제로 삼으십시오. 방이나 마루에서, 혹은 걸상에 앉아서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집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들숨이나 날숨에 마음을 모으십시오. 혹시 도움이 된다면 호흡의 출입을 관찰하는 동안 ‘붓도[Buddho: 佛(Buddha)의 주격]’, ‘담모[Dhammo: 法(Dhamma)의 주격]’, ‘상고[Sangho: 僧(Shangha)의 주격]’를 반복해 외워도 좋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산만함이나 불안감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직 숨만 지속적으로 들고납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렇게만 하십시오. 일체 생각을 놓아 버리십시오.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여전히 편안하고 평화로운 단계에 이를지라도, 그대 자신 안에서 그 편안함이나 평화로움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러면 삼매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경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오가며 걷는 경행도, 수행상의 핵심은 좌선수행과 동일합니다. 즉, 마음을 집중시킨 다음, 분명한 마음챙김이 일어나기에 충분하도록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힐 것을 다짐하면서 경행에 들어갑니다. 먼저 오른발부터 내딛으십시오.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매 걸음마다 마음속으로 ‘붓도, 붓도’(혹은 담모, 상고)를 되뇌도록 하십시오. 경행 내내 자신의 발을 주시하십시오. 망상이 일거나 불안해지면, 평온해질 때까지 걸음을 멈추거나 빠르게 붓도를 반복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십시오. 경행의 처음·중간·끝을 알아차리고, 길 끝에서 걸음을 되돌림을 알아차리십시오. 매 순간 그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알아차리십시오.
또한 일상 중 자세를 바꿔 가며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즉, 서서 하는 입선, 앉아서 하는 좌선, 누워서 하는 와선 등으로 자세를 바꿔가면서 계속 수행하는 것을 이릅니다. 이들 각각의 자세에서 붓도와 함께 알아차림을 계발하고 이들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몸이 불편해져 자세를 바꾸려 한다면,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참아 보다가 바꾸십시오. 사람들은 “뭐라고요? 나는 그렇게까지 견뎌 낼 자신이 없어요!” 하며 투덜댑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기 전에 좀더 기다려 보십시오.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고통을 견디십시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아내며 수행을 이어나가십시오. 너무 고통스러워 마음속으로 ‘붓도’를 연호하기가 어려워지면, 붓도 대신 고통을 수행주제로 삼아 ‘고통, 고통, 고통…’ 하면서 알아차리십시오.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을 때에도 붓도와 함께 알아차림을 놓치지 마십시오. 음식을 씹고 있음을, 삼킴을, 그리고 삼킨 음식이 어디로 흘러내려 가는지를 알아차리십시오. 그 음식이 자기 몸에 맞는지, 그리고 그것이 몸 속 어디쯤에 도달하는지를 알아차리십시오.
이와 같이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의자에 앉아서든 차 안이나 보트 속에서든, 수행자는 어디에서든지 집중을 이루고 즉시 평온 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처한 곳이 어디든지 좌선수행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평화로움, 평화로움…’ 하며 말로만 찾지 마십시오. 그런 식으로 수행을 하고, 곧바로 평화로워지지 않으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피곤해 하거나 게으름 부리다 언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전심전력으로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십시오. 이 수준에 다다른 수행자는 팔정도(八正道)에 대해 어느 만큼 알게 된 셈입니다.

남방과 티벳의 염불관

아짠 차와 더불어 아짠 문의 제자인 아짠 마하부와 선사의 염불관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똥, 오줌 등 부정관이나 붓도, 담모, 상고 등의 염불관도 알아차림과 병행해서 염송하게 한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할 때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항상 알아차리고 있듯이 가슴에 아는 마음을 두고 붓도를 되풀이하는 마음과 아는 마음이 하나가 될 때까지 계속 염송하면서 알아차려 나간다. 아짠 차는 ‘붓도’ 하면서 붓도만 해도 되고 붓도와 겸해서 호흡, 몸, 감각, 마음, 법 등을 관찰해 나가는 데 비해, 아짠 마하부와는 붓도를 염하는 마음을 알아차릴 것을 강조한다. 붓도만 염하게 되면 사마타 수행이고 붓도와 몸과 마음을 병행해서 관찰하면 사마타·위빠사나 쌍수의 수행이 된다. 때론 붓도 염송 없이 몸이나 마음만 관찰해도 된다.
태국의 또다른 유행의 염불관이 있다. 왓팍남 사원이나 담마까야 사원에 가면 좌선시 공 같은 수정을 앞에 두고 삼마아라한(Samma Arahat)을 염송하면서 수정관을 한다. 아라한은 여래 십호의 하나로 여기에 ‘완전한’, ‘더없는’ 등의 뜻이 있는 삼마를 붙인 ‘완전한 아라한’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경론에 보면 까시나(원판)관이라 해서 태양이나 달, 빛 등을 대상으로 해서 니미따(nimitta, 빛 형상)를 만들어 삼매수행을 하는 행법이 있는데 이를 응용한 것이다. 이때 수정을 통한 니밋따가 형성되면 삼매수행을 해도 되고, 이를 삼켜 단전에 두고 관하면 둥근 빛이 폭발하듯이 생겨나면 18단계의 신체가 순서대로 나타나 아라한의 담마까야(法身) 상태로 나아간다. 또한 왓팍남에선 이때 여래를 볼 수 있다고도 한다(이 부분은 확실치 않음, 추후확인). 결국엔 빛이든 염송이든 관찰하면 사라져 적멸에 드는 게 불법수행의 요체이다.
미얀마의 염불관은 아직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우선 필자가 접한 한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독자들은 그 원리를 파악하여 자신의 수행에 적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마하시 사야도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래십호를 염송할 때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면서 관하면 마음에 법열이 충만하게 느껴지게 되는데 이때 그 감정을 관찰하여 적멸로 나아가게 한다. 또 다른 사야도는 여래십호를 순역으로 반복해서 염송하면서 관한다. 즉 여래십호[①아라한(應供) ②정변지(正?知) ③명행족(明行足) ④선서(善逝) ⑤세간해(世間解) ⑥무상사(無上士) ⑦조어장부(調御丈夫) ⑧천인사(天人師) ⑨붓다(佛) ⑩세존(世尊)]를 ‘①아라한 ②정변지’, ‘②정변지 ①아라한’, ‘①아라한 ②정변지 ③명행족’, ‘③명행족 ②정변지 ①아라한’ … ‘①아라한 ②정변지 ③명행족 ④선서 ⑤세간해 ⑥무상사 ⑦조어장부 ⑧천인사 ⑨붓다 ⑩세존’, ‘⑩세존 … ①아라한’ 이렇게 매일 천 번씩 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분도 있다.
티벳에선 염불할 때 붓다를 관상하는 방법이 있는데, 여기엔 각 파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절이나 아니면 일상 수행 중 아미타불, 석가모나불을 염할 때 붓다의 모습을 앞에 있는 듯이 관상하면서 염송하게 한다. 그러면 쉽게 삼매에 들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후일로 미루겠다.
앞서 설명했듯이 초기 경전의 염불관은 사후 천상에 태어나는 것, 금생의 건강과 불안제거 등 소원성취, 궁극의 깨달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불법의 궁극적 목표는 탐진치(貪瞋痴)의 소멸, 생사의 고통 없는 영원한 행복이다. 관 없이 염송만 하면 빛의 바다나 형상의 세계에서 못 벗어난다.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이나 쌍윳따니까야에서도 삼세제불이 12연기관으로 성불한다고 했다. 오온, 12연기가 탐진치이고 생사이다. 이들을 염송하면서 무상, 고, 무아, 인과로 철견할 때 지금 여기가 열반, 극락정토가 된다. 보살행이든 수행이든 자리이타(自利利他) 자타일시(自他一時) 이고득락(離苦得樂)이 불법의 핵심이다. 염불관 역시 자신의 특성과 근기에 맞추어 부처님 경전에 근거해서 전심전력으로 여법하게 염과 관을 수행하면 금생이든 내생이든 생사 없는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자신과 일체 중생의 마음에서 실현할 수 있다.
참고로 태국엔 70% 이상이 염불관으로 위빠사나를 수행한다. 우리나라도 전통적인 염불수행과 더불어 경전에 근거한 다양한 수행법을 남방과 티벳 등에서 수용한다면 우리 자신의 수행과 한국 불교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 호부터는 대승경전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1) 譯註 : ‘붓도(Bud-dho)’는 붓다의 주격으로 마음이 부처라는 뜻도 포함하는 예비적인 진언[만트라]으로서, 호흡관찰이나 경행에 병행해서 쓰여지거나, 붓다의 공덕을 기리며 붓도를 염송하는 염불수행에 독립적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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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권 _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MBA석사, 1979년부터 선원과 토굴에서 선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10여 년간 화두를 참구하였다. 1990년 미얀마 마하시 선원으로 출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얀마에서 비구계를 받고 위빠싸나 선원에서 수행하였다. 그 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의 위빠싸나 선원에서 수행하였다. 현재는 대소승을 아우르는 수행법정립에 혼신의 힘을 쏟으며, 시중에서 월 1회 위빠싸나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역저서로 『위빠싸나 1, 2』『위빠싸나 성자 아짠문』『위빠싸나 열두 선사』『붓다의 호흡법-아나빠나삿띠』 등이 있다.